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어머님! 우리 ㅇㅇ이는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 읽는지 모르겠어요~
목소리도 꾀꼬리같아요 오홍홍 여덟살 같지 않게 영어발음이 아주 굴러간다니까요”
가끔씩 엄마가 선생님을 뵙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내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할 때, 안 듣는 척 하지만 사실 귀가 자연스럽게 거기로 향해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어떤 뉘앙스인지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나에게도 느껴진다. 나는 혼자 방에 들어와 책상 위에 펼쳐져있는 책을 기웃거린다. 아까 천천히 읽었던 문장들을 다시 중얼중얼거린다. “One bright evening as the sun was..” 혼자서 읽으니 왠지 더 술술술 읽히는 듯 하다.
엄마는 귀가 얇다. 선생님의 칭찬이 쏟아지면 엄마의 입꼬리가 같이 올라간다. 선생님의 말씀은 어찌보면 주관적인 기준인데 그 한 마디를 철썩같이 믿는다. 선생님이 가신 뒤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고 마음이 둥실둥실 떠있는 모습이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은 구름 위에 있는 듯 했다. 칭찬은 엄마를 그리고 나를 춤추게 했다. 수업을 할 때마다 내 자신감도 점점 늘어났다. 보이지 않는 칭찬스티커판에 ‘참 잘했어요’ 스티커가 100개도 넘게 붙어있는 거 같았다. 집에 내가 끝낸 영어 교재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만큼 성취감이 생기고 자신감도 늘었다.
Excellent! “나 영어 아주 아주 잘 해!”
영어를 입 밖으로 내는 것도 힘들어 했었는데 소리 내어 읽는 게 나도 모르게 재밌어졌다. 학교 가는 길에 보이는 간판에 혹여나 영어가 적혀있으면 소리 내어 읽는다. 페리카나 CHICKEN, CHOICE 라는 옷가게, LOGOS 서점, 그리고 집 앞에 YOUNG ART. . 보이는 모든 영어는 죄다 소리 내어 읽었다. 깨 소금같은 내 목소리가 어느새 굵고 또렷한 히말라야솔트가 되었다.
“조이는 영어를 잘 읽는 다 ~”
선생님의 끈질긴 칭찬라이팅은 어느새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 앞에서도 작아지지 않고 큰 소리로 영어를 읽었다. 그러면 엄마는 내게 빠짐없이 칭찬한다. 나는 학교에서 영어노래 발표하기, 영어 말하기 대회가 있으면 참여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말 그대로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고학년이 되며 자연스레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나를 너무 예뻐하셨다. 그 애정이 담긴 느낌, 확신에 찬 목소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지도 모른다.
‘영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을 때,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는 꽤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좀처럼 열리지 않았던 내 입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커다란 빙산 같았던 내 두려움을 녹인 건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느껴졌던 따스함이었다.
햇님과 바람이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영어선생님은 내게 햇님 같은 사람이었다. 강한 바람이 결국 옷을 더 여미게 만든다는 걸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칭찬은 어린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아낌없는 칭찬세례는 결국 내 마음에 당근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선생님은 내가 두려움이 많은 아이라는 걸 알고 계셨을 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에게 바람처럼 “더 잘 해야지! 얼른 더 해봐!” 라고 재촉한다면 그 아이는 마음의 문을 더 꽁꽁 닫아버릴테니.
선생님으로 10년째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 특히 6~12세 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가장 많이 만난다. 유독 예민함을 가진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이 친구들이 가진 두려움이 바로 느껴진다. 책을 펴기만 하면 쉬가 마려워서 화장실에 가는 아이, 힘겨워서 눈물을 흘리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눈물을 닦고 예쁘게 앉아있으려는 아이, 영어가 재미없어서 장난감 이야기를 한 보따리 늘어놓는 아이, 영어 안하고싶어요~ 라고 애교섞인 표정을 짓는 아이. 정도의 차이겠지만 모두가 어느정도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긴장해서 마음이 얼어있다면 영어가 아닌 그 어떤 걸 가르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일단 배우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는 ‘재미있게 만드는 것’. 영어를, 영어 선생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너무너무 재밌고 또 하고싶은 마음이 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처음 몇 달은 교재를 쓰지 않는다. 같이 그림그리기를 하기도 하고 신문을 잘라서 진 만들기를 하기도 하고 보드게임을 주로 한다. 우리는 놀면서 ‘영어’라는 뭔지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없애버린다. 아이의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고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것. 햇님의 따스함을, 당근을 가진 선생님이 그 누구의 마음도 열 수 있다. 어릴 적 선생님이 주신 당근을 먹고 자란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당근을 무제한으로 퍼주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