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니는 항상 아빠에게 전화를 자주 한다. 점심시간이나, 돌봄 시작과 끝, 태권도장을 가기 전이나 용돈으로 군것질을 할 때나 자주 해준다. 바빠도 웬만해서는 전화를 받아주고 있다. 전화를 못 받는 경우에는 왜 전화 안 받았냐고 묻고 따지는데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워 미안해라고 답하면 이유를 꼭 물어본다. ‘벌써부터 아빠를…’
그런데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여니에게 전화가 온다.
“아빠…”
떨리며 울먹이는 목소리.
“왜?”
“내가 친구랑 노는데 친구가 장난으로 내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 그게 나는 장난이었는데 친구 입에 클레임을 넣었어…”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누구 입에라도 들어가면 되지 않는 문구 재료 중 하나인 클레임을 본인 입에 넣은 게 아니라 친구 입에 넣었다고?
“친구 입에 넣었다고?”
당황스러웠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천천히 울먹이며 말을 하던 터라 앞에서 말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렸던 여니의 음성을 해석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과 친구 입에 클레임을 넣었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기서 아빠는 이성을 차려야 한다.
“응… 나는 장난으로 한 건데.. 친구가 같이 안 놀아 준다고 해서 그런 건데…”
여전한 울먹이는 소리에
“여니도 클레임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왜 그랬어?”
“장난이었어요… 안 놀아 준다고 해서…”
“여니야. 장난이라도 친구 입에 넣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사과는 했어?”
“네… 사과했어요…”
“사과했으면, 친구가 받아줬어?”
“네.. 받아줬어요..”
“알겠어. 친구가 받아줬으면 됐고, 앞으로 절대 그런 행동하면 안 돼! 알겠지?”
“네 알겠어요.”
미세한 주파수로 떨리던 목소리는 이내 안정을 찾은 것처럼 돌아왔다.
아.. 놀랬다 정말. 놀랬지만 감정을 억누르며 이성을 찾은 나 자신에게 칭찬한다.
여니는 한 살 터울의 동생인 라미와 항상 붙어 다니며 지들끼지 잘 놀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왔다 갔다 한다. 영화 아이덴티티의 주인공처럼 여니와 라미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과 방어의 연속처럼 우당탕탕 하며 지낸다. 다툴 때마다 화는 나지만, 한편으로는 둘로 인해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집 안에서 훈육할 수 있음에 다행으로 생각한다.
거울 치료라고 한다.
두 아이가 다툴 때마다 상황에 맞게 서로에게 했던 행동을 다시 한번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보기도 한다. 무엇을 느낄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적절히 활용하는 중이다. 사실, 이 거울 치료라는 것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말이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에 대해,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는 것은 필수 요소다.
‘한 번만 또 같은 행동해 보기만 해봐… 아주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