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제가 좀 됩니다. 엣헴. 은 아니고 제가 좀 많이 외롭고, 그 외로움을 관계로 극복하려는 잘못된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엣헴..)
Long weekend의 마지막날. 서비스직 노동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열심히 안 살기로 했지만 먹고는 살아야 해 새로운 Job을 가진 지 n개월. Socially extroverted introvert에게 Server는 의외로 괜찮은 직업이다.
손님을 두 번 다시 안 만난다는 가정 하에.
짧은 영어시간
Long weekend 대체공휴일 (Statutory holidays) 이 포함되어 기본 토, 일, 월 3일이 공휴일인 기념일
Job 직업. 우리를 힘들게 하는 먹고사니즘
Extroverted introvert 외향적 내향인. 안 좋아하는 MBTI에 빗대어 설명하면 사회적으로 E의 가면을 쓴 뼛속까지 I
Server 서빙하는 사람
기계적으로 손님을 맞는다.
인사 > 세팅 > 주문 > 서빙 > 추가주문 > 서빙
16번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두 명이 와서 후레시한 초록뚜껑을 4병째 마시고 있다는 것과 그 뚜껑을 곱게 스탠딩 메뉴판에 하나씩 걸어두었다는 점이 특이했을 뿐. 한병, 한병 추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술 정말 잘 드시네요!" 짧게 응대하고 날아다니기에 바빴다. 연휴 마지막날 저녁이 이렇게 바쁜 건 좀 억울한 일이다.
소주를 3병 정도 드셨을 때쯤이었나. 16번 테이블에 단정한 짧은 머리를 한 여자분이 나를 부른다.
"저.. 인스타그램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멈춤) 저요?"
"네.. 너무 귀여우셔서"
"제가요???"
서버일을 하며 번호를 따인다던가 개인팁을 받았다고 하는 건 그저 '다들 젊군!' 정도의 감상이 드는 일이었다. 서른 후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와중에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집에 와서 돌이켜보니 후회가 된다. 혹시 벌칙게임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나 물어볼걸 그랬다. 현장에서 검거해야 조금사실 많이 기뻐한 게 좀 덜 부끄러워지는데.
러시가 한창일 때 한 테이블에만 붙어 있는 것은 하수가 하는 일. 모름지기 서버란 전체 테이블의 상황을 파악하고, 웨이팅이 있다면 얼른 앉히고, 주문을 빼고, 하여튼 이 카오스를 얼른 안정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프로페셔널의 자세. 그래서 차마 못 물어봤다. 내기에서 진 거냐고.
마침 16번 테이블에서 계산을 부탁한다. Bill과 카드 머신을 들고 가 물어본다.
"남자 친구 아니셔요?" "남자분: 누가!! 이런 애랑!!"
아하..
들어올 때부터 비슷한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놈의 세상은 헤테로가 9할이라 그냥 다른 성별 둘이 들어오면 난 다 사귄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가 나쁜가!!
"근데 왜 하필 저를.. 아니.. 이런 일이 저한테도 일어나는군요"
"아. 들어올 때부터 너무 귀여우셔서.."
판타지 아님. 팬픽 아님. 실화 맞습니다.
슬쩍 778-87*-**** 폰번호를 적은 종이를 건넨다.
"제가 옛날 사람이라 인스타는 안 하고, 괜찮으면 나중에 수영 같이해요. 취미가 프리다이빙이라, 플러팅 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다이빙 스킬 알려줄 수 있단 거예요. 나중에 밥이라도 먹죠. 손님도 귀여우신데"
바빠도 할 말은 다 하는 편.
손님은 술이 취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볼이 좀 붉어지셨는데 생각해 보니 소주를 4병 마셨는데 볼이 그 정도로였다는 건 술이 엄청나게 세다는 거겠군.
손님은 번호를 받았고, 팁을 많이 주셨다.
캄사합니다!!
사람얼굴을 잘 기억 못 하는 병에 걸려 어제 본 분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무쌍에 깔끔한 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마주쳤던 것이다.
오늘부터 내 취향은 무쌍이다!
인생의 9할은 감사하게도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이어지지만, 가끔 아주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숨겨진 이벤트처럼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그래서 과연 무쌍의 깔끔 셔츠 소주 4병 손님은 연락이 올까? 안 올까?
+ 지금까지 연락이 안 오는 건 알코올의 기운과 함께 나의 귀여움도 날아가버렸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