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17.08.13 ~ 17.08.19)
문득 LA에 처음 왔던 날이 떠올랐다. 다저스타디움을 출발해 UCLA에서 숙소 체크인을 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넓디넓은 캠퍼스 안에 있는 어디인지도 모를 정류장에 하차해 무거운 캐리어를 끌면서 방황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지칠 대로 지친 내 두 다리는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무작정 나를 이끌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안내데스크 직원은 그 미숙한 영어와 산만한 보디랭귀지 콤보를 어떻게 알아들은 것인지 내 캐리어를 한 손으로 번쩍 들고는 앞장서 걸었다. 그렇게 어떤 건물에 도착해 그곳 직원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그의 친절 덕분에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 카드키와 교내 지도를 받아 들고는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도를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 보니 한가운데 커다란 중정이 있는 고즈넉한 숙소 건물이 있었다. 내 방은 그 건물 3층이었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같은 학회에 참여하는 두 여학생들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만큼은 영어를 못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못 알아듣는 말에도 웃으며 연신 고개만 끄덕인 것 같다. 그 와중에 우연히 건물 화재경보기가 오작동을 했고, 둘 중 한 친구가 건물 관리자에게 심각하게 통화를 하는 걸 또 다른 친구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저 이 모든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에 즐겨보던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와 같은 미드 속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짧은 인연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드디어 숙소를 입성한 나는 감격에 겨워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내부는 상당히 넓었고 1인용 침대가 두 개나 있었다. 화장실은 배수구가 없는 건식 욕실이었고 투명한 샤워부스가 딸려 있었다. 에어컨 온도를 낮춰 놓았는지 살짝 추워서 온도를 보니 화씨로 표기된 어색한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모든 요소들이 이곳이 미국 땅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 나게 했다. 학회 접수는 내일 오전에 또 다른 건물로 찾아가야 했기에 이제 늦은 저녁을 먹기 전 내가 할 일은 딱 하나뿐이었다. 재빨리 내 목숨과도 같은 전 재산 400달러를 여러 가방과 옷가지에 나눠 분배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리거나 도둑맞더라도 전부를 잃지 않도록.
그랬던 순간들이 겨우 3일 전인데도 까마득한 과거처럼 아련했다.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 3박 4일의 학회 일정을 소화하고 체크아웃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이리저리 벌려 놓은 짐들을 빠짐없이 챙겨서 캐리어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산 미니 배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산 개구리 초콜릿 등 여행의 결과물들도 빼놓지 않고.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원 없이 거닐었던 드넓은 UCLA의 교정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길을 나섰다. 물론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릴 적 내 꿈은 곤충박사였다. 수두에 걸려 미치도록 가려운 온몸을 긁어 대는 나를 안쓰럽게 여긴 엄마가 곤충을 비롯한 자연탐험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북을 사 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다음은 아빠가 사 준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였고, 온갖 종류의 곤충이름을 줄줄이 외우던 나를 기특하게 여긴 할아버지는 당시 가격이 상당했던 5권짜리 컬러 곤충도감을 선물해 주셨다. 유년기를 지나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내 꿈의 스케일도 곤충에서 동물, 동물에서 생물로 커져만 갔다. 그렇게 대학 입시를 앞두고는 생명공학자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있었다.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해 생물이 아닌 무생물을 전공하고 있지만 아직도 곤충이나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황금 같은 자유시간을 LA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of Los Angeles County)에 올인하기로 정한 것도 이런 호기심의 연장선이겠지. 하지만 전철로 꽤나 오랜 시간을 걸려 도착한 박물관 입구에서 선뜻 입장하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체크아웃을 한 마당에 마땅히 보관할 곳도 없어서 가지고 온 캐리어 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또다시 무작정 끌고 들어간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걱정했던 캐리어가 아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내가 내민 100달러짜리 지폐가 미국 내에서는 위조의 위험도 있고 부담스러워 잘 쓰이지 않는 고액권이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데서는 더더욱 쓰기가 힘들기에 애처로운 표정까지 지어 보였지만 박물관 직원은 단호했다. 결국 남아있는 소액권들을 끌어 모았고 티켓과 함께 손목에 귀여운 입장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시작부터 여러 잡음이 있었음에도 박물관을 둘러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 내부에 전 세계 다양한 동물들을 비롯해 수많은 곤충 표본들과 영롱한 빛깔을 가진 광물들이 조화롭게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 뼈들이 내 머리 위에서 서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전시관이었다. 창문이 있는 쪽 벤치에 앉아 과거 지구의 주인들이 뽐내는 자태를 찬찬히 눈에 담아보았다. 뼈라는 것은 이처럼 퍼즐 맞추듯 거의 온전한 형태로 복원하는 게 가능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위를 덮었던 피부는 오로지 상상으로만 그려낼 수 있다. 때문에 과거에는 파충류의 모습으로 그려지던 공룡이 점차 깃털이 달린 조류와 흡사해진다고 한다. 비록 옛 모습은 영영 알 수 없지만 지구는 자신의 품을 허락했던 이들을 기리듯 그 흔적만은 고이고이 간직해 인간들과 마주하게 했다.
사실 LA에서 이런 곳이 처음은 아니었다. 둘째 날 파머스 마켓과 할리우드를 가기 전에도 우연히 한 박물관을 들렀다. 이곳은 눈보다는 코가 먼저 알아차리는 공간이었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아스팔트 공사를 할 때 나는 딱 그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까. 라 브레아 타르 피츠 & 뮤지엄(The La Brea Tar Pits and Museum)은 지하에 있던 석유 성분이 지상으로 흘러나와 자연적으로 생긴 타르 연못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웅덩이는 발을 잘못 디디면 타르의 끈적함 때문에 살아 나오기가 힘들다. 때문에 고대부터 형성되어 온 이 독특한 못 속에는 온갖 생물들의 시체가 즐비하다고 한다. 인간들은 아주 오랜 예전에 살던 생명체들의 시체가 뼈만 남아 돌처럼 변한 것을 고상하게 화석이라고 부른다. 내가 방문한 두 곳 모두 이런 화석들의 다양한 사연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유리로 만든 출구 천장에 매달아 놓은 거대한 고래 뼈 전시물을 끝으로 흥미로웠던 자연사 박물관 구경을 마무리했다. 이제 근처에서 재빨리 저녁을 먹고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몸을 의탁할 곳으로 찾아가는 중이었다. 교수님의 배려로 학회 일정이 끝나고도 하루의 시간을 더 번 것도 모자라 1박이 가능한 장소도 섭외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로 큰 미련 없이 내일 비행기로 귀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죽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이 도시에 다시 올 수 있지 않을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이 공간과의 이별을 곱씹으며 도착한 곳은 꽤나 익숙한 동네였다. 결국 마지막까지 내가 머물게 될 곳은 여기, UCLA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