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25km 행군 탐험기
작은 발로 걷는 큰 길 – 출발 전 이야기
약 한 달 전.
태권도까지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여니와 라미가 말한다.
“아빠! 우리도 걷는 거 할래요!”
“뭐? 행군을 한다고?”
사실, 사전 공지가 되었기에, 연례 행사인 야간 25km 행군의 일정이구나라고 별생각 없었다. 그런데, 그걸 하겠다고?!
“정말 하고 싶어?”
”네! 할래요!”
“행군이 뭐 하는지 아는 거야?”
“네! 잠 안 자고 걷는 거!”
“…..”
“그럼,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받으면 보내줄게!”
“네!”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도전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하는 나름, 천사의 탈을 쓴 아빠이긴 했지만, 혼자 덜컥 결정하고 난 뒤의 아내가 알게 되었을 때의 후폭풍은 우리 가정의 또 다른 전쟁터가 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지 않기 위해 원하는 본인이 직접 문의할 것을 전달했다.
“엄마가 해도 된대요!”
음… 웬일로 허락을 해줬데…
그렇게 나의 피 같은 생활비 일부가 여니와 라미의 행군 참여 비용으로 전환되었다.
군 생활 동안 행군이라는 건 내게 ‘익숙한 고통’이었다. 한낮, 또는 한밤중,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어둠 속을 묵묵히 걷던 기억이 선명하다. 발바닥은 화끈거리고, 어깨끈은 살을 파고들고, 총은 왜 그리도 무겁던지, 숨은 차갑게 얼어 들어왔다. 그걸 수도 없이 해본 아빠가 알기에, 백팩만 매고 가는 두 녀석들이 그 고통을 빨리 느껴보게 하는 걸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25km라는 거리는 어른에게도 만만치 않다. 한밤중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이 작은 다리로, 그것도 형광 조끼 하나 걸친 채 걷겠다고? 머릿속엔 수많은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중간에 “아빠, 안 갈래…” 하며 울상 짓는 장면, 동생이 누나, 형들을 따라가다 다리에 쥐가 나는 장면, 혹은 둘이 손을 잡고 끝까지 완주하며 ‘작은 영웅’이 되는 장면까지.
출발 전, 나는 그저 두 녀석의 운동화를 다시 한번 묶어주며 말했다.
“그래, 가보자. 대신 끝까지 걷는 건 너희 몫이야.”
“힘들면 ‘할 수 있다.!’ 세 번 외치고 하면 되는 거야!”
“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영화 속 특공대처럼 기합을 넣었다.
나는 웃었지만, 속으론 마음이 무거웠다. 군 시절 내내 몸으로 배운 건, 행군이란 ‘한 걸음씩 가는 단순한 일’ 같지만, 그 단순함 속에 체력과 인내, 그리고 마음의 힘이 다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도장으로 가는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안쓰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알았다.
오늘 밤, 이 25km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거리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길 위에서 처음 만나는 ‘긴 여정’이 될 거라는걸.
그리고 그 여정을 지켜보는 아빠의 마음은 응원과 걱정이 한데 뒤섞인, 그야말로 다중 복합 감정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