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지방, 바스크의 중심도시인 빌바오는 단연코 내가 가장 살고 싶은 도시이다.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거리의 빌바오에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겐하임 미술관’이 대표적 랜드마크로 자리하고 있다. 한 때 철강 산업으로 경제 중심지였다가 철강 산업의 쇠퇴 이후 급격한 인구감소와 문 닫은 공장들, 오염된 항구로 지저분한 도시가 된 빌바오는 도시재생을 통해 쾌적하고 깨끗한 곳으로 변모하였고 이 미술관이 그 대표적 결과물이다. (실제 빌바오 거리를 돌아다니면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쾌적하고 아름다운 건물들로 채워진 거리, 그리고 일 년 내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 비를 머금은 빌바오는 맑고 묽은 유리창을 떠오르게 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내게 날씨까지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런 빌바오에 살기 위해 이틀에 한 번꼴로 남편에게 말한다.
“우리 언제가? 빨리 빌바오에 살고 싶어.”
물리적 거리로는 한국과 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빌바오가 완전한 타지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와 남편 모두에게 친한 바스크 친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로 만난 사이’이기는 하지만 바스크 특유의 끈끈한 공동체 문화의 영향인지 정서적 거리는 참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빌바오 거리의 칭찬으로 서두를 시작 했지만 사실 이 글은 ‘바스크 친구들’에 관한 내용이다. 나 스스로 바스크가 더 알고 싶었고 자신의 삶을 단단히 지켜나가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특별함이 있었다. 어떤 특별함인지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바스크 친구들과의 인연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교사인 나는 통역의 역할로 바스크에 위치한 몬드라곤 대학(Mondragon University)의 혁신적인 교육방법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이하 MTA)를 취재하러 상하이를 방문하게 되었다. 전문 통역가도 아닌 내가 가게 된 이유는 조금 복잡하지만 앞으로 서사에 꼭 필요하기에 잠깐 설명해보려 한다.
당시 학생중심수업(거꾸로교실)을 하는 공교육 교사들이 모여 있던 비영리 사단법인인 ‘미래교실네트워크’(이하 미크)의 멤버였던 나는 공교육에서 풀지 못하는 교육혁신을 위해 미크에서 대안학교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함께하여 그곳의 교사로 있었다. 미크의 사무총장은 <거꾸로교실의 마법>이라는 다큐를 제작했던 전(前) KBS PD였는데 그가 부산의 2013년 부산의 한 학교에서 실험했던 ‘거꾸로교실’이라는 새로운 교육방법의 효과가 굉장했기에 새로운 수업방법에 목말라있던 교사들 사이에 큰 열풍이 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반응으로 이러한 교사들이 함께하는 사단법인이 탄생했고 다큐를 만들었던 PD는 교육에 더 전념하고자 방송국을 그만두고 사무총장의 역할로 함께 했다. 그래도 PD의 본성이 남아있던 탓에 ‘혁신 대학교육’을 다루는 다큐를 제작하고 우리가 만들었던 대안학교에도 적용할 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내가 상하이로 날아가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MTA 설명을 조금 덧붙이려 한다.(설명에 설명이라 독자들에게 미안한 감이 들기 시작한다.) MTA는 앙트러프러너들의 국제 커뮤니티로 학사, 경영자 MBA, 팀코치 양성과정 등의 교육프로그램과 세계 곳곳에 앙트러프러너들의 활동 거점이라 할 수 있는 MTA 랩(lab)을 운영한다. 이곳의 학사과정은 LEINN(이하 레인)이라 하는데, 바스크에 있는 ‘몬드라곤 대학’의 경영학부에 속해 있고 교육방법은 기존 대학과 굉장히 다르다. 교수 대신 ‘팀코치’가 있고 강의로 경영을 배우는 대신 함께 입학한 친구들과 팀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수익을 내야 한다. 말 그대로 실전을 통해 배우는 ‘learning by doing’의 실사판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학습도 나름 탄탄하다. 책, 글쓰기, 대화 등이 학습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경험론에 기반한 교육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내재화하는 사유화 과정이 동반된다.
레인은 지역 기반(스페인, 멕시코, 한국) 과정과 인터내셔널(국제, 아트) 과정이 있고 인터내셔널은 6개월 혹은 1년마다 나라를 옮겨 다니며 학습하고 두 과정 모두 3년 차에는 한국을 기반으로 학습한다. 지금은 1년 차를 빌바오에서 시작하지만 2017년 당시는 상하이에서 1학년을 시작했고, 나는 그들의 초반 모습을 취재하러 간 것이다.
이곳의 팀코치들이 바로 나의 바스크 친구들이다.(이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지루한 정보들을 나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친구를 소개하려 한다. Jon abaitua(존 아바이뚜아). 상하이에서 만난 첫 번째 팀코치이다.
오전 7시, 타이후로 향하기 위해 상하이 어느 호텔 앞에서 존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머리가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고,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있는 유럽 남자가 로비에 서 있었다. 아이는 둘 쯤 있을 30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외모였다. “Oh you must be Jon” (존이군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10분 넘게 버스를 기다리며 MBTI ‘I’의 성향이 분명한 우리 둘은 겨우겨우 짤막히 대화를 이어갔다. 마침내 버스가 오고 둘 다 기쁘게 버스에 올라탔다.
존은 레인 1기 출신으로 같은 기수 친구들과 TZBZ라는 회사를 창업, MTA를 운영하고 있다. 레인에 입학하기 전까지 존은 마케팅을 전공해서 동네 어느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인을 경험하며 최근 한국에서도 중요 키워드로 떠오른 앙트러프러너가 되었다. 전 세계를 이리저리 누리다 2년 전에는 쉼이 필요하다며 안식년을 갖고 스마트폰 없는 삶을 살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꽤 진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아재개그를 좋아하고 본인 농담에 본인이 먼저 껄껄껄 웃어버리는 굉장히 순박한 시골청년의 모습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자신의 고향을 활성화시키는 프로젝트도 하고 있는 진심이 진하게 느껴지는 멋진 사람이다.
다음 편에서는 존에게 궁금한 질문들을 묻고 그의 답을 써보려 한다. 부디, 이 시리즈가 의미 있고 재미도 있길 바라며(과연?) 길었던 서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