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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Aug 23. 2021

지켜봐 주세요,
이제 숨은 자리에서 나가려고요

매드연극제 인터뷰 ep.5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강릉 워크샵 <숨은 자리 찾기>


오늘 ‘매드연극제’에 오시면서 창밖을 보셨나요? 그럼, 분명 동해를 보셨을 테죠? 네, 이번 ‘매드연극제’의 무대는 서울 대학로가 아닌, 강원도 강릉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강릉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바다, 그리고 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품은 강릉


상숭싱(숨은자리찾기 강사): ‘모두를 위한 자유’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전국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찾았어요. ‘모두를 위한 자유’는 정신장애에 관한 것만은 아니에요. 정신장애는 물론 우리의 정신건강을 해치거나 정신장애를 유발하고 있는 사회구조의 다양한 레이어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피해자이면서도 차별과 조롱을 감내해야 하는 안산의 세월호 유가족 이야기나 차별은 물론 멸시까지 견뎌야 하는 태안의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 그리고 역시 엄청난 차별과 편견에 내몰리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서대문팀까지, 그렇게 이번 ‘모두를 위한 자유’에 함께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강릉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의 그림 전시와 음악 공연을 묶은 ‘숨은 자리 찾기’가 ‘매드연극제’의 원격 무대의 하나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숨은 자리 찾기’ 무대가 대학로가 아닌 강릉에서 오르게 된 것은 단체 이동이 불편한 발달장애인들을 배려한 선택이었습니다. 


상숭싱: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님들이 꼭 오셨으면 해서이기도 했어요. 생업 때문에 강릉을 떠나기 어려운 분도 계시지만, 장애인 자녀 일에 다소 소극적인 분들 마음을 돌려보고도 싶었어요.


물론 강릉의 모든 발달장애인의 부모님들이 공연에 무관심하신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숨은 자리 찾기’는 안티카가 주최하고 주관하기는 했어도, 강릉장애인부모회와 강릉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지원과 응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상숭싱: ‘숨은 자리 찾기’는 예술단체와 당사자 단체의 완벽한 협업으로 이뤄진 거예요. 저희 안티카와 예술놀이타 같은 예술단체, 그리고 부모회와 가족지원센터 등 당사자 단체가 전시와 공연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함께했거든요. 예술가들과 당사자들, 그리고 당사자들의 가족까지 모두 참여한 전시와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죠.



파스넷과 소고를 잡은 즐거운 손


김경희(강릉장애인부모회 회장): 저는 오랫동안 보아온 발달장애인들인데, 이렇게 밝은 모습들은 처음 봐요.


류윤정(강릉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하는 성섭님도 기분이 좋아져서 먼저 사진 찍어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최윤정: 음악 수업한다고 3달 넘게 가까이 지내면서도 기태님 저렇게 활짝 웃는 거 처음 봤어요. 


김경희: 제 딸 단비도 무대에 서긴 했지만, 제가 단비에게 항상 바라는 것이 이런 거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거. 저는 제가 없는 세상이 왔을 때, 단비가 시설에서 지내는 건 싫어요. 사회구성원의 한 명으로서 인정받고 제 역할도 하면서 더불어 살기를 바라죠.



‘숨은 자리 찾기’ 전시와 무대가 끝난 후 모인 자리에서 모든 이들의 표정이 무대 위에 올랐던 당사자들의 표정만큼이나 밝습니다.


최윤정: 수업을 하는 동안에서도 정말 즐겁고 좋아하는 것이 눈에 보였거든요.


상숭싱: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7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빠지지도 않고 참여한 것 같아요.


미술을 전공한 상숭싱은 ‘숨은 자리 찾기’에 전시된 그림 그리기 수업을 직접 맡기도 했습니다. 예술놀이타의 최윤정는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의 소고 연주를 지도했습니다. 이렇게 그림 수업과 음악 수업을 병행하여 진행된 기간이 15주였습니다. 


상숭싱: 그런데 15주 동안 차츰 변하는 모습들이 보이니까, 저도 많이 놀랐어요. 충열님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그리더니 이제는 큰 도화지도 금방 채우잖아요. 그리고 대부분 처음에 눈코입으로 사람만 그리더니 점차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스스로 깨닫더라고요. 주제도 다양해지고, 표현법도 다양해지고요. 하다못해 7명의 그림 스타일도 다 달라서 개성이 있어요. 



최윤정: 제가 음악을 비장애인들만 가르쳐왔는데요. 오히려 그분들은 소고를 쥐여 주면 어떻게 할지 몰라서 머뭇머뭇해요. 그런데, 발달장애인분들은 망설임이 없이 정말 자유롭게 표현할 줄을 알아요. 친구의 소리를 듣고 소고로 표현할 때의 집중력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상숭싱: 그리고 또 그사이에 많이 친해졌죠. 오늘은 세은님이 처음으로 제 두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대부분 사람과 친해지는데 필요한 발달장애인들만의 속도가 있잖아요. 그런 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죠.



발달장애인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전시와 공연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던 발달장애인들은 더욱 위태로운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김경희: 강릉 거리에 나가도 장애인들을 볼 수가 없어요. 그게 강릉에 장애인들 수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다들 숨어 있는 거지.


상숭싱: 사회가 발달장애인들에게 눈에 뜨이지 말라는 것을 은근히 강요하잖아요. 장애인들에게 요구하는 행동 양식이 있고. 특히 시선 끄는 것을 경계하는데, 그것 때문에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김경희: 그런 통제나 제약이 코로나19 때문에 더 많아졌잖아요. 그래서 더 스트레스가 많아요. 안 그래도 기본적으로 쌓인 게 많은데. 


상숭싱: 그래서 그림이나 음악 같은 예술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마음껏 발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까요.


최윤정: 음악 수업에서도 공연을 위해 단체로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주었잖아요. 그럼 그때는 제가 따로 지도하지 않아도 온전히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으로 만들더라고요. 



상숭싱: 이제는 사진 수업을 앞두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림도 음악도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경희: 맞아요. 그럼 강릉에서도 공연하고 나중에는 춘천에서도, 그리고 서울에서도 못할 것도 없죠.


최윤정: 그럴 수만 있자면 저희도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상숭싱: 발달장애인들이 왜 이런 대중 앞에 서는 전시나 공연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느낀 게, 거리에서 사진을 찍다가 어느 한 예술인 한 분이 다가오셨잖아요.


류윤정: 아, 맞아요. 그분 기억나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함께 협업해보고 싶다고 하셨죠.


상숭싱: 그래서 우리가 자꾸 거리로 나가고 무대에서 서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눈에 뜨이고 해야 해요. 우리가 숨어만 있으면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마음을 열 기회조차도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숨어 있지만 말고 나와야 해요. 우리의 숨은 자리를 드러내야 해요. 


김경희: 우리가 숨어 있지만 말고 나와야죠. 우리의 숨은 자리를 드러내야죠.


상숭싱: 그런 점에서 이번 ‘숨은 자리 찾기’는 굉장한 동기가 되고 또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함께 숨은 자리 찾기에 나서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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