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예술가들
몇 년 전 텍스트와 이미지를 결합한 바스키아 작품의 매력에 빠져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았고 그의 인생 그리고 영화까지 보며 바스키아에 대해 알아가던 중 작품 속 왕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바스키아 작품 속 왕관의 의미는 작품의 카피라이트 표시이며 동시에 그림 속 인물에 대한 존경과 찬미 그리고 자신의 작품 권위를 나타내는 표현방식이다. 거리에서 낙서 그룹 세이모(SAMO)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바스키아는 '타임스스퀘어 쇼' 전시 거리에서 그의 작품이 걸려 이슈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스타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또한 앤디 워홀과 같은 스타가 되고 싶어 했다. 스타가 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중에게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바스키아는 어릴 적부터 미술관에는 왜 흑인 예술가의 작품이 없을까? 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였고 예술계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항상 작품 속에 등장하는 흑인은 노예나 하인의 모습으로만 보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자신이 경험한 시대의 모습을 바스키아는 텍스트와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낙서처럼 그려냈던 것이다. 이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작품으로 표현해 낸 그에게 존경의 의미로 나는 바스키아의 왕관만을 캔버스 위에 그렸던 것이다.
바스키아와 같은 거리 예술가로 뱅크시와 키스 하링 또한 거리에서 낙서화로 유명한 아티스트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 거리에서 그들의 작품들을 만나 그림을 관람할 수 있었지만 유명세를 타고나서는 실내 즉 미술관 안에서도 감상이 가능하고 큰 금액을 지불해야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의 예술가가 실내로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긴 체 거리의 벽에 그림을 남긴 동시대 아티스트 뱅크시는 <안보다 바깥이 더 낫다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형 미술관들이 많은 뉴욕 센트럴파크 노점에 할아버지 배우를 고용해 좌판을 깔고,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60달러에 판매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물론 노점 좌판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뱅크시가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캔버스에 그린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그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하루 동안 판매된 작품은 몇 점뿐이었다. 뱅크시가 직접 그린 그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그림은 할아버지가 그린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고 또는 짝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뱅크시가 직접 그린 그림인걸 알았다면 아마도 몇 시간 만에 모두 판매되었을 것이다. 뱅크시는 이후 이 프로젝트를 본인이 기획했고 노점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본인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인증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림이 판매되는 장소와 판매자, 그리고 가격 등이 그림의 가치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뱅크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 작품 가치가 시스템과 환경에 큰 영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예술이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 누구나 공유하고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앤디 워홀은 팝아트를 대중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디 워홀 자체가 브랜드화가 되어 유명 스타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그의 작품들은 복제본이라 할지라도 많은 돈을 줘야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는 앤디 워홀이 추구했던 아트의 대중화가 아니다. 결국 또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되었고 일명 짝퉁의 그림들이 복제되어 판매되고 있다. 몇 달 전 '앤디 워홀 비기닝' 전시가 있어 관람하였다. 역시 이런 블럭버스터 전시는 입장료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소수가 아닌 대중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 워홀의 뜻을 안다면 모든 국민이 심리적, 경제적 부담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예술이 소수의 선택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당신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_ 앤디 워홀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냥 아티스트다.
_ 장 미쉘 바스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