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해 말하러 왔다가 삶의 자세를 배웠다.
4.30일 서촌그책방에서 이루어진
<슬픔의방문>을 쓰신 장일호 시사인기자 작가님과의 '저자와의 만남'의 기록을 이제야 다시 들여다 보고 정리한다.
직접 만난 작가님은 글을 잘 쓰실 뿐 아니라 입담도 무척 좋으셨는데 무엇보다 작가님의 애티튜드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 책에 싸인을 해주시며 직접 가져오신 티백을 하나하나 붙여주시고, 토크 후 뒷풀이 중 먼저 나가니깐 손수 책방문까지 나오셔서 잘들어가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저자와의 만남'의 주인공이니, '대우'받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북토크 모임의 참석자들을 챙기는 ‘주인’의 애티튜드를 보여주셨다.
책에 대해 얘기하려 왔다가 삶의 자세를 배웠다. 존경스러운 분이었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2시간 넘게 질문과 답이 오갔는데, 그 중 3가지만 남겨보려 한다.
요즘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책은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이다. 누군가에게는 yes일수도 no일수도 있는 질문임을 안다. 책으로 위안을 얻고, 10대의 고통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받았던 나의 대답은 ‘yes’이지만, 다른 사람, 책을 내면에 켜켜이 쌓아올린 사람들, 의 생각도 듣고 싶었다.
Q. 책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한국 사회가 되게 평균이나 평범에 대한 압력이 되게 높은 사회이기 때문에 나의 ‘이상함, 나의 어떤 비정상성, 그러니까 정상성에 대한 어떤 허구라고 해야 할까요. 정상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바람 희망 이런 것들이 되게 큰 사회죠. 그래서 이 정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당연히 크죠. 이 압력이 굉장히 크니까 내 안에 갖고 있는 이상함이나 이런 것들을 꺼내서 이야기하거나 솔직하게 뭔가 드러내거나 하는 것들에 대해서 되게 두려운 사회라고 저는 생각해요. 책 속에서는 되게 자유롭더라고요. 책을 열면 미친 사람도 많고 아픈 사람도 많고 진짜 되게 이상한 사람 진짜 많은 거예요. 그게 저한테 엄청난 위로가 돼줬던 것 같아요.
책을 열었을 때 그래서 그리고 지금 생각하기에 되게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초등학교 때 봤는데 아무도 저를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근데 도서관 사선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칭찬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제가 책을 읽으러 갔다기보다 도서 기록 카드를 다 채워서 일호 또 왔어 라고 이렇게 칭찬해 주는 사서 선생님을 보러 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내가 무슨 책을 읽었어요 라기보다도 책을 읽는 걸로 이렇게 칭찬을 받을 수 있구나 라는 게 되게 저한테는 좋았던 것 같거든요. 그게 저의 읽기 근육을 만들어줬던 것 같아요. 누군가 나를 그냥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사랑해 누군가 나를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칭찬해라고 하는 것들 그 사서 선생님 덕분에 그러니까 나를 칭찬하려고 보고 있는 그 눈빛 때문에 도서관에 갔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때 읽었던 책들이 뭐였는지 진짜 다 기억 안 나요. 근데 그 읽는 습관 책을 읽는 건 되게 사실은 이렇게 근육이 필요한 일이라서 재미없잖아요. 넷플릭스가 훨씬 재밌죠. 사실은 근데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거야 얼른 다 읽고 가서 칭찬받아야지 다음 책을 빌리면서 했던 점에서 저는 도서관이 저한테 되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고, 고비 고비마다 그렇게 읽었던 책들이 어떤 것들이 다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저를 살린 거죠. 예를 들면 이렇게 살아 라도 될까라는 질문이 들 때라는 것들이 어떤 답들이 저한테는 다 책에 있었던 것 같아요."
=> ‘정상성’의 압박이 심한 사회에서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다양함을 보여주는 공간이 책이었다는 말. 그리고 ‘독서기록카드’와 ‘칭찬’이 책을 읽게 만들었고, 고비마다 책이 나를 살렸다는 말. 내게 필요한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얼마전부터 6호시설에 있는 청소년들과 책을 함께 읽고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독서기록카드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아이디어도 덤으로 얻었다.
다른 분의 질문 : (정상성에 가까워져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었다.)
Q. 아픈 채로 다친 채로는 비정상적이라는 걸 내포하고 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저 같은 반응이 앞으로 같은 새로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좋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다친채로도 아픈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이랑 비슷한 꿈을 가지고는 있지만 제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그냥 더 마음을 향해 나아가고 싶고 더 정상에 가까워지고 싶고 좀 그 경향이 있어서 저는 뭔가 작가님이 이렇게 슬픔에 직면하고 아픔이나 슬픔 새로 살아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이 궁금했어요.
A. "네 일단 당연히 제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생각은 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말씀 듣다가 생각난 문장이 하나 있어서 좀 읽어드릴게요.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책인데요. '고통을 겪는다고 사람이 고귀해지지 않음을 안다. 고통은 사람을 파괴한다. 파괴나 자기혐오, 평생을 따라다니는 절망에 저항하려면, 우리는 경멸받는 습관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토록 부정적으로 치부되는 그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벗어던져야 한다.'
흠이 있어도 정상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정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거든요. 저는 정상이라고 하는 기준이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굉장히 다양한 정상성들을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답이라고 하는 정답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는 거죠. 내가 정답 내 정답은 내가 쓰는 거고 정상성이라고 하는 사회가 만들어 어떤 기준이라고 하는 것들을 하나 놓고 모두가 다 그곳을 향해서 가는 건 되게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말씀 듣다가 이 문장을 읽어드리고 싶었습니다."
=> 작가님은 책을 다 읽으면 좋은 문장들을 기록해 놓으신다고 했다. 하나의 질문을 듣고, 그에 맞는 책의 문장을 바로 읽어주시는 능력에 감탄했다. 첫번째 질문의 답변과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몇년 전 읽은 토트로즈의 <평균의 종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평균주의는 우리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다. ‘노르마 닮은꼴 찾기 대회가 그러했듯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학교와 직장생활과 삶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정의 편협한 기대치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되려고 기를 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사람들처럼 되되 더 뛰어나려고 기를 쓴다.”
Q. 작가님이 바라보는 ‘기자의 일이란’?
A. "기자 일을 잘하는 것은 우리가 슬퍼하자고 하는 것을 함께 슬퍼하도록 언론이 잘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슬퍼할 만한 일을 잘 슬퍼하도록 언론이 역할을 해야되고. 저는 사실 뉴스라는게 정보 전달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을 연결하게 할 것이냐의 문제 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동체라고 하는 것들을 어떻게 유지 연대하면서 연대하면서 나아갈 것이냐고 하는 데 있어서 끊임없이 질문과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매체이고, 그렇게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 이라고 생각하는데 잘하고 있느냐라고 한다면 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하려고 노력해요.”
더 많이 읽고, 더 기록해야겠다. 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삶의 모습으로 행동하고 실천해야겠다란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 시간이었다.
일주일 전의 일인데 여운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걸 보니, 한 사람이 주는 에너지의 파동이 굉장히 크구나. 싶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