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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Jul 21. 2024

조증이 왔으면 좋겠어~

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일곱 번째 이야기)

입원을 하자 6시 기상, 7시 아침 식사, 8시 샤워, 10시 티타임, 12시 점심 식사, 13시 샤워, 15시 간식, 18시 저녁 식사, 19시 샤워, 20시 간식 시간, 21시 약 복용, 22시 취침이 지루하게 계속 반복됐다. 

      

보통 병원에 입원해 식사 시간이 되면 침대에 붙어있는 식탁을 펴서 침대에 앉은 채로 밥을 먹는다. 그런데 이곳은 한 공간에서 다 같이 모여 밥을 먹었다. 처음에 그 설명을 듣고 속으로 너무 당황스러웠다. 병실에도 CCTV가 있는데 굳이 왜 모여서 밥을 먹어야 하는 건지 의문스러웠으나 물어보진 않았다. 가뜩이나 입맛도 없는데 환자들을 마주하고 밥까지 먹어야 한다니. 서로 밥맛 떨어질 것 같았다.      


변기에 오래 앉아 있다 나오기만 해도 변비냐고 물어보는 곳인데 밥을 안 먹게 놔둘 리도 없기에 때가 되면 없는 입맛을 좀비처럼 일으켜 밥을 먹으러 갔다. 아무도 서로에게 인사를 하거나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올려다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밥만 먹었다. 자기소개를 하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어야 되는 줄 알고 긴장했는데 다행이었다.  


입원한 지 5일째 되던 날 남성 2명이 입원을 하였다. 30대 조울증 남자와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는 60대 남자였다. 조증 기간에 입원한 30대 남자는 세 번째 입원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지만, 공중전화 대화와 서울대 약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의 신상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병명을 전혀 알지 못했으나 겉으로 보기에 환자 대부분은 조용했다.      


우울증인 나도 처음에 이곳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져 개방 병동으로 옮길까 고민했었는데 조증 환자는 오죽하겠는가. 심심했던 그가 간호사와 대화를 계속 나누다가 말했다. 조증기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목소리 톤이 높고 말이 많았다. 그런 그의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다음 입원 환자는 조증이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그가 시끄러웠다. 세 번째 입원 경력답게 그는 이곳의 모든 프로그램과 시설을 알고 있었다. 며칠간 반복되던 기상, 식사, 약 먹기, 샤워, 러닝 머신, 독서, 배변 활동이 다였던 나의 생활과 달리 그는 입원 첫날부터 정신과 인턴, 레지던트와 탁구를 쳤고, 보드게임을 했고, 몇 시에 산책을 하냐고 물어보았다. 조용하던 식사 시간에 말을 하는 이는 서울대 약대 그녀와 조증 남자 두 명뿐이었다.    


입맛은 없는데 병원 밥은 맛있었다. 여기 병원 밥이 제일 잘 나온다고 말하던 조증 남자는 끼니를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을 때마다 고개를 계속 끄덕거리며 “음~음~”이라는 감탄의 추임새를 넣으며 밥을 먹었다. 거슬렸다.

       

그가 입원하기 전까지(느낌일지도 모른다.) 모든 환자들이 나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 몰랐는데, 조증 남자가 입원하면서 병원 관계자, 간호사, 보호사, 인턴은 조금 분주해졌다. 여태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알려주지도 않더니 갑자기 산책 희망자를 물어보고 보호사 안내 하에 몇몇 환자는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작 산책을 가고 싶어 했던 조증 남자는 그날 산책이 허락되지 않았다. 조증 남자의 입원으로 인해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공간인 줄만 알았던 곳이 저녁 식사 후 노래방이 되었다. 저녁 식사 후 식당은 서울대 약대 그녀와 조증 남자의 놀이터가 되었고, 서울대 약대 그녀의 박치를 감내해야 하는 건 나를 포함한 나머지 환자들의 몫이 되었다.


<입원 여섯 번째 날>

잠을 잘 못 잤어요. 잠이 안 오더라고요. 졸피뎀(수면제)을 빼신 건가요? 약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약 조절 되면 금방 퇴원하고 싶었는데 자녀 학교 가는 문제 때문에요. 지금은 체험 학습으로 돌려놨는데.


샘, 여기는 너무 심심해요. 프로그램 안 했어요. 그냥 안 내키고. 산책도요. 너무 우르르 몰려다니면 티 날 거 같아요. 정신과 병동에서 나온 티. 혹여 아는 사람 만날까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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