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가시> 이승희작가 인터뷰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정서적폭력 #공감 #회복탄력성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이승희 작가입니다.
-그림과 감정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그렇게 소개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말은 즉시 나오지 않고, 글은 쓰다 보면 내가 가진 우울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면서 멋진 문장이 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더라고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데 그게 싫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잘 그리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그건 있어 보이는 척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최대한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 가깝게 그려내고 싶어서 애쓰게 되는 그런 노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이 제게는 조금 더 양심적이랄까, 그렇게 느껴져요. 어쨌든 그림으로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림은 제가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에요.
-작년에 작가님의 개인전 ‘불안의 궤도'에서 봤던 그림을 보면서 느꼈었는데, 이번에 출간하신 그림책을 보면서도 작가님은 꽤나 직접적인 표현을 하시는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단순히 ‘예쁜 장면’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작가님 그림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이런 작업의 특성이 말씀하셨듯 ‘감정을 그림으로 전달한다'는 부분과 연관 있을 것 같아요. 가령 ‘고통, 상처, 아픔'과 관련된 개념을 어떤 사물이나 풍경에 빗대어 표현하지 않고 커다란 가시가 사람의 몸을 관통하는 형상을 그리는 것처럼요.
‘힘들다고 투정 부리거나 슬프니까 옆에 있어 달라’ 그런 말을 잘 못하다 보니 제 속이 얼마나 복잡한지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를 거예요. 그래서 그림으로나마 직설적이고 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간절한 읍소에 가까워요.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누군가는 제 마음(그림)에 공감해주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단순히 작품으로만 보기도 해요. 감상하는 이들의 자유지만 사실 저는 작품 속의 제 마음을 더 들여다봐 주길 원해요. 그림이 제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도 동판화 작업을 하고 있어서 이 작업 과정이 어떤지 그려져서, 작가님 그림책을 보며 때때로 말문이 막혔어요. 이게 다 어떤 시간일까… 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이럴 필요까지 있는 거예요? 작가님께, 그림을 그린다는 것, 그림책을 만든다는 건 어떤 과정인가요?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땐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재밌게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수단, 처음엔 그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며 인간관계가 변하고 여러 일을 겪으며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특히 내면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을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몰랐던 나 자신을 이제야 안 것 같기도 하고요. 여러 일을 겪으며 내가 변해버린 기분도 들었어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던 건, 내면의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이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항상 마음이 좀 우울했었는데 그걸 어느 인생의 시점에서 더 분명하게 인지했어요. 그런데 상처받은 상태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나 표현은 필요했어요. 말로는 직접적으로 표현 못 하는 감정, 글과 그림으로는 되었어요. 그런 과정을 걷다 보니 여기까지 이르렀네요.
-그림책 <가시>는 바로 이 그림 한 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출판사 대표님이 제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이 그림 한 장을 보셨는데, 이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셔서 그림책 <가시>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림을 그리게 만든 걸까요?
그림을 그린 건 2018년이었는데 뭔가 우울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 있었나 봐요 제가. 그림을 그릴 당시엔 가시의 구체적인 의미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나중엔 이 가시가 사람들이 저에게 하는 말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상처가 되는 말을 들을 때, 쉽게 형용할 수 없는 어지러운 감정이 저의 내면 안에 뒤섞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사람들이 의도한 것보다 제가 더 부풀려 받아들였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런 사람들의 말이 저에게 상처가 되었고 힘들어졌다는 결과겠죠.
그렇게 사람들의 말에 상처받으면서 저 또한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어요. 참고 참다가 결국은 터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상처를 주고 나면 ‘내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라며 스스로를 탓하고 찌르고… 그런 여러 일들을 겪어오다 보니 제게는 사람의 말이 가장 무서운 가시 같아요.
-다른 인터뷰에서 위 장면을 다양한 글씨체로 작업하신 이유가 ‘사람들이 하는 말이 표면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지도록 각기 다른 필체로 과하지 않게 표현했다’고 답하셨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필체가 무엇이든 이 말들 하나하나가 다 나쁜 의미로 다가왔어요. 왜 그런걸까요?
작업할 땐 예쁘장한 손글씨나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폰트로 그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말이 주는 의미에 관해 생각한 경험치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폭력성에 예민하게 평소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아주 폭력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반면 아예 무감각하게 이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에게 누군가 ‘너는 왜 그렇게 폭력적인 게 많고 사소한 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냐'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확실히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인 것 같아요.
한 가지 힌트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다음 장면이에요. 각기 다른 필체였던 말들이 다음 장에서는 한층 더 날카로워지고 모두 같은 필체로 가시의 형태로 모아져 소녀의 가슴을 찌르고 있거든요. 이렇게 변화하는 레이아웃에 집중해서 보시면 제가 표현하려고 했던 의도를 더 쉽게 파악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가시>는 작가님의 전작 <미미와 나>에 이어 두 번째 동판화 그림책인데요, 작가님이 가진 주제와 동판화라는 작업방식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동판화는 저에게 익숙한 작업방식이에요. 특별히 이 이야기라서 동판화로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동판화가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어요.
구리 동판은 겉보기와 달리 굉장히 예민한 소재예요. 광택도 있고 금속이라 단단해 보이는데, 아주 얇은 바늘로 쓱 긋기만 해도 그대로 스크래치가 나요. 꼭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마음처럼. 그런데 버니셔라는 도구가 있거든요. 이 도구로 조심스럽게 잘 문지르면, 스크래치가 무뎌져요. 깊게 파인 부분은 밀어서 흔적을 최대한 지울 수도 있는 거죠. 상처도 잘 나지만, 잘 아물기도 하는 사람의 마음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상처가 나고 그러다 아물기도 하고, 그 모든 과정이 담겨 어떤 변형된 형태가 된 동판이 어떤 그림을 만들어내는 거네요.
동판 입장에서 보면 그림을 그리는 작업자는 자기 몸에 끊임없이 상처를 내는 사람일 거예요. 그런데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내는 과정에 의미가 있겠죠. 마음이 고통스럽고 그런데 어떤 부분은 잘 해결이 되기도 하고. 그 모든 과정을 지나오면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는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되는 거예요.
-가시가 상처가 되는 말이라면, 소녀가 가지고 있는 꽃은 무엇인가요?
꽃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내 안의 가치, 나의 신념, 타인의 말 때문에 휘둘리지 않고 지켜내고 싶은 어떤 것. 이 꽃의 실체가 분명하면 타인이 어떤 말을 하든 “너는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은 소중하다.”라고 편안하고 당당한 태도로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마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꽃을 그렸어요.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자기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면, 꽃의 실체가 더 분명해질 수도 있어요.
-첫 번째 그림책 <미미와 나>도 동판화 작업이었는데요, <가시>에서 기법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미미와 나>에서는 주로 판을 바늘로 긁어서 표현하는 방식의 에칭을 사용했다면, 이번에 <가시>에서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한 부분들이 있어요. 이 장면에는 물처럼 흘러내리는 텍스쳐가 필요해서 리프트그라운드 기법을 사용했어요. 불규칙한 패턴을 만들면서 더 깊이 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게 되었죠. 이 장면도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한 번 판화를 찍고 좌측 아래로 판을 옮겨서 한 번 더 찍어 작업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디지털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지만, 원화 작업 과정에서는 최대한 제 손으로 다 해내고 싶어서 원화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과 공감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 혹은 비슷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상처 입고 쓰러진 사람의 마음과 상황을 더 잘 공감할 수 있어요. 그 공감은 쓰러진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죠.
-그림책에서 소년과 소녀의 관계이군요.
네, 그림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신의 가시덤불에 갇힌 소녀에게 다가가는 소년 등에 가시가 있어요. 소년도 소녀가 겪은 과정을 이미 다 지나왔다는 걸 알 수 있죠. 소년은 소녀와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소녀를 공감할 수 있었고,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삶의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봤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모두 공감 능력이 탁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렇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의 감정, 타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느냐인 것 같아요.
-처음엔 소녀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중간에 화자가 바뀌는데, 특별히 구분해서 표현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소녀의 목소리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기획했었어요. 그런데 소년이 등장하는 부분은 소녀를 구해주는 중요한 장면이라, 이 부분부터는 소년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흘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반엔 그림책에 들어가는 글밥이 많았다가, 아주 적었다가 갈피를 못 잡을 때도 있었는데 여러 버전으로 쓰고 피드백을 받으며 조합하듯 작업했고 지금의 결과로 나오게 되었어요. 화자가 바뀌니까 레이아웃이나 폰트를 바꾸는 등 표시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의견도 나왔었는데,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공감을 잘하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감정만 맞다 얘기하지 않고 네 감정도 맞다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게 필요해요.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저는 타인에게 그런 얘길 많이 못 들어봐서 마음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 감정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수용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도 필요해요. "넌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단순한 말이 주는 힘이 굉장히 크거든요.
KEYWORD 3. 회복 탄력성
-소녀가 가시덤불에서 나오고, 소년과 함께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좀 아득하게 느껴졌어요. 가시가 없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의 풍경. 결국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는 걸 피할 수 없고, 안고 살아가야 하는구나, 이렇게 느껴져서요.
삶에 시련은 없을 수가 없잖아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서로가 다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상처받지 않으려고 버티는 마음이면 더 힘들 거예요.
그러나 절망 속에만 빠져있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소녀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왔듯, 어떻게든 나와야 하죠. 중요한 건 회복이에요. 마음을 회복하려면 무조건 상처를 안 받아야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상처받아도 해결하고 살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저 ‘사람은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가짐을 넓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처가 외부로부터 왔잖아요. 근데 빛도 외부로부터 옵니다.
소녀는 이미 꽃을 가지고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그 꽃이 있음을 알려주는 건 외부의 빛이죠.
-결국 상처의 치유는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은유일까요?
고립되어 있던 소녀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빛이 있는 외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텐데, 의식적으로 그 욕구를 누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체념하고 고독을 선택했을 수도 있어요. 저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가시>에서 소녀가 고립된 모습이 저의 예전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었어요. 예전에는 “혼자 다 할 수 있어!” 이런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내가 가진 문제들을 혼자서도 해결해보려고도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심리학 관련 책을 읽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상담소를 찾아가는 등 어떤 형태로든 타인의 도움으로 나아질 수 있었어요. 나와 타인, 둘의 노력이 같이 더해져야 해요. 중요한 건 상처의 회복, 해결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작가님의 결핍된 부분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알게 되신 거군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감옥 같은 것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이 외로웠어요. 이제는 내 안에 갇히지 않고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두고 싶어요. 영영 연결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죠. 그러나 그 부분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쪽으로라도, 어떻게 해서든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내가 연결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친구들에게 속 얘기도 하고, 그런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며 살아가고 싶어요.
-작가님 설명을 들으니까 이제 이 마지막 장면이 힘들게만은 다가오지 않네요.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가시 천지인데.
그런가요. 아마도 세상이 가시 천지라서 그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꽃들이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최고의 한 장면을 꼽는다면? 그 이유는?
깜깜한 가시덤불 속에 있던 소녀가 자신의 꽃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꼽고싶어요. 절망 속에서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서 꽃을 발견함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어 마침내 가시나무 숲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림책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던 그림이 가시가 몸을 뚫는 이미지였어요. 그림을 그릴 당시 뭔지 모를 우울하고 힘든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었어요. 시간이 흘러 그 이미지를 살려 그림책 작업을 하며, 가시처럼 나를 몹시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그 결과 사람들에게 듣고 상처받았던 말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말들을 가시로 표현하여 작업하게 되었어요.
-이 그림책을 만들며 특별히 신경 쓴 점은?
기법적인 면에서는 모노 프린트를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점이고, 그림책 디자인적 측면에서는 표지에 가시 그래픽을 형압으로 작업해 넣었어요. 이야기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이야기의 전반부를 소녀의 시점에서, 후반부를 소년의 시점에서 진행되도록 기획한 점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 작품을 꼭 보았으면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영향력에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와 비슷한 독자들이요. 그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보내고 싶어요.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타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당당히 살아가길 바라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핵심적인 주제는 주로 제 안에서 찾아내려고 해요. 장면의 연출을 위해서는 다른 작가의 그림이나 글을 보기도 하고 자연이나 도시의 여러 풍경 속에서 얻기도 해요.
-작업을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본격적인 작업 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연습장에 펜으로 여러 형태의 직선이나 곡선들을 그으며 손을 풀어줘요. 그래야 펜을 잡는 힘과 손목의 움직임이 유연해져서 스케치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더라고요. 그리고 집중력, 힘이 많이 필요한 판화 작업은 주로 낮에 하고 스케치나 아이디어 구상은 아침이나 밤에 하는 편이에요.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은 작업을 통해 저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에요. 모든 작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주인공이 되는 작업을 할 때 자신을 점점 더 알아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나쁜 점은 좋아서 하는 작업이지만 집중하다 보면 신체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는 점이에요. 운동을 꾸준히 하며 작업해야 하는데 작업과 운동 둘 다 잘 해내는 것이 참 어렵네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최근 몇 년간은 제 내면 상태가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해서 그것들이 그대로 강하고 뾰족하게 표출되는 작업들을 해왔어요. 이제는 조금씩 둥글어지고 있는 마음과 잘 어울리는 재료와 방식을 찾아 새로운 형태의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어떤 형태이건 앞으로도 그때그때의 제 내면을 잘 살피면서 제 마음을 닮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주세요.
죽음을 주제로 만든 볼프 에를브루흐의 ‘내가 함께 있을게’라는 그림책을 좋아해요. 어두운 분위기 대신 너무 무겁지 않은 따뜻하고 여운이 남는 글과 단순하면서도 포근한 그림체의 조화가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림책이에요. 아직 못 보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작가님의 다음 그림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당장 예정된 건 어떤 동화에 들어가는 삽화 작업이에요. 글 작가님은 따로 있고요. 이후의 제 그림책 작업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추상적인 사람의 감정, 사람 사이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기가 아주 어렵긴 한데, 제가 관심이 많은 영역이다 보니 또 그런 내용의 그림책을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지금까지 제가 만든 그림책 두 권이 모두 제 상황이 많이 투영된 캐릭터와 이야기였어요. 그런 점에서 제게 그림책은 그림일기 같아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눠보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은 긴 그림일기요. 그래서 어딘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