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나'에서'생각하는나'로 바뀌는순간
거울을 보며 자신을 얼굴을 찬찬히 뜯어볼 때가 있다. 못 보던 작은 점을 발견하고 이 점은 원래 있던 점인데 그동안 자신이 못 봤던 것인지 세월의 흔적에 상처나 태양빛으로 늦게 생긴 점인지 알 수가 없다. 나의 눈은 이렇게 생겼구나, 입술은 보통의 두께를 가지고 코는 조금 높지만 치열은 고르지 않네.. 어느 날은 나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또 어느 날은 아빠의 얼굴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신의 얼굴을 나의 눈을 통해 하염없이 바라본 본 시간을 가지고 난 후부터 틈만 나면 내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단 한 번의 노력을 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를 응시한다.
나는 내 마음속에 더 그려지지 않은 몸짓들과,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과,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린 꿈들이 담긴 우물이다.
_ 불안의 서 중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 얼마나 깊이 있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형태와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연필 명상>이란 책 내용 중 우리는 바라보는 일에 매일 익숙하지만 갈수록 덜 본다고 하였다. 제대로 보는 것은 '보기' , 사심을 담아 보는 것은 '바라보기' 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리는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또한,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곧 명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세계 속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온라인상의 모든 것들을 쉬지 않고 보고 있다.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여 모든 것을 빠짐없이 보려고 한다. 늘 무엇인가 보고 있지만 그것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그것들을 보고 나서 깊이 있게 무엇인가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수많은 정보를 봤지만 더 못 본 게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과연 제대로 보고 올바른 사고(思考)를 할까?
덜 본다고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봐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또 많이 봐서 나쁠 건 없다는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대상의 내면과 본질을 찾아 제대로 '바라보기'를 해야 한다.
※ 모든 그림은 저의 작품입니다. 무단 도용 및 불펌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