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양육비 100만 원은 건드리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혼 후 내게 주어진 돈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위자료나 재산분할, 그런 이야기는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결혼을 유지한 기간이 10년 이상이 되어야 일부 기여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깨달은 현실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한 뒤 오른 아파트 값의 상승분이 아이둘을 키우며 겨우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 돈을 받기까지의 과정도 너무 처절하기만 했다. 실제로 내 손에 쥐어진 금액은 '목돈'이라 부르기엔 부족해보였고, '적다'고 말하기엔 나름 무거운 액수였다. 그 돈을 들고 고향으로 내려왔을 때야 알게 되었다.


이 돈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돈은 생활비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기 위한 종잣돈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달 들어오는 양육비는 120만원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돈 앞에 앉아 계산기를 두드렸다.


양육비 120만원과 아동수당으로 들어오는 금액 30만원, 자격증을 취득하며 나라에서 짧은 기간 지원해주는 금액. 60만원은 무조건 저축, 30만원은 아이들 교육비와 필요 물품, 나머지 강의비는 내가 그동안 사업을 하며 남겨두었던 비상금으로 생활을 했다.

아동수당과 지원금, 비상금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의자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리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양육비 100만원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통장을 나누다 | 생존과 미래를 분리하는 법


나는 통장을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생존 통장으로 매달 들어오는 양육비 중 60만원과 아동수당 그리고 지원금이 들어오는 곳. 이 통장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고 마음 먹었다. 자동이체로 적금에 넣어 관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는 현금 통장으로 사용하며 교육비며 강의비, 생활비 등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산의 대부분은 1년 단위 정기예금으로 묶어두었다. 이 돈은 집을 구하는 비용으로 사용되는 목적 외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을 계획으로 묶어두었다. 그리고 매일 사용되는 금액을 달력에 기록하고 월말에 나의 자산 현황을 기록하고 체크하였다.


겉으로 보기엔 빠듯했다. 빠듯한 정도가 아니라 숨이 찰 정도로 팽팽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스템을 계속 유지했다. 지금 편하려고 미래를 쓰면, 결국 미래도 지금처럼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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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본질을 배우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경제와 돈의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이혼을 통해 제대로 깨달았다. 결혼 생활 동안 나는 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벌고 쓰는 게 전부였다. 저축을 하긴 했지만, 왜 모으는지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혼 후, 돈은 단순히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돈은 선택지를 만든다.

돈은 시간을 산다.

돈은 미래를 설계한다.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노후를 기대하며 사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고, 오히려 아이들의 자산을 미리 준비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가진 자산을 더 불려야 했다. 그래서 제대로 돈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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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의 기술 |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


절약은 단순히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쓸지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원칙을 세웠다.


절약 원칙 3가지


1.매달 들어오는 금액의 절반은 무조건 저축-미래는 협상 불가

아이들 양육비, 아동수당 등으로 들어오는 금액의 절반은 고스란히 적금으로 저축했다. 아무리 급해도, 아무리 필요해도 그 저축하는 돈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2.정해진 사용 금액 안에서만 생활

저축하고 남은 금액을 생활비로 사용했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않았다. 다행히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거주 비용이나 식비 등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옷이나 필요한 물건들은 지인에게 물려받거나 중고로 샀다. 그리고 도서관이나 주변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통해 문화생활을 했다. 집 바로 옆에 산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거나 숲체험장소에 가서 놀며 자연을 즐기며 탐색하는 시간을 보냈다.


3.나를 성장 시키는 투자 비용은 아끼지 않기

아동학사를 취득하는 강의비와 기타 자격증을 충당하는 비용은 사업을 하며 가지고 있던 여유자금과 이혼을 하며 정리한 자산의 일부에서 사용했다. 나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비용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했다.




돈 공부의 시작 |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갭투자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동산과 주식 등 돈 공부를 꾸준히 했다.


본격적으로 돈 공부를 시작하게 된 건, 이혼 전 만난 한 언니 덕분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언니는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아이들은 같은 유치원에 보내게 되면서 가까워졌다. 언니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였고 배우자 분은 주식투자 전문가였다. 언니와 오며 가며 이야기를 하다 지금 집을 사게 된 이야기를 하며 내 사정을 듣던 언니는 책을 추천했다. 도서관에 재테크나 부동산 관련 책이 모여져 있는 책장 하나만 다 읽어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동네를 운동삼아 걸으며 주변 아파트를 구경하거나 부동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냥 아파트만 구경하는 게 아니라 항상 여기가 좋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이파트는 역세권이고 학군이 좋아. 그리고 바로 옆에는 빌라들이 많아서 나중에 재개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지금은 이 아파트가 대장 아파트이고 주변은 이 아파트의 시세를 따라갈 거야.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갈아타기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주변 시세를 틈틈히 확인해봐"


그렇게 살아있는 임장을 경험했다. 언니는 삶 속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건 책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현장에서 움직이는 돈의 감각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혼하던 시기는 부동산 상승 초반이었다. 가격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구입했던 집은 너무 쉽게 팔렸다. 아파트 가격이 한 달 사이에 몇 천만원씩 오르는 곳도 있었다. 자산을 불리는 것에 대해 체감했지만 나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상황이었고 직업도 없고 돈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집을 사고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언니는 포기하지 말라고 계속 이야기해줬다.


"갭을 이용해서 집을 구해놓고 내려가. 지금 놓치면 나중엔 더 힘들어."


하지만 나는 두려움, 불안과 걱정 때문에 계속 좋은 집들을 구입할 수 없어 놓쳤다. 내가 돈을 다 갚을 수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를 멈추게 했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보러 갔던 집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구입했고 가격은 계속 올랐다.




도서관에서 시작한 진짜 공부


놓친 기회들이 아쉬웠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부동산, 재테크, 경제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읽고 필사를 했다. 중요한 핵심 새념 그리고 기억해야 될 내용들을 노트에 직접 써 내려갔다. 손으로 쓰면서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에 새겼다.

유튜브도 찾아보며 부동산 투자 전문가들의 채널을 구독하고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고향에 내려온 친구들과 투자 공부를 함게 시작했다. 우리는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만나 읽은 책을 공유하고 정보를 나눴다. 누군가는 주식 정보를 누군가는 부동산 시세에 관해 서로 토론하고 직접 임장도 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려면 돈을 모으고 공부를 해야해."

우리는 그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돈으로 모으고 불리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고 나니 조금씩 용기가 생겼다. 다시 짐들을 돌아보며 입장을 했고 예전처럼 막연하게 보는 게 아니라 머릿 속으로 계산을 하며 보았다. 그렇게 서울 근교 경기도에 갭투자를 결정했다.


전세를 끼고 소액을 가지고 집을 구입했다. 전세가가 떨어지고 세입자가 갑자기 나가면 어쩌지? 수많은 '만약'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안전하게 가면, 영원히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되었다.


보육교사로 2년 동안 일하며 5천만원을 모았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나는 철저하게 나의 시스템을 지켰다. 월급의 200만원은 무조건 적금을 넣었고 돈이 더 생기면 그 금액까지 합쳐서 정기예금으로 묶었다. 본업으로 복귀하고 나서 3년이상 시간 동안 다시 5천만원을 모아 5년 이란 시간동안 1억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동안 2년에 1번씩 이사도 다니고 이사 비용, 전세 보증금 증액 등 예상치 못한 지출들이 계속 생겼다. 크게 돈 들어가는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은 자산을 계속 불려나갈 수 있었다.


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기준을 지켜나갔기 때문이다.




적은 돈으로 다시 일어서는 시스템과 마인드셋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못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삶에 대한 구조과 시스템을 만들어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은 돈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가 만들었던 시스템]

1.통장 나누기

-생존 통장 : 당장 필요한 생활비

-미래 통장: 절대 건드리지 않는 저축

-투자 통장 : 자기계발과 자산 증식


2.절약 :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무엇에 쓸지 명확하게 정하고 사용하기

3.돈 공부를 멈추지 말기 : 아는 만큼 불어난다. (책, 강의. 유튜브. 임장, 소액이라도 실행해보기)


내게 주어진 돈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적은 돈으로 부동산 갭으로 집을 구입하고 1억이라는 돈을 모았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큰 돈은 아닐 수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자산을 배로 불렸다. 단지 이 돈으로 아이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더 좋은 경험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이였다. 그래서 다시 서울 복귀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그 돈은 단순히 통장 잔고가 아닌 선택지였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 하지만 돈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은 돈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시기를 통해 나는 삶을 포기 하지 않고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을 얻게 되었다.

후회하지 말고 다음 기회를 준비하면 언제든 그 운과 기회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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