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드리머 Aug 21. 2024

수영장에서 시작된 인연

최근에 다시 만났습니다


첫 만남, 첫 칭찬 


 영어캠프를 시작하고 첫 번째 주말, 날씨가 좋아서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놀고 싶어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수영장으로 나간 후, 빨래와 청소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아이들이 처음 만난 아이들과 재밌게 놀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기서 딸 둘 있는 한국 가족을 만났는데, 애들 엄마가 자기를 꼭 만나보고 싶다는데?"

"나를? 왜?"

"애들 영어학원 다닌 적 없고, 집에서 했다고 했거든. OO이(1호) 청담? 학원에서 OO반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 그 얘기했더니 이 엄마가 놀라면서 자길 보고 싶대. 대단한 엄마라는데? 그게 놀랄 일이야?"

"아닌데~ 왜 그러지?"


 집에 있는 튜브를 가져다 달라는 남편의 말에 들고 나가다가, 전화로 전해 들은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는 3년 전 이곳에서 3개월 동안 부부가 함께 영어를 배웠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서 베트남 여행을 가기 전에 3일 동안 머물다가 간다고 했다. 큰 아이가 에이프릴 학원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면서, 남편에게 "레테에서 OO반이면 못해도 학원을 4년은 다녀야 할 거예요. 이건 정말 엄마가 대단하신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나를 칭찬했다. 소신 있게 자기 주관대로 했다는 사람을 책이나 인터넷에서만 봤지, 실제로는 처음 본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칭찬을 받는 건 처음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동안의 나의 노고를 인정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걸 남편에게 강조해 주니 오히려 고마웠다.


 남편은 이전에 왜 아이들을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느냐며, 우리 아이들만 너무 놀고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고 있다고 했지만,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남편은 미심쩍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수영장에서 만난 엄마의 칭찬 덕분에 나의 체면이 올라갔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영어캠프의 효과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1호와 이야기 끝에 영어캠프 전후로 대형 어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기로 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은 "우리 딸들이랑 엄마랑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네"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새로운 만남 덕분에 더욱 화기애애해진 우리의 두 번째 주말 저녁이었다.


 사진 : Unsplash의Alexas_Fotos




아이들의 수영강습


 같은 학원을 다니며 등하원 때마다 만나는 한 엄마가 잘 가르치는 수영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았다며, 아이들이 함께 수영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선생님은 말레이시아 출신의 여성으로, 영어로 수영 레슨을 진행하는 분이셨다. 우리 아이 두 명과 7살, 초5 남자아이들 두 명, 총 4명이 함께 레슨을 받기로 했다. 한국에서 1호는 접영을, 2호는 평영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수영 선생님의 레슨 스타일은 한국과는 달랐다. 수영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대신, 먼저 아이들이 수영을 하면 필요한 부분을 알려주면서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비용은 8회 기준으로 다음과 같았다.

- 2인: 시간당 85링깃 (약 25,500원)

- 3인: 시간당 80링깃 (약 24,000원)

- 4인: 시간당 75링깃 (약 22,500원)


 단호하고 강단 있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절대 휘둘리지 않으셨다. 잠깐의 휴식만 주고, 아이들이 계속해서 수영장을 왕복하도록 하셨다. 접배평자(접영-배영-평영-자유형)로 수영장을 왕복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2호가 힘들다고 하면 "No, it's easy easy~"라며 웃으며 봐주지 않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은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easy'할 수밖에. 선생님은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오는 많은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수영 강습을 하고, 방학이 끝나면 해외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이번에는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이라고. 20대 여성인 수영 선생님의 라이프스타일을 들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참 멋있게 보였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덕분에 수영 실력과 체력이 함께 늘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그때의 수영 선생님을 떠올리며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우리 두 아이는 모두 낯가림이 있고, 특히 1호는 매우 정적이고 내성적인 성향이라 다른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유독 수영장에서는 처음 만난 아이들과 잘 어울렸다. 수영장이라는 공간 때문이었는지, 해외에서 만난 한국 아이들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보기 좋았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두 아이는 수영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매일 수영할 수 있는 환경에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날에는 수영장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무려 8시간이나 놀았다. 중간중간 간식만 잠깐 먹고, 바로 물속으로 풍~덩! 신기할 정도로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집에 오니 2호는 허벅지 안쪽 피부가 쓸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최고의 크리스마스였어! 엄마, 우리 여기서 몇 년 살다가 가면 안돼?"라고 물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


 우리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자주 함께 놀던 아이들 중에 1학년, 4학년 남매와 7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두 집의 엄마들은 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두 가족은 이미 친해 보였다. 수영장이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가 되다 보니, 아이들이 놀 때마다 엄마들도 함께 나가 지켜보는 일이 일상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모두가 '아이들의 영어 교육'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자연스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중 1학년과 4학년 남매는 콘도에서 유일하게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엄마는 나보다 4살 많은 언니였는데,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고, 이후 코로나 시기에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리가 머물렀던 시기도, 지역도 가까웠다. 이런 우연한 인연이 또 있을까?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마음이 열렸다. 

 

 어느 주말, 아이들이 함께 놀다가 더 오래 놀고 싶었는지 갑자기 저녁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세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얼결에 성사되었다. 국제학교에 다니기 위해 아빠도 한국에서 일을 접고 말레이시아로 함께 이주한 가족으로, 우리가 사는 콘도에서 남편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아빠였다. 두 아빠들은 서로의 존재를 반겼다. 7살 아이는 학교 입학 전, 엄마와 단둘이 6개월간 쿠알라룸푸르의 영어 캠프를 다니고 있었고, 애교 많은 귀여운 아이였다. 셋째를 낳아달라 요청했던 우리 아이들은 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매우 즐거워했다.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니가 "우리끼리 수영장에서 너네 아이들 노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정말 착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 단순히 착한 게 아니라 인성이 좋은 아이들이라는 게 눈에 보이더라. 그래서 부모님도 분명 좋은 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라고 말씀하셨다. 언니의 칭찬이 내가 살아오면서 들은 최고의 찬사였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말이다. 아이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까지 몇 차례 더 식사 자리를 함께했고, '진작에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곳을 떠나기 2주 전 즈음이었다) 언니들과의 수다는 유쾌했고, 우리 부부가 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좋은 말씀만 해주셨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면서 우리는 인스타그램으로 서로의 근황을 팔로우하며 댓글로, 카톡으로 소통했다. 


 최근에 우리 가족이 말레이시아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치앙마이에서 직항이 없는 도시였다. 어쩔 수 없이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감사하게도 언니가 자신의 집에서 머물다 가라고 해주셨다. 나는 평소 친정에서도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인데(명절에도 굳이 혼자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유난을 떨곤 했다), 보고 싶은 마음에 2박 동안 언니 집에서 신세를 지고 왔다. 영어 캠프를 위해 갔던 낯선 도시의 수영장에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참 특별하고 소중하다. 이번 겨울에는 언니네 가족이 우리가 사는 이곳, 치앙마이로 놀러 오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대문사진: Unsplash의Thor Schroeder


                     

이전 05화 "학교 그만두고, 여기 계속 다니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