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입원은 처음이라(첫 번째 이야기)
우울증으로 질병휴직을 하기 전에 휴직까지는 안 하려고 병가를 냈었다.
1년에 7일 이상 병가를 내려면 진단서가 필요했다. 실제론 우울증 때문에 병가를 내는 것이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가 아닌 몇 년간 치료 중이던 정형외과 진단서로 병가를 냈다. 아픈 데가 또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신과질환에 대한 시선이 아직은 불편했다. 며칠간 쉬면 조금 호전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병가를 낼 당시 직장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했고, 출퇴근을 위한 운전 중에도 졸음이 쏟아져 차선을 벗어나고 있는 내 차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원인 모를 치통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결국,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보호 병동(폐쇄병동)에 입원을 했다.
약을 조금씩 바꿔가며 나에게 맞는 약을 찾고 있음에도 약이 몸에 맞지 않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숨 쉬지도 못했다. 의사는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약을 바꾸는 주기가 상대적으로 긴 통원보다 즉각적인 조치가 가능한 입원을 제안했다.
보호 병동(폐쇄 병동)과 개방 병동 중에 어디가 더 낫겠냐는 내 물음에 보호 병동(폐쇄 병동)이 조용하고 더 편할 거라고 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보호 병동(폐쇄 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고(정신을 준비하면 되는 걸까?) 준비할 힘도 내겐 없었다. 입원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움직여 속옷을 챙겼다. 병원에서 속옷을 빨고 말리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므로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팬티를 백팩에 쑤셔 넣었다. 샴푸, 린스, 칫솔 등 세면도구를 물 빠짐용 구멍이 뚫린 목욕용 망사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담았다.
애초에 샴푸를 가지런히 담으면 될 것을 그마저도 귀찮아 망사 바구니 손잡이 부분에 닿아 있는 샴푸 퍼프를 실수로 누르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내 머리에게 기억하도록 지시했다. 입원용 안내문에 적힌 대로 금지 물품 등을 안 넣으려 했으나 A4 종이에 다닥다닥 적혀 있는 설명을 다 읽기 짜증 나 대충 눈에 스치는 대로 소지품을 챙겼다.
겉옷 1벌, 속옷, 세면도구, 휴대폰과 노트북, 그리고 읽을 책 몇 권으로 입원을 위한 소지품 준비는 이만하면 그럭저럭 됐지 싶었다. 더 챙길 의욕도 없었다.
보호자를 반드시 데려오라는 입원용 안내문 문구 때문에 아직 학기 중인 아이도 맡겨야 해서 친정어머니를 급하게 지방에서 올라오도록 부탁했다. 오후 2시 전에 병원에 도착해야 당일 입원이 가능하다는 말이 기억나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엄마를 태워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보호 병동(폐쇄 병동)이라서 입원 수속 시 보호자가 꼭 필요한 줄 알았다. 병원 직원은 보호자의 신분증을 요구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른 과 입원할 때도 보호자는 필요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보호자의 신분증을 확인까진 안 했던 것 같다.
새벽부터 올라온 엄마의 노력이 허무하게도 보호자인 엄마의 신분증은 내가 입원비를 내지 않을 경우, 연대 책임 한다는 서류를 작성할 때만 필요했다. 자의입원이어서 언제든지 퇴원을 요구하면 퇴원절차를 거쳐 퇴원할 수 있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오른손엔 짐가방을, 왼손엔 노트북 가방을 들고 급하게 병동 병실로 향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개방 병동을 지나 보호 병동에 들어서기 직전, 개방 병동과 보호 병동(폐쇄 병동)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 방에 들어서자, 나를 살펴본 간호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노트북은 반입이 안 된다고 하였다.
보호 병동(폐쇄 병동) 입원은 처음이라, 엄마를 터미널에서 모시고 오는 길에 병원 입원 필수품이라 여겼던 휴대폰과 노트북을 병실에 미리 놔두고 집에 잠시 다녀오려던 내 계획은 차질이 생겼다.
직장인이 하루라도 눈치를 덜 보기 위해 입원 기간을 줄이려면 하루라도 빨리 입원해야 했기에 내 마음은 조급했다. 새벽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급하게 5시간을 넘게 올라온 엄마가 배고파하는데도 모른척하고, 오후 2시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바로 병원으로 핸들을 돌렸건만 나는 보호 병동(폐쇄 병동)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노트북과 휴대폰을 다시 내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제야 딸의 우울증으로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동네 김밥 집에서 김밥을 두 줄 사 왔다. 엄마는 식탁도 아닌 거실에서 김밥 포장지를 펼치고는 앉은 채로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병원 주차 비용 때문에 자가용을 집에 두고 가야 했으므로 나는 오후 2시를 넘길까 봐 김밥을 제대로 편하게 먹지도 못한 엄마를 재촉해 잘 잡히지도 않는 택시를 겨우 잡아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보려던 내 휴대폰은 시골 친정집에 가는 아이의 태블릿 인터넷 게임을 위한 와이파이 재물이 되었고, 덩치 큰 노트북은 집의 원래 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 덕분에 학교대신 외갓집으로 강제 체험학습을 하게 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나는, 아들에게 친절하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아이와의 며칠간 이별에 대한 미안함을 달랬다.
결국 이렇게 입원할 거였으면 진작 입원을 결정하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됐을 텐데, 우울증 치료는 왜 미루고 미루어 자꾸만 참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친정으로 내려간 엄마 관련 글 : https://brunch.co.kr/@freeblue/36)
입원 직후
<초기평가 정신상태>
[전반적 모습] 흰 피부에 단발머리, 보통 체구의 위생상태 양호한 제 나이로 보이는 OO대 여성
[행동] 보통
[의사소통] 원활
[태도] 협조적
[자해 및 타해 위협] 유, 현재력 : 죽고 싶다는 생각(+)
[지각/인지상태][환각] 무 [착각] 무
[정신과적 병식] 유
[사고장애]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