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여니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하루 천 원. 카드를 원하는 여니에게 카드는 웬 말인가. 어른들고 짠테크하며 카드 없애는 이들도 많은데 돈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카드를 달라니. 성사될 수 없는 딜이기에, 과감히 처단한다.
학교 가는 길, 바로 직전에 무인 문구점이 하나 있다. 부족한 문구류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군것질 등이 포진되어 등하교하는 아이들의 코 묻은 용돈을 아낌없이 베풀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친구들과 함께 받은 용돈을 아낌없이 베풀어준다. 천 원을 알차게 다 쓴다. 어떻게 금액을 맞췄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용돈기입장을 선물한다. 돈에 대한 개념과 가계부를 적기 위한 포석, 펜을 들고 글을 쓰는 연습, 더하기 뺄셈을 더 적극적으로 익히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일 듯.
용돈을 지급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폴로 하나를 구매해 입으로 순삭 한 뒤, 친구들과 뛰어가다가 남은 잔돈 300원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것도 떳떳하게. 돈을 잃어버렸는데 어찌 이리 당당하게 선포하는지 알 수 없다. 작은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 화를 선택하기보단,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돈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며 타이른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처가댁인 외가댁에 다녀온 뒤로 외할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겠다고 돈을 모은다도 선포하는 여니. 장모님의 권유였을지, 장인어른의 희망 사항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니가 만 원을 모은다고 한다.
음.. 만 원을 모으면 이자로 500원을 주기로 했다.
“우와! 500원이요?!”
만 원에 500원이면 5퍼센트의 약정이율이다. 미국 주식의 상승장보다는 부족하지만, 은행의 이자보다 훨씬 좋은 이율이다. 머 그런 것을 알리 없는 여니이기에 500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이자에 대해 알려주며, 매일 주는 천원 대신, 앞으로는 월요일 한 번만 3천 원을 주기로 했다. 이번에도 좋다고 한다. 매일 받는 천 원보다, 한 번에 3천 원이라는 더 많은 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더 기쁜가 보다. 용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시험 삼아 지급 일자와 금액을 변동해 봤는데 의외로 잘 먹혔다.
‘음… 언젠간 알겠지? 그때 가서 계획을 바꾸면 돼.’
지난 주말, 연휴 기간을 맞이해 친가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에게 부모님은 거액의 용돈을 하사하신다. 예전에는 손사래치며 거절한 아이들에게 주시는 용돈인데, 지금은 “감사합니다.” 하고 두 손으로 공손히 받을 것을 알려준다. 용돈 받는 것도 아이들의 복이라고.
갑자기 많은 용돈을 받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지갑을 보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 첫 등교하기 전날 밤. 많은 용돈은 방 서랍에 보관하기로 하고 5천 원만 들고 다니라고 말해준다. 말은 참 잘 듣는 여니. 그렇게 2학기 아침이 시작했다.
여니는 용돈을 쓸 때 항상 아빠에게 전화해서 컨펌을 받는다.
“아빠! ㅇㅇㅇㅇ문구점에서 줄넘기 젤리 사 먹어도 돼요? 친구한테 아폴로 사줘도 돼요? 오빠가 고래밥 사줬어요” 등등. 용돈이기에 여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용돈기입장에 쓰세요라고 앵무새마냥 같은 답을 반복한다.
어제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용돈을 쓰기 위한 전화 승인, 집행 후 기입장 기입 등.
태권도까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복귀한 두 아이에게 가방 정리 후 샤워하는 루틴에 대해 시행할 것을 전달한다. 여니는 가방 정리하며 용돈기입장을 작성한다. 오늘의 집행 실적은 줄넘기 젤리 한 개. 600원이기에 동전 4개와 지폐 4장이 남아있어야 한다.
“어라, 문구점에 두고 왔나 봐요.”
“뭐라고? 돈을 문구점에 두고 왔다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돈에 대한 개념을, 자신의 것에 대한 책임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여니의 모습이 어이없고, 황당했으니 말이다. 휴화산이 활화산이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참을 인 세 번을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까운 4천4백 원. 별 수 없다. 잃어버린 이를 탓해야 한다. 돈을 왜 두고 왔냐는 물음에 깜박했단다. 돈에 대한 개념을 다시 알려줘야 한다. 짧은 시간, 나의 뇌는 짧은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는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이내 내린 결정.
“앞으로 8월 동안 용돈 없어!”
이번 주는 지급됐지만, 다음 주 한 주만 미지급해 주면 된다. 하지만 여니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청천벽력과 같은 엄포였다. 씻으러 가야 하는데 폭우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소파에 누워 대성통곡한다. 라미에게 먼저 씻을 것을 명령한다. 누구 하나 혼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천사가 된 듯, 말을 너무 잘 듣는다. 눈치가 빠른 건가.
대성통곡하는 여니를 달래주면 안 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돈에 대한 소중함과 분실되지 않도록 자신의 소유물을 잘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깨달아야 한다는 아빠의 빡센 가르침이 필요한 순간이다.
라미가 씻고 나오고, 뒤이어 여니가 들어간다. 아직도 눈물바다다. 흑흑 되는 울음소리가 안쓰럽지만, 그만 울어도 된다고 다독이고 싶지만 아빠까지 약해지면 못 쓴다.
씻고 나온 여니는 마음이 추스러졌는지 울음을 그쳤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다. 씻은 뒤에 바로 저녁을 먹는 두 아이들. 아빠의 호통의 약발은 벌써 끝났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며 장난치기 시작한다. 식사 예절도 가르쳐야 하는 아빠이기에 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도 잔소리 폭격탄이 날아간다.
“다리 올리지 말고 똑바로 앉아서 먹으라니?!”, 둘이 또 장난쳐?, 밥이랑 반찬이랑 다 먹어야 튼튼해지지!”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돼서 그런지 듣는 둥 마는 둥. 행여나 오늘 학교나 어린이집 생활은 어땠어라고 물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가 이어지기에, 밥을 먹고 책도 읽고 학습지 교재도 해야 하고, 간식도 줘야 하고 등등의 아직도 많은 과제가 산적해있기에 대화는 간단하게 마무리한다. 밥을 다 먹은 여니는 간식을 먹는다고 아직 반이나 남은 라미에게 자랑한다.
“나는 오늘 사 온 줄넘기 젤리 먹을 거다~”
약이 오른 라미였지만, 밥을 다 먹고 간식을 먹는 룰 덕분에 머라 못하고 멀뚱멀뚱 보기만 한다. 그러자 갑자기, 여니가 줄넘기를 넘으며 껑충한다. 줄넘기 젤리란 줄넘기처럼 길게 생긴 꿈틀이 같은 기다란 젤리를 이어 붙여 만든, 말 그대로의 줄넘기 젤리였다. 그 젤리를 평소에는 잘만 먹다가 오늘은 그걸로 줄넘기를 하고 있으니 휴화산이 폭발해버렸다.
“먹는 걸로 머 하는 거야?! 아무리 거실이라고 해도! 먹지 말고 버렷!”
멋쩍은 여니와 고소하다는 듯에 쳐다보는 라미. 어이없다는 아빠의 한숨이 섞인 한 공간이 오묘한 분위기를 형성되지만 이내 적막을 깨는 여니의 한마디
“괜찮아요. 내일 다시 사 먹으면 돼요"
“용돈 다 잃어버렸다면서 무슨 돈으로? 아빠가 다음 주까지 용돈 안 준다니까?”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내일 다시 사 먹으면 된다는 쿨 워터 같은 마인드도 신기했지만, 내일 사 먹으면 된다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
“4천 원은 남아 있어요. 종이돈은 있어요.”
“아까는 다 문구점에 두고 왔다고 했잖아?!”
“종이돈 넣고 나온 동전만 두고 온거에요.”
아.. 이런 오해했다. 나는 용돈 5천 원을 모두 문구점에 두고 온 걸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천 원권 지폐를 넣고 나온 거스름돈을 두고 왔다고 한 여니였는데 용돈을 다 두고 왔다고 알았던 아빠였다.
‘아이 지갑 한번 보고 말할걸.. 다시 확인하고 머라 할걸..’ 껄무세가 내 머리 위를 비웃으며 날아다닌 듯하다. 그럼에도 동전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아빠가 잘 못 알았잖아. 아빠는 용돈 다 잃어버린 줄 알았다고”
“아니에요. 동전만 두고 왔어요.”
마음속으로는 안심을 쓸어내렸지만, 행동으로는 아까 혼내서 미안해라고 꼬옥 안아주고 싶었지만, 입은 정확히 정 반대의 입장이었다.
“지난번에도 동전 잃어버렸는데 또 잃어버린 거지? 용돈 아껴 써! 또 잃어버리면 안 돼!, 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