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지난번 글의 마지막을 기억하실까요? 거꾸로캠퍼스(이하 거캠) 졸업생의 말이었지요. 몇 시간 전 먹은 점심도 기억 못 하는데 일주일 전에 읽은 글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당황하시기 전에 자진해서 글을 갖고 올게요.
(*참고- 이전 글: https://brunch.co.kr/@freehj21/156)
누구도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그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반적인 공교육처럼 앞만 바라보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쳐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유가 넘치게 된 시야는 자연스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하게 된다. 남을 향한 도움으로 변화하고 결국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지난 글에서는 다 얘기하지 못했는데요... 사실 ‘다른 사람들 향하는 시선’이 비단 시험이 사라진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얘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바로 '학습 주체성' 이예요.
방금 사용한 접속부사, ‘그래서’의 사용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신다고요? '학습'과 '주체성'의 뜻은 모두 아실 테지만 교육자가 아닌 이상 '학습 주체성'은 조금 낯선 개념이라 그러실 거예요. 혹은 학습 주체성을 들어보셨더라도 '남을 향한 도움'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와닿지 않으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부터 설명해보려 합니다.
이전에 임승훈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시 제 글(그때도 재미없는 교육이야기)에 피드백을 주시면서 '왜 주도성이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을 하셨어요. 이전까지 '당연히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냐?라고 생각해 왔기에 약간은 신선한 혹은 당혹스러운 질문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의 교육에서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나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교육'을 당연한 명제로 여기거든요. 그러나 이 질문을 듣고 부끄럽게도 제가 정확히 답변할 수 없음을 깨달았어요. 사실 이 세상에 '당연한'것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혹시 제가 위에서 '주도성'과 '주체성', 두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한 것 눈치채셨나요? 그게 그거 아니냐고요? 지금부터 두 차이를 찾는, 좀 더 정확히는 ‘주체성’을 파헤쳐보는 여정을 떠나려 해요. 뇌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조금은 딱딱한 정보의 글이 포함될 예정이라 심호흡 크게 한번 하고 읽어주세요.
교육자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OECD 교육 2030(Education 2030)'과 '학습나침반(Learning Compass)'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왜 거기서 나와? 의아하신 분들 위해(원하지 않으셔도) 짧게 설명해 볼게요. OECD의 핵심목표는 '경제의 지속적이고 안정적 발전'입니다. 그렇기에 미래사회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죠. 경제를 포함한 사회는 사람이란 자원에 의해 움직이고 사람은 교육을 통해 사회인(재)으로 성장합니다. 고로, 사회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OECD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거죠.
'역량교육'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것도 바로 이 OECD예요. (우리나라도 2015 개정교육과정에 역량교육을 도입했죠.) OECD는 1997년부터 2005년까지 DeSeCo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핵심역량개념을 제시하며 지식중심의 전통적 교육 대신 역량중심의 학교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후속 프로젝트로 2030년 사회를 이끌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연구인 '교육 2030'을 수행하고 이전 프로젝트에서 추상적이었던 역량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냅니다. 아, 역량이 뭐냐고요? 운전에 빗대어 설명해 볼게요. 만약 운전면허를 방금 막 손에 넣으셨다면 여러분은 운전에 관한 지식과 간단한 운전 기술은 갖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능숙한 드라이버는 아직 아니죠. 차선변경, 주차는 물론 운전을 하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 정도를 가지려면 숙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죠. 끼어들기를 했을 때 비상깜빡이를 켜는 매너라든지 위험한 과속운전은 하지 않는 운전 태도까지 포함된 걸 역량이라고 합니다. 즉, 지식, 기술, 사회적 태도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 개념입니다. 다시 OECD프로젝트로 돌아가 볼게요. 이 역량의 구체화 외에 'Student Agency'라는 개념을 새롭게 등장시키고 또 중요하게 강조합니다.(갑분싸 영어 죄송해요. 정확한 번역은 곧 나옵니다.) 저도 영어교사이지만 2016년 거캠을 구상하던 자리에서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 단번에 이해되지 않았어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표현이 아니었죠. 이 단어의 한국어 번역은 ‘학생주도성’과 ‘학생주체성’중 어느 것이 더 적절할까요?
먼저 주도성, 주체성 두 단어의 사전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아, 벌써 주무시는 건 아니죠?)
*주도성: 주도적 입장에 서는 성질이나 특성 (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동어반복 아닌가요?)
*주체성: 1. 인간이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나타내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 2. 철학) 현대 철학에서 의식과ᅠ신체를ᅠ가지는ᅠ존재가ᅠ자기의ᅠ의사로ᅠ행동하면서ᅠ주위ᅠ상황에ᅠ적응하여ᅠ나가는ᅠ특성
위 정의를 보면 주도성은 리더십과 가까워 보여요. 수동적으로 남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이끄는 느낌. 만약 취미로 글쓰기를 하거나 와인을 배운다면 내가 원해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배우는 거죠. 주체성은 두 번째 철학 관점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똑같이 주도성을 발휘해 글쓰기를 배우지만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과 그 상황에 나를 적응시켜 나가는 것, 즉 사회적 책임까지 동반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student agency를 ‘학생 주체성’으로의 번역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OECD 교육 2030]에서 설명하는 student agency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각색과 의역을 적절히 가미했습니다.)
학생 주체성은 학생이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게 자신이 끼치는 영향을 인지한다. (중략) 자신의 학습에 주체성을 가질 때 학습자는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적극적으로 결정하며 학습의 목표를 정의하고 더욱 동기부여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학생 주체성은 정체성, 소속감의 발달과 관련이 있으며 주체성을 가진 학생들은 삶을 살아갈 때 동기, 희망, 자아효능감, 성장마인드셋 (Growth mindset)을 잘 이용하며 잘 사는 삶(well-being)으로 나아간다. 주체성의 발달은 가족, 동료, 교사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며 학습에 주체적일 때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결정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사회, 경제, 도덕, 창의적 영역까지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덕적 주체성은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며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인지하고 자신이 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임작가님의 질문으로 돌아가 주도성을 주체성으로 바꾸는 꼼수를 살짝 발휘해 답을 해볼게요. “왜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냐?”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고립보다는 함께 할 때 생존에 유리하죠. (글쓰기도 동지가 있을 때 힘이 나잖아요?) 상대를 배려하고 도울 때, 나 역시도 상대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지지받을 때 인간은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주체적인 인간은 사회(타인)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압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이죠. 두 번째 답은 ‘순수한 기쁨’입니다. 인간은 수동적으로 시켜서 무언가를 할 때보다 주도적 역할을 할 때 동기, 희망, 자아효능감 등이 발휘됩니다. 기쁨이 어떠한 진화의 과정에서 양상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인간은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서두에서 언급한 "여유가 넘치게 된 시야는 자연스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하게 된다." 아직 잊지 않으셨죠? 학생주체성을 확보했던 거캠의 교육방법을 이제 소개해볼게요.
거캠은 기숙사 학교였습니다. 이전 글에서 기숙사 공과금을 아이들이 낸다고 했을 때 어떻게 내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어요. 가정집과 똑같습니다. 공과금이 나오면 같은 기숙사 방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1/n을 해서 내죠.(거캠 회계담당자분이 각 방장에게 금액과 계좌번호를 알려줍니다.) 자연히 아이들은 한 달에 얼마의 요금이 나오는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되고 쓰는 만큼 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해주던 청소나 요리도 본인들이 해야 해요. 안치우면 그만큼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요. 나는 깔끔한데 같은 방 친구가 더럽다면요? 혹은 자고 싶은데 자꾸 불을 켜고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한다면요? 관계적 동물인 인간에게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어려운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관계이지요 예상치 못한 갈등을 만나고 그 해결과정에서 나와 상대의 감정의 그 미묘함을 견뎌야 하잖아요. 만약 학교에서만 만나면 죽마고우가 될 친구들이 같이 한 공간에서 생활할 때 원수가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은 함께 수업만 들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갈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캠은 더 기숙사를 고집했습니다. 일찍이 생활력과 사회력의 레벨을 올리게 하고 싶었거든요. 이것도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고요. 다음의 말을 들어볼까요?
"시야가 넓고 생각이 깊은 친구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그냥 살던 대로 살았다면 경험도 못하고 알 기회도 없었을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거캠에서 지내며 이 부분이 가장 좋았던 것 같고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위 말을 한 친구는 MBTI 'I'의 비중이 꽤나 높게 나올만한 친구예요. 팀프로젝트도 어려워(싫어)했고요. 또 다른 제 코칭 학생은 제게 몇 차례나 기숙사 생활이 정말 힘들다고 호소를 했습니다. 팀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지지고 볶는데 쉴 때만이라도 혼자만의 방이 필요한 거였죠. 기숙사 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어 교사들도 기숙사를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할지 계속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저는 이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아예 기숙사를 입학할 때부터 선택으로 하면 좋을까요?" "음. 아뇨. 1년은 의무적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갈등관리가 힘들지만 배우는 점이 크니까요."
다른 친구들의 말도 들어볼게요.
"하루 종일 친구들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배울 만한 점들을 찾아 저에게 적용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예를 들면 끼니를 웬만하면 건강한 요리를 해 먹으려는 친구를 보고 저도 음식과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기도 했고, 저를 배려하며 화목한 기숙사 생활을 만들어가려는 친구를 보고서는 저도 신입생에게 그런 룸메가 되려고 노력할 수 있었어요."
“기숙사가 있었기에 더 많은 소통을 하고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방 친구들 또는 다른 방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고 조그마한 프로젝트들도 논의했다. 더 많은 배움을 만들어 가거나, 재밌는 상상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인용한 학생들은 좋은 룸메를 만난 것 아니냐고요? 약 4개월마다 랜덤으로 기숙사 배정을 바꿨기에 늘 그런 천운이 따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인간관계의 희로애락을 겪으며 저런 생각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기숙사 생활을 해보지 않은 저는) 추측해 봅니다. 통금 시간은 정해져 있었지만 같은 기숙사를 사용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소등 시간, 청소나 생활규칙 등을 정하는 ‘타운홀미팅’도 주기적으로 가졌어요. 소통의 장을 만드는 것 역시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니까요. 사실 다른 학교의 기숙사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는 저도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어요. 거캠처럼 공과금도 아이들이 해결하고, ‘타운홀미팅‘ 시간도 갖는지요. 그래서 기숙사생활이 거캠 만의 장점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단, 아이들이 20살이 되기 전 최소 1년간 함께 생활하는 방법이 큰 배움이 된다는 것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학습방법인 팀프로젝트는 다음 글에서 만나도록 할게요. 그럼 우리 또 만나요.(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