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앓고 있는 공무원이 한 명 있다.
TV나 주변에서 우울증을 앓았다거나 우울증이 왔다는 말을 별생각 없이 종종 들었다.
잔잔한 미풍이 아닌 태풍 같은 우울증을 겪어보니 정말 고통스럽고 아픈 질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울증의 범위는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감기가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결코 흘려듣고 지나갈 수 있는 질환이 아니었다.
암에 걸리거나 팔다리가 부러진 병과 다르게 이 질환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것을 잘 안다.
휴직 연장을 위해 우울증이라고 기재된 진단서를 제출했더니 갑자기 담당자 목소리가 취조하듯 바뀌며 원본이 맞냐고 물었다.
상상도 못 한 '원본' 펀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원본이 맞다는 대답을 반복하고 처음 휴직할 때 제출한 진단서와 같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의 목소리가 갑자기 또 바뀌더니 "아, 누가 그렇게 말해서요..."라며 한 껏 꼬리를 낮추었다. 극적인 모노드라마를 찍는 줄 알았다.
당신이 '원본' 운운할 때 나는 드라이기만 봐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생과 사를 오가고 있는 걸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한없이 슬퍼서 눈물이 줄줄 났다.
(드라이기 관련 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느 공무원' : https://brunch.co.kr/@freeblue/28)
당신이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고 이해하려 했으나 될 리가 없었다. 우울증 오지 않게 관리 못한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우울증 환자에게 어울렸다.
누가 진단서를 문제 삼았는지 궁금했으나 어차피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안다고 해도 뭘 어쩌랴. 더 이상의 항변도 하지 못하는 느려진 뇌 반응속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휴직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휴직 연장이 승인되었는지 복직을 해야 하는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직장에서 안 알려주면 내가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휴직연장일이 될지 출근날이 될지 모를 그날, 행정망에 접속해 내 인사기록에서 휴직 연장이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뿐이었다.
'대체 나는 어떻게 직장 생활을 했길래 이런 오해를 받을까?'
'공무원이 사문서를 위조한다고? 그래봤자 징계받고 책임지는 건 어차피 나 아닌가?'
'질병휴직은 급여 일부가 나오는데 그게 기관예산으로 돈이 나가서 내가 미운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한동안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비참했으나,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휴직 후 길을 걸으면서도 아는 사람이 나를 보며 '쟤 멀쩡해 보이는데? 꾀병 아니야?'라고 생각할까 봐 괜히 움츠러들었다. 겨우 힘을 내 걸어가는데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도 있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면 누가 볼까 걱정, 멀쩡히 걸어가도 걱정이었다.
질병휴직의 경우 기간 안에 질환이 호전되지 않으면 직권면직된다. 즉, 잘린다.
"직장을 다니기는 싫지만 우울증으로 아픈 건 더 힘들어요. 이렇게 아플 거면 직장에 다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말에 의사가 웃었다.
어서 빨리 나아야 할 텐데, 복직은커녕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