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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Aug 25. 2021

‘모두를 위한 자유’
예술과 일상으로 대응하는 혐오

<모두를 위한 자유> 유튜브 팀 인터뷰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안티카의 덩그러니, 재규어, 슐라



노랗게 바랜 오래된 사진 속에는 한 아이가 친구와 조그마한 마당 정원에 서 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서 80년대 유행했다던 펑퍼진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의기양양 자세를 취하는 청년이 되었고, 곧 어른이 되었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덩그러니(김영한)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청년이 되면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가수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후두염이 걸리면서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글 쓰는 것이 운명이라 느끼며 시를 쓰게 되었고,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모두 4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덩그러니의 지난 30년의 이야기입니다.


덩그러니는 어른이 되기까지, 그리고 다시 30년을 이어서 내내 방황했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되고, 이제는 세월을 차곡히 쌓아 장년이 되었지만, 덩그러니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방황은 좀처럼 지칠 기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평생을 지고 가야만 할 것 같았던 방황과 아픔도 신앙이 생기고 안티카를 만나면서 조금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덩그러니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합니다.


혐오 따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려라


위는 안티카의 유튜브 채널 ‘모두를 위한 자유’에 올려진 ‘방황’ 편의 내용입니다. 한 사람의 50년 동안의 삶을 다 담기에는 ‘5분 8초’라는 시간은 턱없이 모자란 시간입니다. 하지만, 알게 될 기회가 한 번도 없던 누군가를 만나고, 막연히 가깝게 다가가기 어려웠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여는 데는 5분 8초면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당사자들이 앞에 서서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슐라: 저희와 같은 정신장애 당사자에게는 시설이든 어디든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고 지역사회에 나와서 당당하게 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평범하게 일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요.


당사자들이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지 못하는 것은 당사자들이 특별히 다르거나 그들의 신체가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회가 낙인과 차별로 그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가둬놓았기 때문입니다. 


슐라: 그래서 예전에는 사회에서 당사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먼저 멈춰야 나올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러다가 그냥 우리가 먼저 사회에 당당하게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혐오가 녹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녹여서 없앨 수 있게요.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상의 힘


‘모두를 위한 자유’는 당사자들이 극장을 가고 강릉에 여행을 다녀오고 ‘매드연극제’를 준비하는 등의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슐라: 영화 보러 극장에 가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같이 간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고, 이런 건 누구나 다 하는 평범한 일이잖아요. 비당사자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공유하면서 공감을 끌어내길 원했어요.


안티카의 팀원들은 최근 극장에서 <블랙위도우>를 함께 관람했습니다. 슐라, 재규어, 그리고 마블 시리즈를 처음 본다는 덩그라니와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부터 코믹스를 읽었던 하정우까지, 함께 영화를 보고 서로의 감상과 경험을 나누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슐라: 저희가 유튜브 콘텐츠와 같은 문화 콘텐츠를 같이 기획해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요. 창작자로서 감수성을 충전하는 거죠. 그래서 영화도 챙겨보면서 감상을 나누곤 해요. 최근에는 ‘매드연극제’가 있어서 연극제에 올려진 공연에 대한 리뷰를 계속 올리고 있어요.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예나 씨와 ‘뻔뻔한 장애인 코디미언’의 한기명 씨 등 다양한 분들과 연극 본 소감을 얘기하는 거예요.     



무지를 몰아내는 진실성의 힘


그렇지만 ‘모두를 위한 자유’가 가벼운 일상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신장애와 조현병, 복용하는 약과 폐쇄병동의 경험, 그리고 환각, 환청, 망상, 자살 충동 등의 구체적인 증상들까지, 먼저 물어보기도 두렵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은 이야기들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슐라: 미디어가 조현병 당사자가 관련된 사건·사고에만 집중해서 자극적인 이야기로 다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가운데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극히 일부이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뉴스만 접하면 경계심과 공포심이 커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더 자세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혐오는 무지에서 자라는 거니까요.


정신장애 당사자는 대부분 자신의 병을 알리고 난 후 주변 사람이 멀어지거나 떠나갔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한 상처가 반복되면서 많은 당사자가 가까운 사람에게도 자신의 병을 감추게 됩니다. 그만큼 당사자들이 자신의 병을 직접 얘기한다는 것, 그것도 유튜브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슐라: 당사자 모두가 나서서 공유하기는 어려운 얘기들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저희 가운데에서도 얼굴이 공개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또 당사자가 원한다고 해도 가족에서 반대하기도 해요. 그래도 저희는 대부분 공개하고 참여하고 있는 건데 안티카의 신념에도 동의하고 있어서도 그렇고, 그만큼 유튜브와 같은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많아서도 그래요.



언제까지? 그리고 언젠가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슐라는 언젠가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한 장면 같은 영상을 만들어서 유튜브에서 공개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슐라: 린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가 일상과 그 안에서 겪는 환각과 망상을 뒤섞어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슐라의 뮤직비디오도 좋아해 주지 않을까요?


슐라: 물론 예산이 많이 필요해서 당장은 만들기 힘들 것 같고요. ‘모두를 위한 자유’의 1년 콘텐츠 계획도 이미 다 나온 상태라서요. 우선은 ‘매드연극제’ 관련 콘텐츠부터 마무리 지어야 해요. 그리고 시를 쓰시는 덩그라니님이 직접 쓴 시를 소개하고 낭독하는 ‘시튜브’도 연작으로 이어가는 중이고요. 강릉으로 2박 3일 다녀온 것도 이것저것 보여줄 게 많아요. 저와 덩그라니님이 요리하고, 재규어님이 고기 굽고, 카라반에 앉아서 재미있는 얘기들도 많이 했어요. 차차 풀어가려고요.


그 외에도 ‘매드 프라이드’ 축제와 ‘매드 프렌즈’ 공연 등 안티카의 ‘모두를 위한 자유’를 채울 콘텐츠는 끝없이 이어집니다.


슐라: 언제까지 하냐고요? 혐오가 다 녹아서 사라질 때까지요. 단숨에 녹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희가 이렇게 ‘모두를 위한 자유’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열기를 조금씩 뿜어내서 사회의 공기를 조금씩 달구기 시작하면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녹겠죠. 그리고는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지겠죠.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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