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역할에 대해]
거꾸로캠퍼스(이하 거캠)는 기존 학교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없는 학교였습니다 학년의 구분도, 교복도, 시험도요. 특히 시험 대신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밀도 있게 정리하여 결과물을 만들고 이를 발표하는 ‘배움장터’ 와 점수와 등수 대신 교사들이 서술형으로 학생에 대해 작성하는 ‘성장기록부’가 존재했어요
(*배움장터: 하나의 수업기간(약 11주)동안 학생들이 학습한 내용을 참가한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일종의 평가이자 발표의 자리입니다. 참가자들은 학부모, 교사, 친구, 교육관계자 등 다양하며, 학생들은 약 10~15분 동안 개인 및 팀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직접 청중에게 보여주며 발표합니다.)
시험이라는 강력한 외재적 도구가 학습에서 사라진 것이죠. 시험이 없다니! 올레!를 외치고 싶으신가요? 혹은 ‘시험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할 텐데요!’라는 우려가 먼저 드시나요? 공부는 시험이라는 외재적 조건이 있어야만 할 거라는 전제가 깔린 우려지요. 그럴 만도 해요. 시험이 없는 공부를 거의 안 해봤으니까요. 아래 졸업생의 말을 먼저 들어볼게요.
“시험을 치고 그 점수로 귀결된 그 등수가 나의 가치라고 생각했었다.
등수는 높지 못했던 편이라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었다.”
시험에 대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했다고 봅니다. 점수가 그 사람의 가치가 되어 버리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온전히 그리고 충분히 성숙되어 자랄 수 있을까요? 지겨운 말이지만 친구가 경쟁상대일 때 즉, 사람을 목적이 아닌 도구로만 대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함께 잘 사는 사회가 과연 가능할까요? 자신과 사회를 충분히 알아가는 데 우리의 공부는 얼마큼의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요?
아, 오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려요. 시험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학습 후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시험을 통해 확인하고 모르는 부분을 보완하는 원래의 목적으로 쓰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시험이 본래의 목적이 아닌 점수와 등수를 위해 사용되고 있죠. 위 학생의 말처럼 ‘나는 1등이니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이고, 너는 25등이니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사람이구나.’ 라는 사람의 가치가 점수로 매겨지는 섬뜩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평가의 목적이 변질 된 ‘등급매기기’가 어느새 인간의 공포와 욕심을 먹고 자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시험이 없을 때 과연 잘 학습할지 의구심이 드시죠? 학생들에게 시험이 없는, 좀 더 정확히 말해 점수로 평가되지 않는 학습 방식이 어떤 의미였는지 한번 보도록 할게요.
“거캠은 시험도 없었고 경쟁도 없었고 서로 뒤를 쫓지도 앞으로 먼저 달리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문화 속에서 나는 사람을 만나고 생활을 배우고 많은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던 내가 장래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수 있었다. 싫어하던 공부도 잘하게 되었으며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거캠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내 인생을 180도 바꾸어준 거캠 그 자체이다.”
“내가 느낀 점은 일반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땐 관심도 없는 과목들을 머릿속에 넣어 매우 휘발되는 지식들이 많다고 느껴졌고, 후에 남는 것은 성적표라는 것에 숫자로 낙인 되는 것뿐이었다. 반면 거캠에서의 평가 방법인 프로젝트는 약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자신의 관심사를 모든 방법을 이용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라 실질적으로 머릿속에 오래 남고, 그 후에는 자신의 결과물이 뚜렷하게 남았다.”
물론 시험만 없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거캠에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자신의 관심분야를 탐색하는 ‘개인주제프로젝트’나 친구들과 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프로젝트’도 진행했고,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를 학습하는 ‘주제중심수업’처럼 일반학교와 다른 학습방법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학습방법이 있다 해도 시험점수로 평가하고 서열을 매긴다면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럼 시험의 본래 목적인 ‘성취를 확인하고 보완하기’를 거캠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그 답은 ‘피드백’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피드백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게요.
먼저 위에서 언급한 배움장터는 그동안 학습한 자신의 결과물을 온전히 보여주는 자리이기에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친구와 교사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학습 결과물을 수정하며 완성해 나갑니다. 결과물은 우리의 얼굴이 다르듯 모두가 다릅니다. 점수를 받거나 줄 세워지는 도구가 아니기에 ‘비교’와 ‘경쟁’이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작품은요? 사람마다 다른 답변이 나오겠죠. 물론 노벨문학상이나 부커상 수상자는 대단한 작가들이겠지만 작가들을 일렬로 줄 세우지는 않죠. 작가들의 작품세계가 다르듯 아이들의 결과물도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이기에 쉽게 등수를 매길 수 없어요. 물론 정말 대충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죠. 그러나 특정의 숫자로 등수를 매기거나 그 결과물로 ‘끝’을 내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왜 충실히 결과물을 만들지 않았는지 자신의 상황을 얘기해요. 그 말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담당 교사는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아이의 상황에 맞는 적절한 피드백을 줍니다. 다음에 더 만족스러운 과정과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거죠. 제 말은 잠깐 멈추고 졸업생들의 말을 들어볼게요.
“점수가 나오는 시험을 치면,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기가 너무 편해요. 비교가 너무 편해서, 비교를 안 하기가 이상할 정도로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등급을 비교하며 자주 우울해지곤 했어요. 비교가 습관이 아닌데도, 모든 환경이 비교를 부추겼어요.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나누는 일이 잦았거든요.) 거캠의 평가 방식이 점수가 나오는 시험이었다면 맞은 문제와 틀린 문제를 파악해서, 틀린 문제가 어떤 문제이지 파악하고, 그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학습을 덜했는지를 열심히 분석해야 했을 거예요. 그런데, 거캠에서는 이북을 만들고 발표를 하고 그걸 가지고 피드백을 하니까, 좀 더 직관적으로 잘 한 부분 못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평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꼭 점수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피드백 문화를 만들었고 피드백을 통해 더 나은 나로 성장합니다. 점수는 그냥 그 사람을 딱 평가하고 말지 더 나은 나로 만들려면 스스로를 엄청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돌아보기도 전에 자책에 빠지고 서로를 비교하며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피드백을 통해 저를 성찰할 수 있었고 더 나은 나로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혹시 교사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어떠신가요? 이런 교육을 한번 해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지금도 기억나는 학생의 말이 있습니다. “쵸파, 저 학교 다닐 때 공부 더럽게 못했어요.”
( 갑자기 쵸파라뇨. 당황하셨죠? 거캠은 16~19살의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함께 학습을 하는 무학년제이다보니 ‘언니’, ‘형’ 같은 위계를 나타내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두 글자 닉네임을 사용했어요. 교사도 마찬가지였고요. <원피스> 캐릭터 쵸파 아니고요. ‘쵸코파희(정)’의 줄임말이랍니다.)
한 번도 이 친구가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공부를 못한다, 잘한다’란 기준이 필요 없는 교육환경이기도 했지만 일반학교라면 공부 잘했을 것 같은 학생이었어요. 책도 즐겨 읽고, 글도 잘 쓰고,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필요할 때는 자신의 생각도 조리 있게 잘 표현했거든요. 일반 학교에 있었더라면 저는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들 역시 ‘내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혹은 내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못했겠죠.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다보니 개개인이 갖고 있는 관심사, 재능, 역량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A는 친구들에게 말을 참 예쁘게 하면서도 카리스마있게 팀 리딩도 잘하네.’ ‘B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참 잘 쓰네.’ ‘C는 이전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싸우고 입학했는데...나름(?)예의도 있고 좋아하는 일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가 있구나’ 같은 생각들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습니다. 콜라라는 닉네임의 남학생은 처음 입학했을 때 말도 거의 안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을 했었어요. 아직도 첫인상이 기억나는데요. 중3, 반에서 굉장히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한 모습이요. 몇 개월 뒤 C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팀 프로젝트도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변했어요. 말투와 표정에서 이전보다 자심감 있는 모습은 물론이고요. 배움장터에서 아이의 변한 모습을 보신 어머님은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고요. 참고로 콜라는 현재 외국대학을 다니고, 콜롬비아 여자친구도 사귀고 있답니다.
한 졸업생의 글로 마무리 해볼게요.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도 경쟁을 하지 않는다. 그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일반적인 공교육처럼 앞만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쳐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유가 넘치게 된 시야는 자연스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향하게 된다. 그것은 남을 향한 도움으로 변화하고 결국 혼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래서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