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방식은 선택적이다
세상살이는 모두 선택적이다. 어떤 환경을 선택할 것인가.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나를 보호하기로선택할 수 있고 가능성이 없는 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예민함은 20대 내내 길을 어렵게 만들었다. ‘회사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었고 그걸 받아들이기 까지도 걸렸다. 팀이 되어 소속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은 마음은 나를 다시 취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번의 회사생활과 퇴사 과정을 겪으며 점점 더 분명해졌다. 평생 나의 컴플렉스라고 느꼈던 예민함은 나의 강점으로 변하고 있다. 건드리기만 해도 따가운 나의 약점이지만 어쩌면 나는 이런 예민한 감각을 활용해서 지금의 ‘내 일’을 만들어간다. 내가 가치있다 느끼는 일을 만들기까지, 일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환경을 만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삶이다. 내가 봐도 남이봐도 내 삶은 참 고되다. 요즘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인게 괜찮아졌다. 오히려 좋다.
모두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장생활, 직작인의 출근시간과 시스템은 당연해보일지 몰라도 사실 엄청난 장점이 있다. 고용안정성을 위한 4대보험, 퇴직금, 실업급여가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업무시간 내에 식사, 휴식시간이 보장된다. 아플땐 휴가와 병가를 쓸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이고 사회의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몇 번의 경험 끝에 사회시스템의 보호 아래에서 일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매년 나는 그 선택을 유지하기로 다시 선택한다. 직장생활이 아닌 직업인이 되기로, 프리워커가 되기로. 정해진 업무공간, 업무범위와 직급 안에 나를 욱여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나라는 사람을 대변해주진 못한다. 그래서 나만의 업무범위를 만들고 나를 지켜줄 바운더리를 만든다. 어떻게 내 시간을 쓸 것인가. 1년이라는 시간을 써서 내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얼만큼일까. 회사에서 정해준 일을 하고 딱 그만큼만 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최고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게 무엇인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한다.
회사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내 휴식시간도, 휴가 병가, 고용안정성 모두 보호받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지킬 안전한 보호장치와 시스템을 만들기까지 굴곡진 시간을 겪어야만 했다.
동시에 회사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시간과 내 휴식시간, 내가 삶을 누리는 시간을 자체적으로 만든다. 물론 번아웃되고 무기력해지고 겨울을 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내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쓸 지 스스로 선택한다. 직장인처럼 일주일에 주 5일 하루 8시간을 근무하진 않는다. 나는 보통 월-목 하루 4시-9시 5시간을 근무한다. 이 외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는 내 선택이다. 일이 될수도 휴식이 될수도 있다. 반 강제적으로 일으로 채워넣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만은 않다. 매년 느끼지만 선택권이 있다는 건 굉장한 특권이다.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은 시간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배우는 데에’ 가장 크게 쓰고 싶다. 일을 통한 배움, 삶에서의 배움, 사람을 통한 배움, 가르치면서 얻는 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