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구름공장> 유지우작가 인터뷰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 유지우입니다.
-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그림 전공이 아니지만, 취미로 그림을 즐겨 그리곤 했어요. 5년 정도 해오던 광고 기획 일을 관두게 된 시점에 진로를 고민하며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저는 그림 자체보다 그림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더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 그림책 작업 전에 웹툰을 연재하셨잖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웹툰은 그림을 연습 하기 위해 제가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소재를 고민하다가 반려견 땅콩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그려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인스타그램(@ddangkongtoon)에 그려서 업로드했는데,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 제의가 들어왔고 본격적으로 <땅콩 툰>을 연재하게 되었어요. 그림 한 장을 잘 그려내는 것도 좋았지만, 여러 장의 그림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 사이 사이의 연속성을 고민하는 일이 적성에 더 맞더라고요.
- 웹툰과 그림책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매체예요.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처음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작업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데 작업을 계속하려면,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에 관한 가이드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캐릭터나 이야기 창작 수업, 그림책 수업, 인문 수업 등 여러 기관에서 하는 관련 수업을 들었고, 상상마당에서 수료한 수업에서 그림책 더미를 완성하며 그림책 작가로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출간을 앞둔 책까지 포함하면 작가님 그림책이 벌써 세 권인데요, 같은 작업자로서 부러움 반, 놀라움 반 입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리고 다양한 소재로 작업하는 비결이 있나요?
올해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주최한 언프린티드 아이디어 3회 전시에서 더미로 보여드린 <여우 목도리>는 이제 발간을 앞두고 있는데요, 맞아요. 그 그림책까지 포함하면 <오이 괴물>, <구름 공장>에 이어 제 그림책이 벌써 세 권입니다. 각각의 출판사도 다 다르고요.
특별한 비결이라기보다 저만의 습관이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혹은 잠들기 전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생각의 흐름에 저를 맡기곤 하거든요. 가령, ‘고양이가 오이를 보고 놀라는 영상 진짜 귀여웠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던데, 고양이 눈에 오이가 어떻게 보였을까?’, ‘..초록 뱀?’ 이런 식으로 서로 연관 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편인데 그런 생각이 흐르도록 얼마간 놔두어요. 그러다가 재밌는 이야기 소재와 연결되면 재빠르게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둡니다. 엉뚱한 상상으로 끝날 때도 있지만요.
- 엠비티아이 N 이시죠?
맞아요, N 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덕분이기도 하고, 그동안 제가 그림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계속 작업하던 와중에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출판사를 만나 꾸준한 출간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 이번 인터뷰에서 소개할 그림책으로 <구름 공장>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구름 공장>은 제가 반려견을 키우며 줄곧 해왔던 생각을 담은 그림책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많은 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번에 더 자세히 들려드리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어요.
-그림책 <구름 공장>의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 있다고 들었어요.
구름 공장에 갑자기 나타나 공장을 휘젓는 동물이 하나 있죠, 바로 강아지입니다. 저의 웹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반려견 ‘땅콩’이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요, 바로 구름 공장에 나오는 강아지는 땅콩이의 아가 시절을 모델로 그린 캐릭터예요.
- 그렇군요. 땅콩이를 캐릭터화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그림책 속의 강아지가 워낙 천방지축인 캐릭터라서, 강아지가 움직일 때 운동감이 생생하게 표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땅콩이보다 털을 더 풍성하게 그리고,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팔랑이는 귀도 귀엽게 표현될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 첫번째 키워드가 ‘강아지'가 아닌 ‘가족'이네요.
땅콩이를 아기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벌써 7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요, 반려견을 키우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강아지는 사람과 같은 가족과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땅콩이에게도 저나 다른 가족 구성원을 지칭할때 ‘언니, 엄마, 아빠, 오빠’로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 하곤 해요. 사람이 아닐 뿐이지, 땅콩이는 당연한 우리 가족이니까요.
- 이 그림책 이야기는 어쩌면 새로운 관계 정립에서 출발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그렇죠. 단순히 동물이나 강아지가 아닌, ‘가족'이라는 범위로 관계의 의미가 달라지면, 공유하는 시간의 내용도 달라지더라고요. 사람과 반려견의 관계를 단순히 동물과 주인 관계로 본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 두 번째로 선정하신 키워드가 #죽음 이 아니라 #이별 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죽음'은 영원한 단절의 느낌이 강하다면 ‘이별'은 그것보단 더 상냥한 단어 같아요.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여지를 남기는. 제가 그림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위로의 메시지와 더 가까운 키워드예요.
- 저는 사실 이 그림책을 읽고 작가님이 강아지와의 이별을 이미 경험하신 줄 알았어요.
그렇군요. 땅콩이는 제가 처음으로 키우게 된 강아지예요.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가령 강아지와 사람은 나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 같은 거요. 어느새 지금의 땅콩이는 강아지의 인생 절반을 산 것일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별을 겪어보지 않았지만, 일상에서도 어느새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 이야기가 그대로 <구름 공장> 스토리가 되었습니다.
- 이별을 생각한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들리네요.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더 정확히 말하면, 강아지를 키운다면 배제할 수 없어요. 이별에 관한 생각을요.
- 무의식적으로 연습하고 있는 걸까요?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 이야기 소재와 달리, 강아지가 공장에서 소란을 벌이는 과정이나 귀여운 그림체 등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분위기는 유쾌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 책을 작업하며 이별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어요. 이별 자체는 드문 사건이 아니지만, 이별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일은 누구도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애도하는 과정이 중요할 텐데, 비슷한 맥락에서 이 그림책이 이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결코 슬프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이지만, 너무 슬프고 무겁게만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 의도하신 거군요.
네. 전체적인 설정이나 귀여운 캐릭터 표현에서부터 그림책 분위기를 심각하지 않게 기획하려고 했어요. 가령 구름 공장에서 낙타 그림자를 발견하면서 그림책이 끝나는 장면도 비슷한 의도에서 나온 일종의 장치라고 볼 수 있어요.
이 장면 때문에 <구름 공장> 시즌 2가 있는지도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시즌 2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기분의 전환점이자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을 넣었습니다.
- 사실이 아니더라도 독자에게 큰 위로를 주는 것이 그림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겠죠.
맞아요. 이야기는 사실은 아니어도, 진실은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그림책에도 그런 힘이 있으면 좋겠어요.
- 세 번째 키워드를 #추억 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별이 그토록 힘든 이유는, 저는 그만큼 큰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의 크기와 이별의 아픔은 비례한다고요. 그러니 사랑하는 이와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별이 너무 힘들고 슬프기만 할 때, 이 사실을 떠올리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별을 맞았을 때 그저 슬픔에만 잠겨 있기보다는 행복했던 소중한 추억을 더 많이 떠올리셨으면 하는 마음을 <구름 공장>에 담았어요.
- 하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즐겁게 보다가, 공간이 지상으로 바뀌고 홀로 남겨진 아이의 장면이 나올 때 가슴이 철렁했어요. 강아지의 빈자리가 확 실감이 났거든요.
이 장면을 보시면, 그림자에 가려 조금 어둡게 표현되었지만,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활발한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집을 나갔다 돌아오면 강아지가 어지럽힌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될 때가 있거든요. 특히 강아지와 함께 산다면 신발장이 이렇게 가지런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강아지의 빈자리를 이런 디테일에 표현하기도 했어요.
- 그림책에 전체적으로 글이 없잖아요. 침묵한 상태에서 이 장면을 보니까 더 슬픔이 팽창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특별히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든 이유가 있나요?
<구름 공장>은 처음부터 글 없는 그림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죽음, 애도라는 주제를 담고 있어서 어떤 글을 쓰거나 대사로 표현하기가 어려웠거든요. 독자가 그림을 천천히 보면서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을 때보다 그림만 있으면 감정이 들어올 공간이 더 넓어진다고 생각했어요. 어딘가 해방되는 느낌도 들었고요.
- 글 없이 내용을 전달하는 일이 까다로웠을 것 같아요.
이야기 구조와 장면 구성에 힘을 들였습니다. 스토리가 완성된 후에도 불필요한 장면은 없는지, 수없이 체크하며 여러 번 장면을 넣었다 빼는 작업을 반복했어요. 같은 이유로, 캐릭터 표정도 신경 써서 작업했어요.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도 이야기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 어떤 페이지는 4분할, 어떤 페이지는 펼침면으로, 화면을 리듬감있게 구성하셨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하는데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컷 분할은 스토리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하려고 했어요.
- 꽤 많은 사람들이 글 없는 그림책을 어려워한다고 하더라고요. 글 없는 그림책을 보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른들, 특히 아이가 있는 부모님 중에서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생각보다 아이들이 관찰력이 좋아서, 어른의 입장에서도 재밌는 포인트를 발견하곤 해요. 특히 글 없는 그림책은 ‘읽어줘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아주 좋은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며 적절히 질문하면 돼요. 예를 들어, '이건 무슨 상황 같아?'라든지, 비슷한 질문을 하며 대화에 초점을 맞추면 어렵지 않게 글 없는 그림책을 함께 볼 수 있어요.
저는 강연 나가서 여러 구름 캐릭터의 이름부터 정하고 시작해요. 글이 없어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알 수 없는데, 아이들이 정하는 이름으로 그림책을 읽기 시작하는 거죠. 정답을 찾아서 읽어주려고 하니까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심지어 아이들은 이 책을 죽음, 애도 그림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좀 더 자유롭게 이 책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림책에서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한 장면과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아지 모양의 구름이 달려오는 듯한 모양으로 하늘에 떠 있는 이 장면이에요. 반려견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있던 아이는 하늘에 떠오른 구름을 보고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노을 진 구름이라는 뜻의 ‘놀구름’이란 단어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장면은 제가 ‘놀구름’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 이 작품을 꼭 보았으면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을 경험한 분들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무조건 덮어 버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에요. 이별을 이해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주로 아이패드를 사용합니다. <구름 공장>은 아크릴 붓 느낌이 나는 디지털 브러시로 채색했어요. 그 후엔 여러 질감을 합성해서 실제 종이에 그린 듯한 느낌을 더하고 그림을 완성해요.
-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여행을 다니고, 전시를 보고, 서핑처럼 새로운 것을 배우고 … 다양한 것을 경험하려고 노력합니다. 경험이 곧바로 영감이 되진 않지만, 차곡차곡 쌓인 경험들이 서로 합쳐지고 섞이며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로 떠오르곤 해요.
- 작업을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조용한 새벽에 집중이 잘 되다 보니 주로 밤에 작업을 해요.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잠시 생각을 비우고 반려견 땅콩이와 산책을 나가거나 운동을 다녀오곤 합니다.
-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출근이 없지만, 퇴근도 없다는 것?
작가에게 퇴근 시간이란 ‘자기만족’이 된 시간이기에, 특히 마감 시즌에는 새벽 3-4시까지 작업을 하기도 해요. 광고회사를 퇴사한 이유가 야근이 싫어서였는데, 아이러니하죠? 힘들지만 한편으론 적당히 안주하지 않으면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어요.
-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습니다. 겨울 이불처럼 포근한 감정의 이야기요.
-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주세요.
노에미볼라 작가의 <내겐 너무 무거운>이란 그림책을 추천해요. 두려움, 무서움, 걱정 등 문득 찾아오는 감정을 커다랗고 고약한 곰에 비유한 책이에요. 한 번쯤 느껴봤을 낯선 감정을 위트있게 비유한 표현이 재미있어요.
-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여우 목도리>라는 책이 이제 곧 발간 예정이에요. 추운 겨울 숲속 마을에서 여우 목도리와 여우 사냥이 유행하고, 한 소녀가 여우를 숨겨 숲으로 돌려보내는 이야기에요. 책의 앞에서 ‘소녀의 이야기’가 뒤에서 ‘여우 이야기’가 시작돼 중앙에서 만나는 양방향 그림책으로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한 소망을 담아보았어요.
- 나에게 그림책이란?
새로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