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집이요
우리 집의 아웃사이더?
10년간 독박육아로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오다, 2020년 여름부터 남편이 공유오피스로 출퇴근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매일 저녁 네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고, 그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친정에서 분가하면서 남편의 방이 생겼고, 사무실에서 하던 일을 집에서 하기로 하면서 가족과의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이들은 2층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고, 잠들기 전까지는 내가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이 수다로 늦어지기 일쑤였다. 주말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재우기로 하면서 아이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빠가 재워주면 할 말이 없어. 그래서 일찍 자게 돼. 아빠랑은 엄마랑 얘기하는 것처럼 대화가 안돼. 뭔가 어색해서 말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 우리 가족이 가깝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내가 착각한 건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과 아빠의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왔었다. 아이들은 아빠와 보드게임도 즐기고, 주말이면 수영장에 가서 셋이서 신나게 놀고 오기도 했다. 그런데 대화가 안 된다니, 나름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더 신경 써서 듣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의 일이나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아빠가 함께 있어도 늘 내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0년간 아빠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낳은 걸까? 아이들이 어린 시절 크는 내내, 남편은 늘 없었으니까. 그러다 첫째가 5학년이 되면서 사춘기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끔씩 말투와 행동이 달라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남편은 아이의 감정이 변하는 순간들을 전혀 캐치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주로 아빠에게 향했고, 감정에 민감한 남편은 의외로 상처를 크게 받았다. 아이들과 나의 친밀도가 워낙 높다 보니 남편은 더욱 소외감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었다.
좁은 공간, 함께하는 시간
지인들 중에는 하루종일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집안에 있어도 남편은 자신의 방에 머물렀기 때문에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인지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쿠알라룸푸르의 예약한 콘도는 1+1룸 구조로, 넓은 마스터룸 1개와 미닫이문으로 거실과 분리된 작은 방이 있었다. 아이들과 나는 마스터룸을 사용했고, 거실과 연결된 오픈된 방은 남편이 사용하기로 했다. 미닫이문을 항상 열어둔 채 지내다 보니, 한국에서와 달리 남편은 항상 오픈된 공간에 머물게 되었다. 영어캠프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은 하원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느라 바빴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주로 자신의 방에 있어서 아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모든 대화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나와 아이들만 알고 지냈던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이제는 남편도 공유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인 수영장에서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해 늘 물 밖에 있었지만,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단기 여행이 아닌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영장에서 보낸 시간들은 남편과 아이들만이 공유하는 나만 모르는 특별한 순간들로 채워져 갔다.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아빠와의 대화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고, 아빠를 대하는 말투나 태도도 예전의 친근함을 되찾았다. 어쩌면 영어캠프 덕분에 매일이 즐거웠던 아이들의 기분이 한몫했을지 모르지만, 일상의 무게에서 조금 벗어난 남편의 여유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내가 수영장에서 돌아오면, 요리에 능숙한 남편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두었고, 우리는 식사 후 후식까지 즐기며 모두가 자리를 뜨지 않고 식탁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편이랑 친해졌어요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나면, 우리는 2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를 두고 마주 앉아 각자의 업무를 시작했다. 결혼 생활이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보낸 날이 있었던가? 평소 같았으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혼자 스쳐 지나갔겠지만,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으니 자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10년 넘게 살면서 나눈 대화보다, 3개월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마치 친구가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괜히 남편과 더 친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을 보러 나갔다가 근처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들어오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이들 없이 우리 둘만의 외식은 처음이었다. 10년이 넘도록 밖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낯선 해외에서 남편과 맛집을 찾아다니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등의 첫말을 하거나 뒤집고, 기고, 걷는 등 의미 있는 순간마다 남편은 곁에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이 비슷할 것이다. 그때는 아이의 표정이나 말,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남편에게 전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아이들과의 모든 순간에 함께 있으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갔고, 남편과의 소소한 시간이 쌓일수록 그동안 묵혀두었던 감정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댁 일로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이제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정말 큰 발전이었다.
쿠알라의 일상이 이끈 변화
한국으로 돌아온 후, 남편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아이들과 나는 거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들이 아빠에게 거실에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이제는 놀이시간에만 아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구나 싶어 내심 뿌듯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모두 거실에서 생활하고, 잠잘 때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생활 패턴을 이어갔다. 이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가족만의 문화가 되었다. 이전에는 주로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가끔 트레이더스에 나나 남편이 혼자 가서 장을 보곤 했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서 남편과 함께 장을 보던 습관이 생겨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함께 장을 보러 가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러한 변화가 참 좋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3개월 동안, 아이들은 매일 물놀이를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냈다. 수영 덕분에 활동량이 늘었고, 많이 먹고, 많이 자며 건강해졌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던 아이들이, 주말이면 10시나 11시까지 늦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서 그 변화가 신기했다. 남편에게 "1호가 여기 와서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감정 표현이 더 풍부해지고, 웃음도 많아졌어."라고 말했었다. 이후 며칠 뒤, 1호가 스스로 "나 여기 와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우리 가족에게 이번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달았다. 그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일깨워주고,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단단하게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대문사진 : Unsplash의 Scott Bro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