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교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질문을 드립니다.
- 당신은 어떻게 지금 하고 있는 ‘일(직업)’을 하게 되었나요?
- 대학을 다녔다면 전공과목은 어떻게 선택을 하였나요? 당신의 흥미와 적성은 어느 정도 반영하였나요?
- 흥미와 적성,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어떤 교육을 받았고 활동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거나 알아볼 기회가 있었나요?
사람에 따라 대답은 다르겠지요.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진로탐색에 학교의 역할은 그리 깊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사회의 변화는 과거 어느때보다 빠릅니다. 키오스크를 익히기도 전에 챗 GPT가 등장했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우리의 속도보다 시스템의 진화가 훨씬 빠릅니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미래 사회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진로를 선택할 필요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선행해야 할 것은 자신의 적성, 흥미, 관심사에 대한 충분한 고려입니다. 예를들어, 노래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가수로 성공하기는 어려우니 미래사회에 유망한 데이터분석자가 되기를 권유한다면 그 사람을 위한것일까요? 즐겁게 몰입하여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통계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제안이 될 수 있겠죠. 이렇게 반론할 수 있겠죠.
“마 치부라. 그런 고민이 밥먹여주냐. 일단 공부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취직해서 취미생활을 하거나 그때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라는 말을 우리는 부모나 교사로부터 참 많이도 듣습니다.
어른들이 떼로 달려들어 말하니, 이 말이 맞는것도 같지요. 학교에서도 국영수사과 라는 소수 과목의 ‘성적’ 에 대한 고민과 교육만 대부분 입니다. 어영부영 시간은 쏜살같이 흐리고 눈떠보니 대학생 혹은 빠르게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대학생도 직업을 갖기전까지 2~4년의 유예기간만 주어졌을뿐 곧 밥벌어먹고 살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앗뿔싸. 내가 뭘 좋아하지? 뭘 하고 싶지?그런 고민은 역시나 별로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해본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그런건 낭만이나 이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어디든 자소서를 내보고, 운좋게 면접기회가 생기면 면접을 치르고, 어디든 뽑아주는 곳에 취업을 합니다. 시험성적이든 자소서 성적이든 ‘나의 선택’은 부재하고, 나를 선택해주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건 어렵죠. 맞아요. 나라는 사람의 능력, 의지만으로 이 세상은 굴러가지 않으니까요.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외부적 조건, 예를들어 사고, 건강, 원하는 직장이 날 뽑지 않는 그런 환경, 부모의 빚, 실연 등이요. 삶은 이런 개인의 내부와 외부의 힘이 적절히 밀고 당기며 살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내부의 힘은 어디에 있나요? 그것을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어영부영 남이 내가 아닌 외부의 이미 세팅된 조건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요.
이 내부의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근육이 붙으려면 꾸준히 반복되는 훈련이 필요하듯 내부의 힘을 기르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여러분이 오랜시간 교육을 받는 바로 그곳, 학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이 거쳐온 학교에서는 그 연습이 충분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제 말이 맞을까요?
이와 관련한 몇 개의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첫 번째 <학생이 인식한 교과흥미, 교과 성취가 직업결정에 미치는 영향>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인문고에서는 약 70%가 실업고에서는 60%가 잠정적으로 직업결정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오히려 실업고에서는 졸업 후 취업이 우선 목적이기 때문에 직업결정 비율이 최소한 비슷하거나 높지 않을까 예측할 수 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가 대학진학을 원하는지 취업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적순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학생일 때는 물론, 중학교 교사로 고등학교 진학지도를 할 때도 그랬습니다. 왜냐고요? 성적이 낮으면 인문계고등학교를 갈 수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알아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고등학교를 정합니다. 인문고를 갈 수 있는 성적이지만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만 굉장히 드문 경우입니다. 인문고등학교들은 대동소이하기에 보통 집과의 거리와 약간의 평판정도입니다. 지역에 따라 1지망부터 보통 10개 초반의 학교를 작성한 다음 배정결과를 기다립니다. 대개는 3지망 내에 작성한 학교에 배정이 되지만 운이 나쁘다면(?) 끝지망에 쓴 학교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는 학생들도 부모나 자신의 희망에 따라 어느 정도 학교를 정한 후 교사와는 원서작성 전 최종 결정 단계에서 몇 차례 상담을 합니다. 아이가 선택한 고등학교가 정말 안 좋은 곳이라면 만류하거나 아님 다른 그 학생의 적성에 좀 더 맞는 곳을 추천해 주는 정도입니다.
두 번째 <한국의 진로교육 혁신 방안 연구: 해외 진로교육 및 진로지도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의 내용을 가져와볼게요.
2018년 기준 ‘진로와 직업’ 교과는 중 학교의 87.3%, 고등학교의 58.6%에서 수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수업 운영 방식은 절반 이상이 선택과목으로 채택하였다(정은진 외, 2018a). 실제로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 ‘진로와 직업’ 교과는 중학교에서는 선택교과, 고등학교에서는 교양교과 안에 포함되어 있어 아직 진로교육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필수 교육과정으로 자리 잡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과정 내 진로교육의 내실 있는 운영 여부는 통계적으로 파악된 양적 측면에서도, 그리고 학생들의 발달단계별 차별화된 내용으로의 질 적인 부분에서도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연계 방식에 있어 교과 관련 직업탐색 및 체험활동 혹은 교과와 관련한 단순 직업을 소개하는 수 준에 그치고 있어(정은진 외, 2018a) 진로교육에서 강조하는 진로개발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연계적 노력이 미흡함을 판단할 수 있다.
위 연구가 하는 말은 이겁니다. 아직 (일반) 학교에서는 효과적이고 도움이 되는 진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럼 학교에서는 어떻게 진로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어떤 일을 하기 전 그 일을 100% 수행해 보고 결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학교 교육보다 학생들이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진로와 흥미를 탐색해 보는 방법은 있습니다. 제가 재직했던 대안학교인 거꾸로캠퍼스(이하 거캠)에서 실제 진로 발견에 도움이 되었던 방법을 소개해 보도록 할게요.
2020년, 저는 졸업생 34명을 대상으로 거캠의 효과성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24명의 학생들이 거캠을 통해 진로를 발견했다고 답했고, 거캠의 여러 학습 방법 중 ‘개인주제프로젝트’가 도움이 되었다는 비율이 34%로 가장 높았습니다.
개인주제프로젝트는 약 10주간 자신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깊게 탐색해 보는 학습방법입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일반적으로 책, 논문, 인터넷 등에서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고 인터뷰나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하며 동영상, 음악, 사진 등도 첨부하기 위해 결과물은 이북(e-book)으로 만듭니다. 일주일에 1~2회 담임교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코칭교사와 미팅을 통해 방향성을 잡아나가고 친구들의 피드백도 받습니다.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진행 과정을 관리하며, 피드백을 받고 계속 수정해 나가는 꽤나 빡센 과정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히려 시험이 더 낫다며 투덜대기도 해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목표설정, 시간과 행동관리 등 자기주도적능력이 향상되고 무엇보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관심사를 심도 깊게 탐구하기에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몰입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갑니다. 10주 동안 한 가지 주제를 탐색한 후, 동일 주제를 이어서 실행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 만들기’를 3회 연속 주제로 삼으로 그럴싸한 게임을 완성하기도 했고, 작곡프로그램을 독학해 작곡을 하기도 합니다. 아래는 실제 프로젝트 제목인데요. 이처럼 100명이면 100가지의 특색 있는 주제들이 탄생합니다.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 잡기 (일과 삶의 적정 온도 찾기)
-나만의 디즈니프린세스 만들기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요
-인테리어가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미니멀리즘으로 승부 보기)
-나만의 게임 만들기 : 거캠 2020
-대입 넌 누구냐
아, 디즈니프린세스는 실제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고,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었던 학생은 매일 드로잉을 연습한 결과물도 첨부했습니다.
아이들은 개인주제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관심사들 발견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 더 알아보고 싶은 주제로 시작해서 지금 나의 진로 선택에 가장 도움이 되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다 보니까 진짜 내가 직업으로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흥미가 있는 건지 구분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주제를 정할 때 가장 진로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때 했던 고민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
초. 중학생 때 과목만 공부인 줄 알았는데. 거캠에서는 교과수업 말고 또 다른 공부가 있었다. 파워포인트도 알게 되었고, 모르는 걸 찾아보는 것도, 미디를 알아보고 배우는 것도, 과목이 아니더라도 배우자하는 의지가 있다면 다 공부가 될 수 있었다. 또 공부를 잘하는 친한 친구가 있다. 거캠에 오기 전에는 이 친구가 내게 조언을 해주는 관계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이 친구에게 인생 조언을 해주고 있다.
위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자기 효능감)은 겉모습의 변화는 물론 일상의 다른 영역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요. 더 이상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의 방향도 스스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요.
간접적인 글을 읽거나 1시간의 강연으로는 자신의 진로를 발견하고 탐색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pd가 되고 싶은 학생이 당장 pd를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실제 pd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고, 미니 프로그램을 기획해 볼 수는 있습니다. 작곡을 꿈꾸는 학생에게 “그럴 시간에 시험공부나 해”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곡을 만들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학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아,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만 소개했는데 지면이 꽉 차버렸네요. 아쉽지만 두 번째 방법은 나중을 기약해야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