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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라미의 서울여행기

by FreedWriter

“아빠! 2층 버스가 타고 싶어요!”


요 며칠, 둘째 라미가 몇 번이고 버스를 타고 싶다는 요구 조건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라미 덕에 기역 자 형태의 소파 한쪽은 온통 자동차 장난감으로 자리를 차지한 지 2년째다. 항상 갖고 놀아도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버스를 타고 싶다는 희망 사항에 언젠가 한번 버스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방학도 끝나가는 판국에 버스를 한 번 태워줘야겠다는 다짐을 한 채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한다.


2층 버스를 타려면, 집 앞 버스 정류장의 강남으로 가는 광역 버스를 타야 한다. 강남은 아이들에게는 보여줄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서울역까지 가는 광역 버스도 있다. 2층 버스는 아니지만, 충분히 버스를 타고 다녀올 만한 곳이고, 남산 터널을 넘어가서 시내버스로 환승만 한다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광장시장까지 한 시간 이내 컷이 가능하다.


결정했다.


광장시장.


2층 버스가 다니는 노선은 아니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설렘을 느껴주기 위해 출발한다. 사실, 여니와 라미와는 버스 여행이 첫 번째는 아니다. 작년 12월 31일. 부대 업무로 집에 오지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뜻있는 24년의 마무리를 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서 한 것이 광화문 방문이었다. 그때도 동일하게 광화문 앞까지 가는 광역 버스가 있어서 한 번 타고 바로 앞에 내려 청계천을 따라 걷고, 연말 분위기를 느끼며, 추위를 견디지 못해 금방 돌아오긴 했지만 버스 여행을 다녀오긴 했다. 기억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버스 타러 가자!”


“우와! 빨리 가요!”


정류장에 도착한 뒤, 지도 앱에 도착지를 설정해 놓고, 버스 오기를 기다렸다. 정류장에 도착시간까지 확인되는 좋은 앱이기에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다. 더위가 여전했다. 이놈의 더위. 아이들도 힘들어한다. 다행히 버스는 시원했다.


“어른 한 명, 초등학생 1명, 유치원생 1명입니다”


친절한 버스 기사님은 아이들이 다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으신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어린이집에서 배운 안전 교육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잘 알고 있고, 더 잘 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두 아이는 함께 앉았고, 둘째 라미는 창문 쪽에 앉아 반대편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한다. 첫째 여니는 심심했는지 자신의 휴대폰을 열고 그동안 찍어놨던 자신만의 영상을 보면서 웃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복도 옆에 앉아 책을 펼친다. 버스의 진동은 아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수면제다. 20여 분이 지나자 바로 잠들어버린다.

‘그래, 시장 가면 많이 돌아다닐 듯하니 전투력 회복이나 하렴.’


환승 정류장에 도착 전, 아이들을 깨우고 버스에서 내린다. 시내버스는 약 7분 뒤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많이 있다 보니 더운 날씨에도 두 아이를 양 팔을 벌려 품 안에 안는다. 종로 시내로 가는 버스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운전기사님은 중년 여성분이셨는데, 나와 여니, 라미까지만 앞으로 태워주시고, 다른 분들은 뒷문으로 타라 하신다.


“아빠랑 놀러 가는구나? 광장시장 가니?”


놀랐다.


어떻게 명확하게 딱 아셨는지. 앞문은 열지 않을 테니 아이들을 앞 유리창 볼 수 있게 앞에 있는 손잡이를 잡게 해주셨다.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너무나 친절하신 기사님. 덕분에, 아이들은 서울 시내의 도로를 사람들 사이가 아닌, 가장 큰 버스 앞 유리창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

날씨는 여전히 더웠고, 아이들도 벌써 지친 모양이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구경을 시작한다. 더운 날씨에 사람들에 치이다 보니, 바로 보이는 과일 주스 가게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여니와 라미는 절대 참을 수 없다. 여니는 수박 주스, 라미는 파인애플 주스를 주문한다. 맛있게 마셔 주니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의 양손은 여니와 라미의 손, 여니와 라미의 한 손은 과일 주스를 들고 마시기를 반복하며 좁디좁은 시장 골목길을 구경하며 다닌다.


“아빠! 달고나 사주세요!”


간단한 간식들을 파는 가게에 멈추지만, 양손이 없는 아빠는 단호히 거절한다.


“주스 마시는데 무슨 달고나야, 더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데~”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들의 손에도 땀이 나기 시작함을 느끼고, 근처 초코파이 가게로 향한다. 사려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잠시 구경하면서 아이들의 땀을 식히기 위함이었는데, 영업 정신이 투철한 점원으로부터 시식용 초코파이를 받아버렸다. 여니와 라미에게 전달하니 맛있단다. 맛없을 수가 없겠지. 과일 주스에 이은 초코가 들어가는데. 결국, 예상에 없던 지출을 하고 말았지만, 머 어쩌겠는가. 아이들만 좋아한다면.


땀을 식히고 다시 이동!

갑판에서 팔고 있는 각종 음식이 눈에 끌린다. 특히 비빔국수. 광장시장에 많은 먹거리 중에 육회와 녹두전을 먹어야 한다 했던가. 아이들의 입맛에 절대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아이들의 눈에 띈 김밥을 먹여야 한다는 사명감에 더워도 갑판 가게에 앉아 주문한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꼬마 김밥과 순대 세트, 그리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비빔국수까지 주문한다. 수박 주스와 초코파이까지 입에 들어간 녀석들에게 꼬마 김밥은 그저 먹고 싶다기보단 갖고 싶은 음식이었던 듯하다. 입맛이 사라졌는지 잘 먹지 않는다. ‘아.. 당했다..’ 그럼에도 협상을 시작한다.


“김밥 다 먹으면 달고자 사줄게!”


“네!”


우격다짐으로 입에 쑤셔 넣는다. 안되겠다 싶어, 맥주 한 캔을 주문하고 나의 쓰린 속을 달래본다. ‘왜 이리도 시원하노..’ 나를 달래주는 건, 더울 때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었다. 떡볶이가 눈에 들어온다. 매운지 물어보니 맵지 않단다. 그래서 한 그릇 주문한다. 빨간색의 쌀 떡볶이. 여니와 라미에게 물어보니 여니는 먹어보겠다는데 라미는 싫단다. 여니에게 하나 쥐여주니 살짝 베어 먹고는 “매워요!” 당했다. 내 입맛에 맵지는 않았지만 아직 아이들에게는 어려운 모양이다. 이렇게 또 사장님한테 영업당했다.


주문한 음식을 다 해치우고, 이제 집에 가자고 한다.


“아빠! 달고나!”


약속한 건 귀신같이 기억해 내는 여니 덕에, 아까 봐둔 달고나 파는 매점으로 향한다. 여니는 달고나, 라미는 이상한 군것질거리를 산다. 두 개 합해서 9천 원이란다. ‘왜 이리 비싸노..’ 목적을 다 달성했기에 버스를 타러 향하는 길. 화장실이 가고 싶으시단다. 버스가 1분 뒤면 오는데 하필 이 시간에…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고 지하상가 화장실로 향했다. 가는 버스 안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기에.


개운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올 때와 동일하게 갈 때도 마찬가지. 환승한 뒤 광역버스 안에서는 우리 셋 모두 꿈나라로 향해 버렸다. 나의 체력도 이렇게 바닥나는 것인가. 현역 시절에는 당직 근무 뒤에도 업무하고, 체력 단련하고, 저녁 회식까지 해도 끄떡없었는데, 나이를 먹었는지, 육아의 고단함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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