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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의여행 Nov 12. 2023

당근을 먹고 자라난 아이1

영어선생님이 되기 이전

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당근때문이다.

선생님의 한 마디는 마음 속 구름을 만들어주었다.

선생님이 좋았던 걸까 칭찬이 좋았던 걸까. 암튼 처음부터 영어가 좋은 건 아니였다.


일곱 살. 태어나서 보고 들은 것 중에 가장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중에 하나가 영어였다. 엄마는 Hello English 라는 비디오테이프를 자주 보여주었다. Hello~ Hello~ 하며 음악과 함께 미국 아이들이 나오는 영상이었다. 어린 나는 영문도 모르고 같은 영상 시리즈를 여러번 반복해서 보았다. 엄마는 내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랬던 거 같다. 내가 다른 언어를 통해, 엄마와는 다른 넓은 세상을 겪길 바란 마음같았다. 극성인 엄마 덕에 유초등시기부터 영어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과 다르게, 원어민 선생님을 처음 본 나는 워낙 쑥스러움을 탔고 입을 꾹 다물었다. 숱하게 본 영어 비디오의 hello도 내뱉기가 힘들었다. 일단 수업 공간에 들어서면 낯선 분위기에 낯설게 생긴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앉으라니까 자리에 앉긴 앉는다. 나를 자꾸 이상한 영어이름으로 부르는데 내 이름이 Liz였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도 안 했다. 거긴 오래 다니지 못했다.




영어를 한번에 롤러코스터처럼 배우면 좋겠지만 배움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당연하게도 시간이 걸린다. 파닉스 음가를 더듬더듬 배워갈 때. 엄마는 내게 좀처럼 칭찬을 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더 많이 더 빨리 잘하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입은 분명 ‘천천히 해봐’ 라고 말하지만 불같이 타들어가는 공기가 더 와 닿는다. 나는 매번 쪼그라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긴 파마머리의 선생님이셨는데 해외에 살다오신 40대 초반 여자선생님이셨다.

꼬꼬마 시절 나는 영어 뿐만 아니라 쑥스러움이 많아서 “네!”라고 대답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는 것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 밖으로 무언가를 내뱉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 내게 영어선생님은 항상 이야기보따리를 가지고 오셔서 먼저 다가와 주셨다.

이 선생님은 나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능력이 있었다. 어떤 날은 책을 펴기도 싫고 책에 있는 글자가 보이지도 않아서 몸을 베베 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무라지 않고 보채지 않으며 재미있는 게임으로 나를 달래주고 기다려 주셨다. 선생님이랑은 놀이를 하며, 수업을 했다. 커다란 카세트 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힐때면, 나는 조금씩 목소리를 내 볼 수 있었다.


DDD Dive?


문장 속에 있는 단어는 아리송하게 느껴져서 잠시 멈칫하게 된다. 혹시나 이상하게 읽을까 벌써부터 창피하다. ‘또 까먹었다고 혼나면 어떡하지?’‘앗 이번엔 잘 읽고 싶은데..’ 하는 마음에 수업 때 긴장을 참 많이 했었다. 분명히 배웠던 거 같은데 벌써 까먹고 생각이 안 난다. 장모음이고 단모음이고 하나도 모르겠다. 모기 같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단어를 읽는다. 그러면 선생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나와 함께 읽어주었다. 잔뜩 긴장하고 쫄아있는 있는 마음에 선생님의 말은 햇살같았다. ”괜찮아~ 잘 하고 있어~“ 라고 눈으로, 느낌으로 말한다.


선생님의 칭찬은 내게만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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