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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Jan 29. 2023

서촌그책방

독서모임회원의 애정글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인연?

둘 다 믿지 않으니 우연이 빚어낸 적절한 마법쯤으로 해두자. 


 골목길을 좋아했던 당시 남자친구(다행히도 현 남편)는 서촌 데이트를 하던 그날도 “이쪽 길로 가보자”며 옆 길로 내손을 이끌었다. 골목길 탐방의 장점은 예상치 못한 멋진 풍경이나 상점들의 발견이다. 이날도 낯 선 골목길로 들어선 우리는 한옥 몇 채를 바라보며 걷다 ‘서촌그책방’이라고 쓰인 작은 나무 입간판을 발견했고 이윽고 작은 한옥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런 곳에 책방이 있다니!’ 

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책방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당시 나는 책방에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작가들의 책은 거의 읽어보지 않은 상태였다. 영어를 전공했고 교사가 된 이후에는 교육서적만 봤기에 때문에 한글작가의 책으로 채워진 책방의 책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책방이 느껴졌던 것 같다. 대형서점에도 분명히 존재할 책들이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는 그곳은 역설적이게도 취향의 폭을 한정 짓는다. 너무 많기에 익숙한 곳만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명한 취향의 서촌그책방 책들은 오히려 내가 읽는 책의 장르를 넓혀주었다.


“차 한 잔씩 줄까요?” 풀 향이 솔솔 나는 차를 건네주시며 책을 책방 사장님이 말했다.

“책방이 너무 예뻐요. 책표지에 적힌 글도 인상적이고요” 책방에 온 손님이면 누구나 할법한, 그러나 진심인 말을 건넸다. 

“책방에서는 독서모임도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번 진행하고 분명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대충 이런 뉘앙스의 독서모임 홍보(?)를 하셨던 것 같다. 당시 참여하고 있던 다른 독서모임도 끝나가고 있었고 남자친구도 곧 스페인으로 1년 간 출장을 떠날 참이라 적적한 마음을 새로운 곳에 기대 볼까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적절한 타이밍과 골목길의 우연으로 2018년 10월, 서촌그책방과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4년 넘게 함께 하고 있다.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기간 한 곳에서 독서모임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서촌그책방만의 매력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작가의 책과 소설책’이라는 교집합이 만나 내가 읽는 책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점. 

아무리 잘 번역된 책이라도 번역서 특유의 조금은 딱딱하고 문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어작가의 책에서는 무엇보다 한국어만의 고유한 말랑말랑하고 입에 착 감기는 매끄러운 문체와 아름다운 문장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책들 덕분에 인생책도 만났다. 목정원 작가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조금은 어렵지만 모두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의 대화하는 시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만의 시선과 느낌에만 한정되었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하나의 색으로만 보였던 책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처럼 다채롭게 바뀌는 순간이다. 


“아, 그런 의미일 수 있겠네요.”

“그 문장이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 알 것 같아요.”

“앗,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등의 대화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그 중심에는 20년 넘게 독서모임을 운영했던 하영남샘(사장님)의 노하우가 숨어 있다. 얘기를 거의 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연스레 발언권을 주거나 자칫 샛길로 흐르는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주고 사장님의 통찰력으로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독서모임 운영을 한 시간의 축적된 힘이 가져다주는 내공이다. 


 세 번째는 ‘만남’. 4년 정도 되다 보니 자주 만나게 되는 독서모임 회원들과는 죽마고우… 까지는 솔직히 아니지만 몇 달 만에 만나도 반갑고 애정이 간다. 책을 매개로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어떠한 이해관계도 얽혀있지 않다 보니 상대를 있는 그 자체로 보게 된다.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도의 차는 있겠지만 기꺼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또 하나의 만남은 ‘저자와의 만남’. 책방이 작아 정말 코앞에서 묻고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작가란 사람 자체도 궁금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이유로 이런 문장과 내용을 썼는지, 책에는 미처 쓰지 않은 이면의 에피소드들까지 듣다 보면 책과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책이 하나의 옷이라면 그 옷이 만들어진 계기와 과정, 그 과정에 관여된 사람들까지 알게 되는 것. 그러다 만나는 특별한 순간도 있다. 나의 인생 책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작가님이 바로 앞에서 기타를 치며 프랑스어로 노래한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뭉글뭉글 따뜻해진다. 


 몇 달 전 결혼을 하며 신랑과 데이트를 자주 했던 장소를 선택해 웨닝스냅을 찍었다. 책방에서 데이트는 딱 한 번이었지만 우리의 1순위는 서촌그책방. 둘 다 책을 좋아한다는 점과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내가 정말 재밌게 오고 가는 곳, 무엇보다 신랑이 스페인을 가면서 나를 맡긴 곳(?) 이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흔쾌히 사장님도 촬영을 환영해 주셔서 소중한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좋은 책을 함께 읽고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날카로우면서 열린 시각으로 토론을 이끄는 내공과 독서모임 회원들을 아끼는 책방 사장님의 마음. 두 요소의 적절한 마법이 나를 지금도 책방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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