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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Apr 27. 2021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실험과 실현의 연속


<앤디 워홀: 비기닝 서울>, 앤디 워홀의 예술과 서울이란 장소는 왠지 비슷하게 느껴진다. 유행을 캐치하는 능력, 상품과 브랜드에 의미를 부여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신속하게 퍼뜨리는 명민함 등.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피어난 예술, 팝아트가 서울과 잘 어울리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소비 메커니즘과 소통 전략을 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 믿었던 워홀은, 상업 예술가 다음에 사업 예술가를 꿈꾸었다. 그는 1960년대 미국의 많은 사업이 부활하던 때, 반복되며 노출되는 광고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래서 선택한 기법도 반복해서 찍어내는 판화, 실크스크린이었다. 소재는 광고에 노출되는 유명인, 그리고 광고의 상품이었다. 그의 예술 작품은 경제 호황이 열린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와 같은 그의 예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전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다.


1. FAME: My Love, My Idol

2. ICON: NEW? NEW!

3. UNKNOWN & ORDINARY PEOLPLE: 타인의 초상

4. PASSION: WHERE WE LIVE IN

5. GAZE: DRAWING & INTERVIEW


첫 번째, 두 번째 섹션에서는 과감한 색채가 돋보이는 커다란 실크 스크린 작품을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에는 리즈 테일러, 마릴린 먼로, 무하마드 알리 등 명성 있는 스타들이 등장하는데, 이 유명인의 리스트에는 앤디 워홀 자신도 포함돼있다. 그가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고 말한 것처럼, 워홀은 작가로서 스타들과 같은 유명세를 얻었으며 성공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이룬 셈이다.


패션이 상업과 대중문화의 자유 지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38년이 넘는 시간동안 400호가 넘는 패션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그는 제품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보다 예술적 해석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광고에서는 예술을, 예술에서는 광고 이미지를 차용했는데 이와 같은 행보는, 앤디 워홀이 가진 시각의 독자성을 단번에 증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처럼 상업 예술에서 경제적인 성공뿐 아니라 예술적 성취까지 어떻게 이루었는지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세 번째, 네 번째 섹션에서는 그의 사진 작업과 팩토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온통 은박지로 둘러싸인 공간을 직접 마주하니, 팩토리에 관한 정보를 글로 접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신선했다. 반짝거리는 벽 앞에 서서, 워홀이 “열정과 타락의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오로지 자극적인 것을 기다리며 자극적인 집단을 관찰했다”는 오디오 가이드북을 들으니 몽롱하고 공허한 기운이 느껴졌다. 워홀의 취향과 그의 세계를 조금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일관된 메시지로 광고 이미지를 반복하여 노출하는 마케팅 전략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며,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다. 워홀이 활동하던 시대의 광고 매체가 주로 TV나 신문이었다면 현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무대가 옮겨졌다는 것만이 근소한 차이점일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워홀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관점에선 과거와 지금이 '아주 똑같다'고 평가하지 않을까. 그가 같은 방식으로 동시대에 활동했어도 그는 그때처럼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파급력있는 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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