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치료 Q&A - 5
한 중년의 여성 환자분이 배우자가 불치병으로 사망한 후 발생한 우울증으로 내원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눈물만 나고 의욕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한숨도 편히 잘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 정신과에 찾아오긴 했지만, 배우자의 사망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이라는 말을 거듭하며 정신과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환자분이 했던 말과 행동은 제가 늘 치료를 하며 고민해왔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비교적 젊은 제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의 죽음에 대한 중년 여성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환자분이 갖는 또 다른 의문은 상황이 변화할 수 없는데 어떻게 치료가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배우자를 다시 살려낼 수 없으니, 우울증도 치료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관점에서 환자분들을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고 슬퍼하는 것은 기질, 사고방식, 환경이라는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므로, 면담과 약물 치료를 통해 이 세 가지 요인에 대한 분석과 변화를 시도합니다.
첫 번째, 기질은 타고난 유전자의 발현입니다. 기질적으로 비교적 이성적인 사람이 있고, 감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분들의 경우 생리 전후로 감정의 폭의 변화가 유달리 큰 경우가 있으며, 계절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을 느낄 정도로 예민한 분들이 있습니다.
환자분들이 어떠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여 그에 맞는 적절한 약물을 사용한다면, 소량의 약물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치료 경과를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앞의 환자분의 경우 약물을 쓴 지 단 일주일 만에 증상이 상당 부분 호전되어 치료에 만족감을 표현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고방식은 성장과정에서 외부 자극에 적응하며 형성된 개개인의 무의식적 프로세스입니다. 이 부분은 제가 면담 치료를 할 때 환자분들에게 치료의 방향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제일 집중하는 부분이자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상황에 대해 타인들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공감받기를 바라며, 그러지 못할 경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문제는 감정은 개개인의 고유한 사고방식에 의해 유발되므로, 이 사고방식이 개인마다 모두 미묘하게 다르게 작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가진 사고방식에 대입하여 환자분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성공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배우자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가 생전에 더 잘해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혼자 남은 삶의 외로움에 대해 걱정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후자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면, 같은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 것입니다.
깊이 있는 면담을 통하여 환자분의 감정 뒤에 숨어있는 사고방식을 명확히 이해한 후에 사고방식에 대한 다양한 치료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환경은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주변 상황을 의미하며, 이를 인지하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배우자를 떠오르게 만드는 공간에서 유품들을 가까이하여 우울감을 극대화한다면, 공간적 분리와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 우울감의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기질, 사고방식, 환경 중 어떠한 부분에 더 치료의 초점을 둘 것인지는 환자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릅니다. 치료자는 3가지 모두에 대한 접근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며, 결국에는 환자분 스스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환자분과 치료자 사이의 깊이 있고 상호적인 면담 과정이 정신과 치료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망설이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