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휴직 중인 공무원이 한 명 있다.
눈이 올 것 같은 찌뿌둥한 날씨와, 미세먼지 커튼으로 햇빛을 보기가 힘든 겨울을 간신히 버텼다. 햇빛을 많이 볼 수 있는 봄이 오기를 하루하루 힘겹게 기다렸다.
기대하던 꽃이 피는 봄이 시작되었는데,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일이 어느 날부터 불편해졌다.
드라이기 줄을 보면 불안한 감정이 꽃을 피웠다. 매일 의식처럼 머리를 감으니 매일 불안하고 불편했다.
우울증도 세포분열을 하는 것인지 드라이기 줄에서 시작된 불쾌한 감정은 바지 허리끈, 충전기 선, 제습기 줄, 가위, 과일 깎는 칼까지 이어졌다. 이전까지 아무 감흥이 없던 물건들이었는데 그들이 무서워졌다.
정확히는 드라이기 줄로 어떤 행위를 할까 봐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엄마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큰 상처를 유산으로 남겨주게 될까 봐 눈물이 줄줄 났다.
아이와 나, 둘이서 평일을 보내야 했기에 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매일 문뜩문뜩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담당 의사에게 드라이기줄 이야기를 하며 머리를 말린 후 드라이기를 옷장 안에 넣어둔다고 했다.
“눈에 띄는 것보단 덜 불편한 거 같은데 드라이기를 눈에 안 보이게 옷장 안에 넣어둔 거 맞는 건가요?”
'잘하셨다고, 당연히 맞다고' 대답하겠지 하고 예상했는데 의사는 뭐가 맞고 틀리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했다.
생과 사에 대한 불안을 보고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입원했을 때 했던 이야기를 또 들려주었다.
“우울증을 완치하는 사람이 30%, 그냥저냥 지내는 사람이 30%, 낫지 않는 사람이 30%”라고.
두 번째 듣는 말인데도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소환되었다. 내가 마지막 세 번째 30%에 해당될 수 있다는 예고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두 번 들어도 두 번 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의사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 부작용으로 자기 전 식욕이 증가해 살은 계속 불어났고 속은 하루종일 쓰렸다.
참다못해 위 내시경을 해보았는데 용종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