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최근 독서에 흥미가 붙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취미에 빠졌다. 나만 할 게 아니라, 매일 작은 TV(탭을 의미한다.)와 유튜브를 외치는 여니와 라미에게도 어떻게든 흥미를 붙여주고 싶었다.
여름방학 전, 두 아이들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16시 30분까지 활동한 후, 17시부터 태권도 학원에서 만나 1시간가량 태권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진정한 육아의 시작.
자립심이 강한 첫째 여니 덕분에 샤워는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 가끔, 힘들고 지쳐 씻겨 달라고 할 때만 거들 뿐, 스스로 한 지 1년이 넘어간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샴푸를 짜내어 머리를 긁적긁적한다. 노래도 부르며 신나게 샤워하고 나오면 인공적인 따뜻한 바람을 만들어주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려준다.
저녁 준비는 씻는 동안 국을 만들고, 얼려져 있던 냉동밥을 데우고, 3가지 찬을 항상 준비해서 대령한다. 설거지를 편하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같은 크기의 철판 식판을 사용하다가, 조금 더 큰 플라스틱 식판을 사용해서 대령해 줬더니, 너무 많다고 투덜거린다. 투덜이들의 투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찬 그릇에 준비해 준다. 설거짓거리가 쌓여가지만, 따뜻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고스란히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꿋꿋이 준비해 준다. 기념으로 준비한 한 상 차림을 사진으로 저장해놓는다.
머리를 말려주고, 저녁을 먹고 나면 벌써 20시가 넘어간다. 밥을 다 먹어야지만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의 간식을 주는 아빠의 마음을 알아차린 녀석들은 꾸역꾸역 다 먹는다. 먹기 싫다고 하는 반찬이 있다면
“다 못 먹으면 간식은 없어!”
단호한 명령은 아이들에게 실망과 희망을 동시에 선사한다. 어지간해서는 다 해치우는 아이들이지만 가끔 남기고 싶은 경우, 그대로 인정해 준다.
“이거 다 못 먹으면 과자 못 먹어?”
”라미 7살이니까, 7번만 더 먹으면 남겨도 과자 먹게 해줄게!”
간식을 먹으며 학습지를 하고 나면 벌써 21시가 훌쩍 넘는다. 이내 취침시간. 22시 전 양치와 용변을 보게 한 후 잠자리에 들게 하고, 뽀뽀하고 안아주고 좋은 꿈 꾸라는 말과 함께 소등한다.
첫째 여니는 학교에 입학한 뒤 6월부터 용돈을 주기 시작했고, 용돈기입장을 작성해야 하는 중책의 임무도 부여했다. 하루 천 원, 일주일이면 5천 원이고 한 달이면 약 2만 원이다. 돈에 대한 개념을 알려주기 위한 아빠의 고육지책이다. 곧잘 작성하기도 하면서, 군것질을 사고 싶을 땐 항상 전화해서 산다고 알려준다.
“아빠! 나 아폴로 사도 돼?", “아빠! 나 피시 스낵 사 먹었어!”
“응. 알겠어~ 여니 용돈이니까 여니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돼. 하지만 용돈 기입장에는 잘 기입해야 해!”
”응. 알겠어!”
기입장을 잘 쓰는지 확인해 준다. 간단하지만 기록의 습관과 돈에 대한 개념과 덧셈, 뺄셈을 조금씩 알려주는 듯해 나름 흐뭇하다.
이것이 나의 평일 일과였는데, 방학 기간은 달랐다. 평소보다 일찍 하교와 하원하는 탓에 그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까 고민하다 집 앞에 있는 도서관을 가보기로 했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탓에, 집에 있을 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도 따라 하는 척만 했지 이내 작은 TV를 외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에 대한 흥미를 붙여줄까 고민하다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집 앞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을 가기 싫어하는 여니에게,
“도서관에 가면 용돈 천원 줄게!”
“정말? 천원 용돈 주는 거야?”
“응! 아빠랑 라미랑 같이 가서 책 읽으면 용돈 천원 줄게!”
“아싸! 빨리 가자! 약속 꼭 지켜야 돼! 용돈 천 원!”
일단 성공이다. 이단은 도서관에 가서 또 노력해야 한다. 도서관에 입성. 어린이 전용 열람실이 있어 막 조용하거나 엄숙하지 않아 아이들이 지내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나서 읽을 책이 없다며 투정 부리지만, 그래도 눈길이 가는 책 한 권 가져와서 아빠 옆에 와서 앉아봐라고 하니 이내 책 한 권을 번개보다 빠르게 읽어버리고는 다 읽었다고 속삭인다. 별 수 있나. 일단 도서관에 온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 내 입장만 고수한다면, 흥미를 붙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림책 하나를 읽고 나서는 옆에 있던 색칠 놀이에 더 빠져있다.
둘째 라미는 진득하니 앉아서 곧잘 책을 읽는다. 다 읽고 나면 다른 책을 읽고 싶다며 나의 손을 붙잡고 이리저리 다닌다. '아빠도 책 읽고 싶은데...'라는 말이 굴뚝같지만 책에 흥미를 붙이긴 위해서는 목줄을 달고 다니는 강아지 마냥 따라다녀 원하는 책을 골라줘야 한다.
독서하는 군인을 줄인 ‘독하군’을 운영하고 있는 후배는 도서관을 ‘돈서관’이라 부른다.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들이 자신을 올바른 길로 안내해 준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그렇게 부른다. 내가 모르는 경험, 내가 알고 싶어 하는 분야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은, 먼저 그 길을 가본 이들이 다음 사람을 위해 수많은 퇴고와 검토를 통해 이 세상에 빛으로 결과를 맺은 산물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후배 덕분에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독서와 글쓰기라는 건전한 취미를 가졌기에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한다.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하고, 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해당 분야의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투자이고 얼마나 좋은 돈이던가.
지금, 여니에게도 도서관은 돈서관이다. 아빠와 같이 가면 하루에 받는 용돈 보다 천 원을 더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조금 더 자라면 분명 그 말 뜻을 이해할 날이 오겠지. 도서관이 왜 돈서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