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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란 Aug 31. 2021

출국은 무섭지만 해외여행은 하고 싶어

Los Angeles (17.08.13 ~ 17.08.19)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무심코 떠올린 질문의 답은 그냥 모르게 둔 채로 정류장 벤치에 걸터앉아 공항 셔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똑같은 색, 똑같은 모양을 한, 목적지만 다른 버스들이 연달아 지나갔지만 나를 태울 녀석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사실 언제 도착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멀쩡히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찼으니까. 오늘은 숙소까지 무사히 찾아가기만 해도 미션 성공인 하루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체적인 계획은 있을 리 만무했고 이는 곧 시간에 쫓길 일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덕에 나를 둘러싼 외제 시간은 평소 느껴온 국산의 것과 달리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시나브로 그 세를 확장해가는 태양빛에 서늘했던 아침 공기가 걷히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 발 디딘 낯선 이국 땅 한복판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미세한 구름 한 점 없이 지독히도 맑았다. 그 드넓은 하늘 아래에서 원래 속했던 세상과 잠시 끊어진 채로 온전히 혼자인 기분을 만끽해 보았다. 홀로 한국 땅을 떠나온 적이 처음이기에, 이름 모를 불안감과 묘한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어색한 감정들이 서서히 익숙함으로 변화해가던 그 순간 버스 한 대가 다가왔고, 내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곧바로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운전사의 미소 가득한 인사를 받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첫 목적지는 그린라인(Green Line)이었다.




  "자네, 정신이 있는 겐가, 없는 겐가?"


  적잖이 당황하신 전화 속 교수님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그저 해맑은 웃음으로 답하는 나였다. 상황은 이랬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오전 11시 20분에 출발하는 LA행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 아침 일찍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까지 깨끗이 비웠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배도 든든하게 채웠으니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생애 첫 미국 방문을 앞둔 벅찬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진짜 태평양을 건넌다고? 지금껏 살면서 가본 해외는 일본 두 번과 중국 두 번이 전부. 그것도 모두 단체로 몰려다닌 경험뿐이었다. 혼자서 떠나는 해외로의 모험은 아직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두려웠으니까.


  끔찍한 비행기 속 고소공포증, 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경비 그리고 통하지 않는 언어와 익숙하지 않은 문화들.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모여 상상 속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 탓에 국내 이곳저곳 혼자서는 잘도 다니면서 이상하리만큼 바다를 건너는 일은 '저질러'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을 외면해왔던 시간만큼 내 오랜 버킷 리스트들도 그 달성을 기약 없이 미뤄가야만 했다. 별건 아니었다. 단지 세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불가사의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타지마할, 피라미드, 마추픽추 같은 경이로운 건축물들 말이다. 이건 어릴 때부터 내가 갖고 있는 취미 같은 행동의 연장선이었다. 아주 오랜 과거의 인류가 남긴 조형물들, 소위 유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마주하면 그와 대척점의 시대에 서 있는 내 존재가 더욱 강렬해지는 기분이 든달까? 규모가 크고 웅장할수록, 그리고 더 오래된 것일수록 그 짜릿함은 배가되었다. 국내에 웬만한 문화재는 다 다녀보았으니 그 눈을 국외로 돌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첫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기회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홀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던가? 올해 초, 지도교수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현실로 다가온 이 순간이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영어실력이 젬병이라 졸업요건인 토익 점수도 간신히 맞춘 사람이 미국에서 열리는 재료학회에,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참석하는 일정이라니! 처음 들었을 때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학회비 지원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놓쳐버리는 바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석사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가난한 대학원생에게는 더더욱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렇게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그동안 억눌러온 욕구들이 온몸을 타고 흐르며 내 가슴을 뜨겁게 덥히고 있었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만료되어버린 여권을 새로 만들었고 미국 입국에 필요한 ESTA(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 전자 여행 허가 시스템)도 신청했다. 비행기 티켓은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여행사 직원분께 구두로 말씀드린 게 끝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학회 참여 신청이었는데 영문 사이트를 하나하나 번역해가며 어찌어찌하여 완료할 수 있었다. 4박 5일 일정 동안 크고 작은 행사들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숙식까지 전부 제공되기에 더 준비할 건 없어 보였다. 그런 나에게 걸려온 교수님의 전화 속 물음은 해외에서 결제할 수 있는 카드는 잘 챙겨가냐는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셨다. 나는 아빠가 환전을 넉넉하게 해 주셔서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교수님은 더 이상 별말씀이 없으셨다. 대학원생이 될 때까지 비자카드나 마스터카드 하나 없던 나의 낡은 지갑 속 400달러가 LA에서 쓰려고 준비해 간 내 전 재산이었다. 놀랍게도.




  돌아보면 아찔했던 내 여정의 시작은 이런 모습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의 나는 그저 설레는 맘으로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7년 8월 13일, 따사로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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