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 공감, 그 사이 어딘가

Somewhere between Trauma and Empathy


눈물을 목뒤로 삼킨다.

얼어붙은 심장과 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피 한 방울 남지 않고 모든 것이 몸 안에서 빠져나간다.

시끄러운 폭력의 소리가 잦아들고 지친 소녀는 잠이 든다. 깨어나기가 두렵다.


잠에 들기 전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밤에 싸움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이다.

‘제발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러나 증폭된 불안감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나에게도 행복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소녀는 잘 웃는다.

두려움을 숨기는 거짓이다.

소녀는 활달하다.

현실을 부정하는 몸짓이다.

조금이나마 상황을 전환시키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이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과장과 간절함이다.



트라우마


과거 경험했던 위기, 공포와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다시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그날들의 기억과 감정은 시간이 흘러도 몸 안에 각인되어 또렷이 남아 있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머리를 흔들며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무뎌진 곳도 있지만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면 감정의 상처 역시 꾹꾹 저리며 아파 온다. 쇳덩이가 가슴속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듯하다.


친아빠가 아닌 사람을 아빠라 부르며 십 년 넘게 함께 살았다. 정확히 13살 때까지.

무조건적인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화물차 운전을 했던 그는 다섯 살, 어린 나를 데리고 지방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엄마와 셋이서 캠핑 여행을 가기도 했다.


동시에 존재하는 다른 기억은 물건을 부시고 엄마를 때리는 장면. 엄마의 머리를 가위로 자르기도 했고, 말 그대로 이단옆차기로 엄마를 때려 엄마의 갈비뼈가 금이 간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폭력의 순간에 함께 있었다.


어느 날 용돈을 담아두던 실비아 비타민 노란 상자에 꼬깃꼬깃 모아둔 삼천 원이 있었다. 엄마가 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기 위한 돈이었다. 아빠가 잠시 나간 틈을 타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할머니집으로 도망치듯 나갔다. 그날도 당연히 폭력이 오가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탄 택시는 빨간 신호 앞에 멈춰 섰다. 어느새 차를 타고 금방 따라온 그는 택시문을 열고 엄마를 내리게 했다. 엄마가 다시 실랑이를 하며 택시 안으로 타자 이번에는 나를 데려가 차에 태웠다. 엄마가 탄 택시는 떠나고 나 혼자 남겨졌다. 그는 나를 할머니댁 근처 어딘가에 내려두고는 알아서 길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아는 할머니댁의 골목을 얘기하며 아는지 물어봤지만 일곱 살 아이가 처음 보는 길을 찾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할머니 댁으로 날 내려주었는지 아닌지.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울고 있는 여자아이의 이미지만 남아있다. 그 길은 일 년 후 전학을 간 내가 매일 다니는 길이 되었다. 결혼 후 신랑과 같이 걷기도 했다. 신랑에게 그때의 상황은 말하지 않았지만.


이십 년이 훌쩍 지났다. 글로 써 내려가며 그때의 나를 안아줄 용기를 내어본다. 뱀의 공포를 뱀을 만지며 극복하듯 나의 공포를 끄집어내어 소리 내고 기록해 봄으로써 더 이상 공포가 아닐 수 있기를 바라본다.



공감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

인간의 신체는 5년마다 리셋되지만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여전히 현재의 나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이십 년의 숫자가 무색할 만큼 눈을 감으면 부지불식 간에 그때, 그곳으로 소환된다. 그리고 불현듯 스쳐오는 그때의 기억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고 가슴속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이불속 저 아래에 꽁꽁 숨겨두고 싶은 기억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과거는 여전히 그곳, 그 자리에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 무뎌진 곳도 있지만 여전히 상처의 자리는 꾹꾹 아파온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어렸던 소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은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었다.


공부를 곧잘 했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았다. 학교는 노력을 한다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집으로부터 도피하여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교사를 만나 본은 드물었다. 그래서 내가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처럼 집이 상처인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들이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기에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학교가 치유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이것만큼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교사가 되었다.


그때, 그 소녀가 겪은 상황과 감정은 비슷한 누군가를 공감하고 안아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이불속에 꽁꽁 숨겨 절대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과 경험이 공감의 매개체가 되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없을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이 삶을 그만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집은 따뜻한 울타리가 아니라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아이의 몸과 마음을 찌르고 있지는 않을까? 쉽지 않지만 그들의 표정과 말투에서 말로는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를 읽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