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비 이야기
미니는 귀여웠다. 하지만 난 돈이 없지.
건물도 멋있었다. 하지만 난 지갑이 없지.
런던은 좋은 곳이었다. 지갑을 도둑맞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유럽에 강제 기부하고 간 물건은 한 두 개가 아니다.
런던에서 지갑, 류블랴나에서 디지털카메라(내 캐논!)
심지어 빌린 자전거 까지.
(류블랴나 태권도장 관장님에게 빌린 자전거였는데 … 김관장 님 잘 지내시죠..?)
그렇게 자꾸 뭘 기부하다 보니 소유하지 않는 삶의 진리에 다가가게 되었고
속옷 2장으로 2주를 버티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도 했지만.... 그땐 몰랐지.
지갑을 잃어버린 경험 덕분에 이렇게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 했고 그만큼 따뜻했다.
게스트 하우스 총무에게 20파운드를 빌렸고 히드로 공항 환전소에 무턱대고 들이댔다.
나: Excuse me… 저기여… 환전 좀…
직원: 이건 금액이 너무 적어서 환전해주기 어려운데…
나: 내가 소매치기를 당해서… 슬로베니아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집에 가야 되는데…
직원: (옛다 관심) 10유로를 건 내며 This is the best I can do for you.
나: 고마워 ㅠㅠ
그렇게 다시 하리보 아니고 말리보에서 올라탄 기차. 매표소도 없는 작은 역에서 올라탄 이유로, 기차 안에서 표를 끊으면 더 비싸다는 이유로 또 한차례 역무원에게 불쌍함을 어필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돈을 털어도 1유로가 부족한 상황.
맞은편에, 누가 보아도, 그때의 나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던 히피 친구가 흔쾌히 1유로를 기부해 주었다.
누가 유럽이 개인주의적이라 했는가?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도리 :)인데.
그리고 그렇게 지갑을 잃어버린 경험은 ‘런던의 코벤트 가든을 떠도는 뮤지컬 티켓’이라는 한 문장으로 남아 이력서의 한 줄을 장식해 주었고 유럽의 꼬꼬마 대학생은 기차에서 쫓겨나지 않은 채 류블랴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2016년 8월.
8년 만에 다시 찾은 영국.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또 많은 것이 그대로였다.
미니는 BMW에 인수 당한 이후 조금 펑퍼짐 한 디자인으로 변하였고
유럽의 건물은 여전히 유럽유럽하게 유럽의 하늘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때 지갑을 도둑 맞지 않았다면 런던은, 그리고 영국은 더 좋은 곳으로 기억 되었을까?
아니.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하루에 맥도날드로 아침, 점심, 저녁을 떼우면서도
냄비밥을 처음 해보는 경험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기에 짧은 시간의 유럽 생활은
대학생 박비가 조금 더 진솔하게 인생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22살과 30살의 나는
런던에서
인생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