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전에는 언제나 감당 못할 두려움이 따라온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해본 사람만이 안다. 20년 전, 나의 첫 경험도 그렇다.
중국 시골 읍내에 있는이곳 태극권 경기장은 전국 각지에서 원정 온 선수들과 관중들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태극권 발원지인 진가구는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하는 시골 깡촌이지만 태극권을 사랑하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때로는 세계 곳곳에서도 찾는 태극권 성지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경기는 품세와 겨루기로 나뉘어 관중들에게 더욱 다이내믹한 관람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선수는 물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30대 중반 나이에 10대 아이들과 같이 뒹구는 것도 나 혼자다. 이곳에선 20대 중반에 대부분 은퇴해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런 시골 깡촌에도 한류의 인기는 대단했다. 나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키 크고 잘생긴 미남미녀가 한국인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에 쨉을 날리긴 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주목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이곳 관중들이 나를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직경 6미터에 높이 1미터, 울타리 없이 사방이 트인 원형 경기장에서 두 명의 10대 선수들이 날랜 동작으로 충돌하고 있다.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면 점수가 올라간다. 넘어뜨리면 3점, 밀어내면 1점을 얻는다. 10점 차가 나면 TKO승이 된다. 유도와도 비슷하고 씨름과도 비슷한 태극권의 겨루기 종목인 '추수'라는 경기다. 저 경기가 끝나면 내 차례다. 나의 첫 데뷔 무대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몇 박자 씩 건너뛰고 있었다. 온몸의 피는 비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근육은 경기장 내의 열기와 함께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난생처음 느끼는 긴장이었다. 터질 듯 요동치는 심장은 온몸을 빙하 속으로 밀어 넣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경기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나를 주목하는 사람들만 없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의 긴장을 의식했는지 코치는 건너편 상대를 가리키며 “저 녀석 형편없어, 힘도 없고 배운 지도 얼마 안 돼.”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 말에 약간 긴장이 풀렸는지 경기장 분위기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준비하고 있는 상대를 슬쩍 바라보았다. 20대 초반에 아직 소년의 티가 남아 있는 앳된 청년이었다. 키는 나보다 훨씬 컸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에 붙다 만 팔뚝 근육은 전혀 힘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누구나 처 맞기 전까지는 대단한 계획이 있는 것처럼 힘이라면 자신 있었던 나는 그의 황새같이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보며 근자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앞선 경기가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이름이 호명되고 경기장에 올라선 나는 심사위원들과 심판, 관중들에게 차례로 포권*을 쥐어 보이며 짐짓 당당한 체 행동했다. 심판의 구령과 함께 나와 상대방은 두 팔을 교차한 채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여전히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작과 동시에 나는 상대의 허리와 옆구리를 어슷당겨 넘어뜨리려고 빠르게 상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순간 나의 몸이 살짝 뜨는가 싶더니 이내 경기장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잔뜩 긴장한 탓에 온몸은 힘이 들어가 뻣뻣해졌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잠깐 뜸을 들인 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상대를 마주 보았다. 여전히 앳된 모습에 진지한 표정을 한 그는 진심으로 경기를 즐기는 듯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나의 대단한 계획은 바닥에 고꾸라지거나 경기장 밖으로 밀려나 하찮게 나동그라졌다. 그렇게 몇 번을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힘없이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 심사위원장이 휘슬을 불었다. 이미 나는 10점 넘게 잃어버린 것이다. 전반을 반도 넘기지 못하고 TKO패를 당했다.
허무했다. 체격은 작지만 친구들이 짱돌에 비유할 만큼 나는 단단한 근육과 무쇠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팔 힘은 자랑할 만큼 좋았고 허리 힘은 유도 선수와 레슬링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솜털도 다 벗지 못하고 근육도 제대로 붙지 않은 아이에게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경기의 시작과 끝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몇 분의 시간이 마치 꿈을 꾼 듯 몽롱했다. 체중을 맞추느라 한 달 만에 12Kg을 감량하고 매일 10km 넘는 조깅과 5~6시간 강도 높은 훈련으로 시합 준비를 한 것을 생각하니 설움이 왈칵 쏟아졌다. 아침 공복에 구보할 때마다 지나가던 트럭에 받쳐 병원에 실려갔으면 하는 고통들, 400m 전력질주 후 1분 쉬고 다시 전력질주를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 혼자서 열 명을 상대하는 극한의 연습들이 모두 허망하게 다가왔다.
오기가 생겼다. 다음번엔 꼭 이기리라. 이길 때까지 하리라 다짐했다.
이 다짐이 1년만 배우고 떠나겠다는 나의 계획에 4년을 더하게 했다. 그때의 패배가 나를 태극권 폐인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경기를 치른 덕에 입상경력으로는 한국에서 두 번째라면 서운할 정도는 되었다. 더불어 겸손함도 가지게 되었다. 내 힘만 믿고 상대를 무시하는 오만함이 모든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을 뼈에 새겼다. 결과보다 준비 과정에서 더 많은 성장이 일어난다는 것도 알았다. 과정자체가 보상인 것이다.
경기를 할 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발전하고 있다. 비단 스포츠 경기뿐만이 아니라 각종 공모전과 학위 취득, 그리고 새로운 모든 것을 준비할 때 인내하고 도전하는, 그리고 겸손하는 삶의 기술들이 계단을 오르듯 점프한다. 큰 도전에는 언제나 감당 못할 두려움이 따라오지만 그 경험이 지나가면 엑스칼리버 하나씩 얻게 된다.
패했을 때가 더욱 값지다. 패한 후 되찾는 승리가 얼마나 멋진 경험인지 해본 사람만이 안다.
*포권 주먹과 손바닥을 맞대는 중국 쿵푸식 인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