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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의 결과

by FreedWriter

8.14. 20시.


출발한다는 다양한 인증샷과 촬영된 영상이 공유되는 단체 톡 방의 파이팅 있는 메시지와 함께 시작했다.

밀린, 집안일을 후다닥 마무리하고 중간 경유지로 차를 끌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완벽한 계획을 수립했다.

새벽 1시 전 도착 예정인 12.5km 지점에 차를 주차해놓고, 출발지까지는 공유 자전거를 타고 빛보다 빠른 페달링을 통해 이동하여 행군 코스의 맨 꼬리, 후미를 따라잡아 몰래 뒤따라가기로 말이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중학생들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다양한 태권도장들의 아이들이 함께 하는 행사였으며, 부모님들의 참여는 제한했다. 혹여나, 아이들이 힘들어서 부모님을 보게 되면 의지가 급격히 줄어들어 행군을 완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된다고 하여 최대한 들키지 않게 나 혼자 미션 임파서블의 영화를 찍으며 그렇게 여니와 라미의 주변을 맴돌았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평소에도 걷고 뛰는 것을 충분히 해왔기에, 오랜만에 하는 행군이라는 단어 자체도 설레었다, 현역 시절에는 무거운 군장과 그 군장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소총, 아무리 신어도 편리함을 느낄 수 없었던 전투화와 땀을 배출할 수 없는 방탄모까지. 행군을 하기 위한 최악의 조건을 갖추고도 다양한 거리를 행군을 경험한 나에게, 편리한 워킹화와 기능성 모자와 쿨링시스템의 옷차림은 행군의 최적화된 상태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동참했다.


먼저 달려가 몰래 자리 잡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며 생도 때 사진을 담당했던 옛 생각의 추억이 떠오르며 나름 열심히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들. 생각보다 정말 잘 걸었다.


하천 변의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를 이동하는 코스는, 그 늦은 21시 이후의 시간대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걷고 뛰는 주민들을 보며 정말 다양한 분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200여 명이 옷을 맞춰 입고 어린아이들이 백팩을 메고 걷고 있으니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꽤 많았다.


그중 가장 눈에 많이 띈 건, ROKA 티셔츠다. 사실, 현역 시절 때는 그런 옷을 굳이 사회에서까지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10명 중에 2명 정도는 꼭 ROKA 티셔츠가 자연스럽게 눈에 밟힌다. 아무래도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의 역할이 큰 것 같다.


12시 35분쯤. 중간 대휴식 지점에 행군 제대보다 먼저 도착했다. 행군을 지원해 주시는 부모님들도 많이 나와계셨고, 컵라면의 야식을 준비해 주셨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시원한 물을 제공해 주시며 행군하는 우리 아이들을 열심히 지원해 주셨다. 부모님의 힘은 실로 놀라울 정도다.


평소, 걸음이 느린 아이였던 라미가 제일 걱정됐는데, 다행히 선두 제대로 편성된 우리 태권도장에서, 제일 앞에서 걸었다. 40여 명이 참여한 도장의 인원 중에 미취학인 유치부 인원이 4명. 25km 코스지만, 유치부는 그 길이의 반인 12.5km 코스로 진행하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도착 후 돗자리에 앉아있는 라미를 찾았다. 울고 있었다.


“라미! 고생했어! 근데 왜 울어?”


”아파요… ㅠㅠ 발목이 너무 아파요ㅠㅠ”


씩씩하게 잘 걷던 라미였기에 걱정을 한시름 덜었는데 웬걸. 아프단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이 흐느끼며 볼을 타고 내려온다. 중간 휴식 지점까지 오는 마지막 코스가 오르막길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힘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잘 했다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며 발목을 주물주물 해주며 마사지를 해줘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다른 어머님이 컵라면을 챙겨 주시고, 얼음 물을 챙겨 주셔서 전투력을 회복시킨다.

여니는 씩씩하다. 괜찮다고 하며 컵라면을 먹는다. 행군하는 내내 손을 잡고 멘토 역할을 해준 고학년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유치부는 여기까지. 4명의 늠름한 유치부에게 관장님께서 완주 증서와 메달을 수여해 주신다. 닭똥 같은 눈물은 그새 사라지고, 개선장군마냥 어깨 뽕이 가득 찼다.


‘훌륭하다! 라미!’


유치부는 종료되고 마지막 12.5km를 위해 완주 제대가 출발한다. 부모님들은 뒷정리를 마무리하시고 소중한 보금자리로 돌아가신 뒤 예상 도착 시간과 장소에 맞춰 오시기로 했지만, 둘째 라미를 혼자 케어해야 하는 나에게 0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대에 집에 가서 쉬고, 06시 전에 도착해야 하는 빠듯한 시간대를 감당할 수 없어, 행군 제대를 몰래 따라가기로 하고 라미와 함께 제대를 찾아가며 이동했다.


이동 중에 바로 잠든 라미.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간 대휴식 지점부터 완료 장소까지 차로 이동하면 20분 정도 거리이긴 한데, 뱅뱅 돌아서 가니 얼마나 힘들까.. 고학년 친구들도 가장 힘들어한다는 마의 2시~3시 사이. 처음 하는 행군을 여니가 얼마나 버틸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는 관장님들의 사진을 보니, 마지막 휴식 지점에서의 여니의 독사진이 보인다. 영혼이 나간 듯한 눈동자의 지쳐서 백팩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인다.


05시 20분쯤이 되니 날이 밝아온다. 최종 도착 장소에 삼삼오오 부모님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라미를 깨워 나가야 한다. 카시트에서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라미의 투정이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니를 데리러 간 사이에 잠에서 깼을 경우, 아무도 없는 차 안에 혼자 있다는 무서움을 느낄 라미를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깨워서 가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찡찡대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방언 같은, 외국어 같은 말을 난사하며 뭐라 말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나에겐 그저 투정으로만 들릴 뿐. 억지로 깨워서 쌀 한 가마니보다 무거워진 라미를 안고 여니를 환영해 주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들어온다.


행군을 완주했다는 기쁜 마음에 웃으며 들어오는 아이들,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늠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응원해 주기 위해 새벽부터 모이신 부모님들. 폭죽과 눈 스프레이를 난무하며 아이들을 격하게 환영한다.


세 번째 제대로 완주한 우리 도장의 아이들.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다. 단연 보이는 내 딸 여니. 어리둥절해 한다. 많이 힘든가 보다.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니 고생했어라는 말만 무한 반복해 주며 격려에 격려를 더해준다.


전체 인원이 도착한 뒤, 간단한 마무리 행사로 야간 행군이 종료되고, 완주 증서와 메달을 수여해 준다. 메달은 부모님이 수여해 주어 그 의미를 더 해주었다.


단체 사진을 촬영한 뒤, 차로 이동하기 위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 여니, 라미 너무 고생 많았어! 완주하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정말 훌륭해!”


”내년에도 또 할 수 있겠어?”라는 물음에


“네! 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라미의 우렁찬 대답에 이은


“아니요;;; 못할 것 같아요..”라는 여니의 대답.


그 대답과 의지가 무엇이든, 오늘의 이 값진 첫 경험은 여니와 라미에게 큰 도전과 성장이 되었을 것이다. 야간 행군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모르고, 군중 심리로 신청해서 참여를 했을지라도, 그럼에도 그냥 도전하고 실천했다는 것 자체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마무리했다는 성공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너무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나저나,, 오늘 이 두 녀석의 짜증과 투정을 어찌 다 감당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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