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식이장애를 겪고 있는걸까?
무엇이든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는다. 배가 고픈 것도, 그 음식이 정말 먹고 싶은 이유도 아니다. 단지 ‘먹어야 할 것 같은’ 욕구 때문이다. 십 년 정도 되었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 것이. 뉴스에 나오는 사례처럼 음식을 아예 거부한다거나 뼈만 앙상하게 남을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스물세 살 때쯤이었나. 양이 제법 많았던 케이크를 혼자 다 먹은 적이 있다. 높은 칼로리의 음식을 먹었다는 죄책감은 아니었던 것 같고 단순히 느끼함에 소화가 되지 않아 먹은 것을 그대로 게워내었다. 그날 이후, 아이스크림, 빵, 피자 등 지방이나 당이 많이 음식들을 먹으면 은연중에 ‘토하면 돼’라고 생각하며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지만 ‘살찌는 스트레스’와 ‘안 좋은 식습관’을 저울질하다 후자를 선택하곤 했다. 물론 이성적 판단이 아닌 순간의 판단이었고 토하고 나서는 늘 후회가 밀려왔다.
‘거식증’은 비교적 현대적 질병으로(로마시대에도 토하면서까지 많이 먹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대다수가 10대에서 20대 사이의 여성들이 경험하며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나라들에서 발생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음식’이 충분해야 그것도 먹고 토할 수 있으니깐 아이러니하다. 음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함을 알고 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건강을 잃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결을 하곤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는 약간 마른 편이었다. 1년간 다니던 태권도를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팔이 부러지며 그만두게 되었고 4학년때부터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했다.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었다.'
어리다보니 미디어로부터 강요되는 '여성의 미'에 대한 강박이 없고 살찜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는 않았다. 몸매를 드러내는 옷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몸에 붙는 옷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뚱뚱한정도는 아니고, 통통한 정도?
고1때 7시 이후로 저녁을 안먹던 몇 달 살이 조금 빠졌고, 고3때는 '공부하니깐'의 핑계를 도피처삼아 엄마가 사다주는 과자를 별 생각없이 먹었다. 고3 여름방학 때 불필요한 5kg를 찐 후, 스무살이 되던 겨울, 줄넘기와 걷기로 8킬로 정도를 뺐다.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하나하나 칼로리를 계산했다. 먹고 싶어도 칼로리가 높으면 먹지 않았다. 그랬던 시기와 맞물러 시작된 사치스러운 질병. 한 달에 한번, 심할 때는 일주일에 세네 번을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고,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다.
당연히 건강에 좋지 않다. 위산이 넘어와 성대를 건드려 목소리는 둔탁하게 변해갔고 가끔씩 심장이 두근거림도 느꼈다. 특히 2년 정도는 외식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늘 적게 먹으려고 했기에 약속으로 외식을 하게 되면 평소보다 두 세배로 먹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절제와 토할 때까지 먹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고구마와 선식이 주식이었고 그 외의 음식은 먹으면 바로 살이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음식은 나의 절제력을 시험하는 공포였다.
2019년 여름, 남자 친구와 2주간 ‘조지아’ 여행을 했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많이 먹고 조용히 화장실로 사라져 먹은 것들을 게워내길 반복했다. 그해 여름, 특히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도 평소보다 빠진 상태였기에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강박과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동시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여행 막바지쯤, “자기, 목소리가 허스키해진 것 같은데.”라는 남자 친구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나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때서야 선명해졌다.
당시, 우울증 약을 함께 복용하고 있었다. 식이장애 때문은 아니었다. 먹고, 토한다는 사실도 의사샘한테 뒤늦게 얘기를 했으니깐. 어쨌든, 복용하고 있던 우울증 약도 식이장애에는 그리 효과가 없었는데 남자친구의 이 말 한마디에 신기하게도 한동안 거식증 증상이 희미해졌다. 어쩌면 스스로 알고 있음보다 타인의,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듣는 말이 더욱 현실성 있게 다가왔기 때문일까?
이 감정적 소용돌이와 욕구의 근원은 어디였을까? 불안과 스트레스를 음식을 통해 해결하려는 습관과 ‘마른 몸’이 미의 기준이 된 사회적 요구의 시너지일까? 정확한 원인은 나도 알수가 없지만 두 가지 모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확실치 않은 '왜'를 찾기 보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떻게'를 강구하는 쪽으로 시간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 필요하다.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심리상담을 받으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 덕에 다양한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 더 이상 선식과 고구마가 아닌 다양한 음식들을 (토하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완치의 단계는 아니다.(진단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스트레스를 받은 날, 혹은 나도 모르는 이유로(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했지만) 많이 먹고 토하기도 한다.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욕구가 올라온다.
그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기 위해 지금처럼 글로 쓰고 문제를 인식하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괜찮아, 조금 살이 쪄도’라는 말을 하고 ‘살을 빼는 목적이 아닌’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운동을 한다. 10년 뒤에도 건강할 수 있도록. 지금은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으니깐.
이렇게 다시 나의 대한 믿음의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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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후 1년 뒤 다시 읽게 되었다.(2023.7.25) 지금도 식이장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인간이 트라우마로부터 달아날 수 없듯이 어쩌면 평생 가져가야 할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좋아졌다. 성대가 망가지는 것보다 다이어트를 하는 게 더 나으니깐. 그리고 '식사 종료'의 나의 방식이 있다. 매실차를 마시는 것. 어릴 때부터 위가 좋지 않아 엄마가 매실원액을 만들어주곤 했다. 이전에는 간헐적으로 마셨다면 1년정도는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마시고 있다. 소화의 목적과 동시에 '식사 종료'를 스스로 인식하기 위해서. 당시 남자친구(현 신랑)의 한마디 말처럼, 매일의 저녁식사가 끝났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혹시 나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작은 알림을 주는 방식을 시도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