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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Oct 24. 2021

태도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외부적 상황과 나의 행동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서로 겹치고 겹쳐져 특정의 결과를 만들어 낼 뿐이다. 나에게만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불운이나 행운이 존재할리 만무하며 행과 불이 50대 50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도 않을 것이다. 오늘의 불운이 내일의 행운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삶은 순간의 상황과 결과만으로 판단 지어질 수 없다.


어릴 적 (때로는 지금도)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경험을 겪어야 하는 거지?’라는 답 없는 물음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되뇌었던 적이 있다.


내 기억 속 친아빠를 만난 순간은 아홉 살, 딱 한번뿐이었다. 늦게 집에 오는 엄마를 대신해 이모집에서 지내곤 했는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다. 아빠라고 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었던 사람.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한참 떠들며 정문을 나서고 있을 때 그가 그곳에 서있었다. 순간 어쩔 줄 몰라 못 본 체 걸어가는 나의 곁으로 그가 미소를 띤 채 조심히 걸어왔다. 엄마와 함께 먹으라며 피자를 사주었다. 피자를 사러 가는 차 안에서 백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스레 꺼내 들며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외의 장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가게였는지,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가 보고 싶다. 그가 내게 어떤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했었는지 알고 싶다. 엄마에게 전해주라는 편지 한 통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피자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아빠가 사줬어” “어떤 아빠?” 엄마는 당황하며 말했다. “친아빠. 이 편지 엄마 주래” 엄마와 피자를 먹으며 맛있다는 말 외에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함께 미국으로 가자는 편지였고 엄마의 선택은 한국에 남는 것이었다. =친아빠가 없던 내 인생은 그가 존재했었을 또 다른 인생과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어느 것이 더 좋은 삶이었을 거라 확신할 수 없다. 가져보지 못한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


처음 보는 남과 갑자기 가족이 되는 경험들을 하고 가정폭력을 겪었었다. 불안과 우울의 날들을 견디며 ‘내게도 행복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은 채 살았다.

과거의 경험이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분명하고 그 영향은 지금도 내 삶에 있다. 고립과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고 몸이 기억하는 불안의 경직을 떨치기 위해 운동을 한다. 

늘 ‘결핍’을 느꼈기에 어떤 것으로든 채우려는 욕구가 강하다. 그것이 음식이었던 적도 의존적 사랑이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며 지식을 채워 넣기도 한다. 그러면서 책과 글을 사랑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다.


중요한 것은 태도이다. 결과를 마주하는 나의 태도. 이점도 책을 통해 배웠다.

많은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다. 


과거의 경험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를 살게 하는 자산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을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그 선택 역시 결과를 예견하기는 힘들 수도 예측과 달리 될 수도 있겠지만 내 삶의 주사위를 최소한 내가 던지기는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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