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살림살이ㅣ食>, 유지윤 작가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살림살이ㅣ食>을 지은 유지윤입니다.
-‘살림살이' 다음의 한자, ‘먹을 식(食)’은 그림책의 부제인가요?
맞아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 식, 주'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세 가지 부제로 그림책 연작을 작업할 계획인데, 이번에 소개할 그림책은 그중에서 첫 번째 작업입니다.
-그래서 #밥 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셨군요. 특별히 먹는 것에 관해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보통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먹고산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먹는 것이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저는 ‘사람이 밥을 먹기만 해서는 살 수 없다, 밥처럼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살게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어요. 엄마에 대한 약간의 원망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엄마가 저를 키우실 때 그저 먹여서만 키우셨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떤 맥락인지 알 것 같아요.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정서적인 필요도 채워져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섬세한 소통이 부족하면, 그런 원망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맞아요. 그런데 어떤 경험을 계기로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조카가 태어나고 제가 직접 분유를 먹여서 길러본 경험이에요. 조카는 저랑 6살까지 함께 살았어요. 언니가 출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남편과 사별했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제가 언니 옆에서 조카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조카를 돌보실 때 마음가짐이나 그 과정이 더욱 각별하셨겠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아기는 보호자의 손길이 없으면 먹을 수 없고, 먹지 못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먹어서 그저 살아있는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는 전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예전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먹는 일’이 너무 중요해진 거예요.
익숙하던 삶의 패턴도 바뀌었죠. 조카와 함께 사는 동안은 제가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먹이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가장 막중한 임무가 되었어요.
-먹는 일이 일상에서 흔한, 기본적인 행위인 것 같은데 갓난아기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결코 당연한 게 아니네요.
저도 그래서 그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예전에는 엄마가 저를 소중하게 키워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니까, 먹이는 일 자체가 사랑이었다는걸 깊이 알게 됐습니다.
-아이를 먹이고 기르는 행위가 ‘살리는 일'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책 <살림살이>에서 ‘살림'도 중의적으로 사용하신 단어죠?
맞습니다. ‘살림'은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란 뜻도 있지만, 목숨이나 생명을 ‘살린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살린다'는 기르는 사람이 길러지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살린다'라는 뜻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엄마는 자식을 먹여서 살리지만, 자식은 엄마를 사랑함으로써 엄마를 살리기도 하거든요. 한때일 수도 있는 사랑이고, 서로에게 여러 감정이 쌓이다 보면 애정보다는 애증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가 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자식은 서로가 먹어서 살기를 바라잖아요.
꼴 보기 싫어도 밥은 잘 먹는지 걱정하는 마음을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마음이 서로를 살게 하는 것 같아요. 무조건적인 사랑을 토대로 스스로를 세워간다고 해야 할까요.
-가장 처음 그린 그림이 ‘밥’인가요?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결국 ‘밥’이었습니다. 여러 번 그렸어요.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에 관해 생각했고, 먹이는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먹이는 주체로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엄마, 그리고 엄마가 사용하시던 요리 도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오래된 도구와 그것들로 한결같이 나를 먹여살린 엄마, 거기에 쌓인 흔적을 보며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언뜻 보면 눈에 익숙한 형태인 것 같은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기이한 면이 있어요. 식생활 도구를 단순히 묘사하는 걸 넘어 조합해서 새로운 형태를 만드셨는데, 각 장면에 들어가는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궁색한 형편일지라도 하나 정도는 있을 만한 식생활 도구를 선택했어요. 거기에 상징물을 조합했고요. 저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나 태도를 생각하면 자연물이 떠오르더라고요. 성실하게 뜨고 지는 해와 달, 피어나고야 마는 한 송이 꽃, 계절을 모르고 푸르른 대나무 같은 것들이요.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를 떠올리면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항상 푸르러야만 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사시사철 푸르다’는 말은 언뜻 들으면 좋은 의미 같지만, 한편으로는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감당 못 할 고통 속에서도 사람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잖아요. 살아있는 한 푸르른 빛을 띠는 것을 거부할 수가 없는 거죠. 살아있는 것을 건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이때 사용되는 도구가 숟가락인 거고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대나무와 숟가락 손잡이의 형태적 유사성을 활용해서 대나무 숟가락을 그렸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태도와 대나무의 속성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어요. 다른 그림들도 비슷한 사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림책의 전체 흐름은 어떻게 잡으신건가요? 그림 순서나 시퀀스를 어떻게 의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단계에서 ‘해와 달 그림이 책의 처음과 끝이 되겠구나’ 정도는 생각했어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태어나서 누군가의 온기 아래 자리 잡고 살아가기 시작하잖아요. 해의 따뜻함이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사람의 온기처럼 느껴져서 해 아래 소반이 있는 그림을 첫 장에 배치했어요.
마지막 장의 경우, 차고자 하지만 기울고 기우는 듯하지만 차는 사람의 형편이 달의 속성을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하루의 끝에 뜨는 달과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면서 달 그림으로 마무리했고요. 그 외의 그림들은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순서를 정했습니다.
-먹이고 살리는 일에서, #관계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관계 안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먹고사는 일의 무게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조카를 길러보기 전까지 먹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유가 어쩌면 혼자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서였을 거예요. 물론 스스로 먹고사는 것도 벅찬 일이기는 하죠. 그런데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더라고요. 여기서 무게를 견디는 일이 그저 부담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또 관계의 힘이겠지만. 아무튼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었던 일이,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되기도 해요. 이 과정에서 되게 모순도 생기고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가령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물을 죽여 요리하는 행위가 그렇죠. 그래서 한동안 채식을 하기도 했었어요. 어느 순간 요리하는 과정이 징그럽고, 잔인하게도 느껴져서요. 비슷한 맥락에서 신념을 거스르기도 하고, 꿈을 포기하는 일도 생깁니다. 오로지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보여주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드러낼 때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나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해요. 많은 경우 관계의 지속성에 이끌려 고민의 시간을 통과해내겠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삶의 이야기와 사람의 태도를 그림과 글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이 고민하신 관계의 의미가 그림에는 어떻게 표현돼있나요? 겉으로 보면 꽤 은유적인 문구와 그림이라 설명을 더 듣고 싶습니다.
연꽃을 떠 올리는 국자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를 예시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있었던 일이에요. 이종사촌들과 밥을 먹으려고 둘러앉아 있었고, 이모가 저희에게 국을 떠 주고 계셨어요. 메뉴가 꽃게탕이었는데, 명절 끝에 먹다 남은 국을 처리하는 분위기라 국에 꽃게가 거의 없었어요. 저와 다른 사촌들 모두 멀건 국에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이모 딸의 국에는 꽃게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애들 앞이라지만 저렇게 티 나게 이모 딸만 챙기다니, 이모도 참.’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모가 그렇게 이기적인 분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남에게 주기 좋아하고, 사람들의 잘못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사람이에요. 당시에도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이모라서, 딸을 먹이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식을 위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죠.
-자식, 더 먹이고 싶은 사람, 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되는 거군요.
이모가 그 순간 자신의 그런 모습을 몰랐을 리는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알면서도 기꺼이 품위를 잃어버린 거죠.
혼자일 때는 품위를 지키기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관계 속에 있으면, 지키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모습을 포기하더라도 묻어둔 본성을 드러내길 선택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작가님의 경험을 거의 그대로 그림에 담으셨는데, 국자로 푸는 게 꽃게가 아니라 연꽃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네요. 왜 하필 연꽃인가요?
연꽃보다는 진흙탕을 먼저 생각했어요. 저는 들키고 싶지 않은 본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 진흙탕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여기저기 흙탕물이 묻어서 질척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걸 다 닦아낼 수 있을 것인가 까마득한 마음마저 들고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본성을 마구 드러내는 상황을 진흙탕에 빠진 순간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국자는 제 몸을 담가 무엇이든 간에 떠올리잖아요, 그런 국자를 볼 때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삶의 진흙탕으로 들어가서 꽃 한 송이를 떠 올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요. 더러울 줄 알면서도, 은근히 기쁘게 고생을 자처하는 모습이요.
-묘하네요. 진흙탕으로 기꺼이 들어가 온갖 더러움을 감수한 결과가 꽃이라는 게.
그런 면에서 제가 말하고 싶은 모순과 역설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비난하다 세월 가는 줄 모르던 때가 있었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본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순진함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서야 전에 의아하게 여겼던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진흙탕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 꽃을 떠 올린다'는 행위를 그대로 표현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먹는 행위와 먹이는 사람, 도구, 작가님의 구체적인 경험이 반영된 과정이 정말 흥미로워요. 개인적으로는 그림마다 비하인드 스토리나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는 자료가 같이 있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은데 의견이 궁금합니다. 이 그림책은 그렇게 보아야 더 잘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의도적으로 감추면서 생긴 빈 공백을 독자가 채우도록 의도하는 작품도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작품도 있지 않을까? 작가님 책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 더미 단계에서는 상징물의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낸 글을 부록으로 넣었었어요. 그런데 편집 회의 중에 글이 너무 설명적인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와서, 부록을 뺐고 글도 은유적으로 다시 썼어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작품의 토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토대가 된 일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제 그림과 잘 어울리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 번째로 선정하신 키워드, #흔적을 작가님의 언어로 한 번 더 설명해주세요.
저는 스케치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강박적인 면이 있어서, 원하는 형태가 나올 때까지 스케치해요. 작업 초기에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종이를 바꿔서 새로 그렸었는데, 종이를 너무 낭비하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망친 선을 그냥 지우개로 지우고 그 위에 새로운 선을 그렸습니다. 종이에 망친 선들 천지라, 처음엔 그 꼴이 그렇게 보기가 싫더라고요. 그런데 ‘망친 선'을 ‘흔적'이라 인식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 태도에 조금 변화가 생겼어요.
-어떤 변화였나요?
망쳐서 지운 선, 남은 자국을 가이드 삼아 그 위에 새로운 선을 그리니까 최종 스케치가 깔끔하지는 않아도 마음에 드는 선을 빨리 찾아낼 수 있더라고요. 어떤 날에는 차곡차곡 쌓인 망친 선들이 무늬처럼 보였고,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한지의 티끌처럼요. 아름답다고 느낀 선의 느낌을 완성된 그림에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살아온 흔적을 몸 안과 밖에 간직한 사람들의 살결은 이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주름이나 상처 같은 잔 선들이 보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여러 일을 겪고 상처도 생기고 그럼 흔적이 남잖아요. 그게 그 사람만의 질감이나 색깔이 되기도 하고, 그런 의미와도 연결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며 남겨진 흔적도 제 나름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흔적'에 관한 글을 한바닥 쓰기도 했거든요. 의미가 정리되니 그림에도 적용하자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 무렵에 식탁에 앉아있는데, 엄마가 오랫동안 사용해오신 숟가락과 칼이 보이더라고요. 가까이 가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그런데 지저분하다고만 생각했던 사용의 흔적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흠이 있거나 빛이 바랜 종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리다 실수로 그은 선도 살짝만 지워서 흔적을 남겨뒀고요.
-오래 살아온 사람들, 물건의 흔적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은유가 작업 과정에 그대로 반영되었군요.
그렇습니다.
-그림책에서 베스트 한 장면을 꼽는다면?
아까 자세히 말씀드렸던 국자 그림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작품을 꼭 보았으면 하는 사람은?
특별히 없습니다.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종이와 연필을 주로 사용합니다. 저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고, 패션 일러스트를 그렸기 때문에 형태와 소재를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어요. 시간을 투자해야만 나오는 그림이었죠. 그림책 공부를 시작하던 시점에, 그렇게 해서는 수업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종이를 오려서 러프하게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속도를 위해서 시작한 작업인데 결국에는 그리는 작업에서보다 더 섬세함을 부리게 되었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이를 보고 만지는 것 자체가 저에게 즐거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그렇다고 믿어왔던 것이 그렇지 않아지는 순간에 무언가 쓰거나 그리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하나의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글쓰기예요. 글 자체를 써먹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고 그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글을 쓰고 나서 써놓은 글 속의 단어들을 연구하기 시작해요. 단어의 사전적 정의와 내가 느낀 감정이 맞아떨어지는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어원이나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책을 찾아 탐험하듯 읽어나갑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면 욕심스럽게 모은 재료들 중에서 어떤 부분에 집중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게 되더라고요.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글쓰기 단계에서 발생합니다. 저의 경우, 글을 쓰다 보면 말을 할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돼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나, 이제는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저의 면면이 주로 문장이 되는데요, 제가 쓴 문장을 읽는 행위가 저를 마음의 가장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곤 해요. 이때,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함으로써 제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 좋은 점이고, 그럴 때마다 새삼스러울 정도로 아프다는 것은 나쁜 점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요즘 들어서는 앞으로의 작업이 어떤 것이어도 크게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갈 때는 작업의 완성만을 목적지라고 여겼는데, 막상 목적지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뒤를 돌아봤더니, 지난했던 과정 안에 완성작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들이 촘촘하게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작업을 하게 되더라도 완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겪어내고 싶어요.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주세요.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인 들쥐 프레드릭은 수다쟁이 들쥐들이 식량을 모을 때 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읍니다. 프레드릭은 수다쟁이 들쥐들로부터 무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속내가 담긴 질문과 눈빛을 끊임없이 받아요. 그래도 프레드릭은 묵묵히 할 일을 할 뿐입니다. 겨울이 오고 모아둔 식량이 떨어지고 나니, 수다쟁이 들쥐들은 더 이상 재잘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이때부터 프레드릭이 모아온 빛과 색깔과 이야기의 유용이 빛을 발합니다. 작업에 몰두하는 하루가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작가님의 첫 번째 그림책이에요. 두 번째는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두 번째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이 될 것 같습니다. 보기에 따라 바람일 수도 있고, 욕심일 수도 있고, 기도일 수도 있는 것들. 저의 주된 관심의 대상은 무엇이든 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바람을 이야기하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나에게 그림책이란?
조카와 함께 살았을 때, 조카가 그림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했던 것이 그림책 읽기의 시작이었어요. 읽어 달라고 하니까 그냥 읽어준 거예요. 한동안은 매일 밤마다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그림책을 가져오는 건 조카인데 그림책을 읽다가 눈물을 훔치는 건 제 쪽이었어요. 어느새 조카는 잠들었는데 저 혼자 그림책을 탐닉하고 있더라고요. 정신을 차려 보니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있었어요.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지만 순간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림책이 어째서 나에게 찾아왔고, 나는 어째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림책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조금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