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비이야기
정확히 8년 만이다.
그러니까, 꼬꼬마 시절(지금도 어른은 아니지만) 유럽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꼽사리 껴 머나먼 아시아의 꼬꼬마 대학생이 런던에 왔던 것은.
사족을 좀 달아보자. 내가 공부했던 슬로베니아(Slovenia)라는 나라는 슬로바키아 아니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맞다.
유고 슬라비아가 내전을 끝내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그리고 세르비아로 나누어진 것. 서유럽과 중 유럽의 중간에 낀 Center Europe! 의 위치를 활용해 전라북도? 남도? 만한 인구 200만의 나라는 유통과 발 빠른 대처로 꽤나 잘 사는 나라로 성장했다.
쨋든, 이런저런 이유로 – 기회가 되면 이건 따로 이야기해 보자. 왜 미국이 아닌, 듣보 나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는지- 2번의 환승과 총 4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나는 ‘류블랴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곳에 떨어지게 되었던 것.
어디든 그렇겠지만 타국은 친구가 있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도 춥고 외롭고 배고픈 곳이지만 4월의 이스터 홀리데이, 그러니까 열흘에 달하는 부활절 연휴는 가난하고 배고픈 유학생에게 ‘뭐하면서 시간을 때울까’라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아무도 없는 기숙사 방에 혼자 있느니 어디론가 가자고 결심했고 마침 저가항공 Ryan Air 의 거의 공짜이다 시피 한 자리를 획득, 왕복 6만 원에 런던 – 말리보(Maribor, 하리보 아님) 티켓을 구하게 되었다. 학교가 있던 수도 류블랴나가 아니라 왜 말리보 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열차를 타고 허허벌판에 내려 몇 km를 걸어 (역시나, 택시 같은 건 없고, 돈도 없으니까) 차라리 동서울 버스터미널이 더 터미널 같아 보이는 공항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공항의 풍경은, 스도쿠를 하고 있던 중년 일본인 부부의 모습과 (스도쿠 하시네요!라고 말을 걸기엔 그 당시 일본어가 미천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이 내리자마자 우리를 다시 태운 라이언 에어의 패기 있는 비행 편 운항.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찌하나 라는 두려움을 안고 비행기는 런던에 도착하였고 잊을 수 없는 그렇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하였다.
조금은 뻔한, 소매치기를 당하다
유학과 해외여행은 ‘돈이 없다’ 는 기억이 8할 이었다. 몇 시간을 투자해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영국은 담배가 비싸 말보로 한 보루를 가져오면 1박이 공짜라는 글도 많이 보았다. (이 조사는 결국 헛된 일로 돌아갔는데 나는 EU 국가에서 영국으로 넘어간 경우라 이미 면세의 혜택을 보고 있었던 것) 라면을 공짜로 주는 게하에 짐을 풀고, 대부분은 걸어 다니고 굶고 그렇게 여행을 하던 중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
대영 박물관 로제타 스톤 앞.
런던은 사람이 많다. 특히나 관광지는 ‘인종 박람회’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사람 많은걸 싫어하면서 왜 그렇게 관광지만 찾아다녔는지 알 수 없지만, 초보 여행자는 그저 남들이 좋다, 유명하다고 한 곳을 열심히,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RPG 초심자의 심정으로 돌아다녔다. 우습게도 그때 본 것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고 오히려 런던의 푸른 하늘과, 내 카메라에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 런던 경감님의 모습만 남아 있지만.
아무튼 로제타 스톤을 보겠다고 인파의 바구니 속에 끼여 있던 나는, 일순 크로스백이 허전해 짐을 느끼고 가방을 ‘팍!’ 눌렀지만 아뿔싸가방이 비어 있는 것이다.
전재산 20파운드(2016년 8월 3일 기준 3만 원 정도...)
런던에 왔으니 뮤지컬은 봐야지 싶어 샀던 “we will rock you” 티켓
뮤지컬 대신 인생이 뢐킹 되어 버렸던 그 순간.
지갑에 들어 있던 건 이게 전부였지만, 남은 20파운드는 다시 류블랴나로 돌아갈 차비였다.
"설마, 나같이 없어 보이는 애 지갑을 가져갔겠어"라는 현실 도피로 게스트 하우스에 돌아와 짐을 뒤져 보았지만 이내 나는 소매치기를 당한 것으로 현실을 직시하였다. 게다가 피해 물품도 금액도 너무 적었고 뭔가,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분실신고를 하고 여행자 보험 보상을 받는 대신 남은 일정을 게하에서 노트북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게 되는데…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