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효자동 The reference [https://www.the-ref.kr/]
제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미술관 관람' 이지요.
오늘도 전시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life 사진전.
한가람미술관에서 Life사진전은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THE-REFERENCE]라는 이름의 복합 문화공간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본 곳이라 관심이 갔습니다.
1층은 전시 2층은 아트북서점으로 운영되는 공간.
사진전은 일전에 본적이 있기에 사진전 보다는 2층 서점 공간이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작은 서점을 좋아하기에 고민할 순간도 없이 바로 발길을 효자동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공간. 오래된 서점을 연상시키는 듯한 엔틱한 공간 속에는 일반 서점에서 찾기 힘든 책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학부터 미학까지. 다양한 종류들. 평소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는 찾기 힘든 책들이라 참 반가웠습니다.
이런 우연한 만남과 발견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Life사진집은 구입목록에 디폴트 값으로 설정해 놓고, 함께 구입할 책들을 찾기 위해 여러권 살펴 보았는데요.
구입한 책들 중 한 권이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서점을 나와 근처 카페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 책을 먼저 읽던 남자 친구가 껄껄거리며 제게 한 구절을 읽어주었어요.
p. 13
꽃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은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일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피는 것들을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교환가치로 재고, 냄새 맡고, 자르고, 태우고 묶어 다발로 만들어 팔아넘기는 행위란 꽃들에게 있어서는 치욕과 모멸이다. 그 치욕과 모멸은 사르트르적 어법을 빌면 즉자적 존재로서의 꽃, 즉 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대자연인 무엇으로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고, 값을 매기는 횡포에서 비롯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완상도, 살아있는 것에 대한 바늘 끝만 한 경의도 없는 그 수작들은 결국은 돈을 위해 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붙이는 의미들이란 거창하다. 그리고 그 행위란 인간이 꽃에 대해 느끼는 질투와 심리적인 투사에 가깝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꽃 한 송이 만들지 못하는 인간이 가진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꽃들을 착취하고 괴롭혀서 만족을 얻는다.
(중략)
그러나 그 열망이 관습이 되고, 관습 속에서 기호가 되는 순간 추악해지나. 즉 완전한 즉자적 존재인 꽃이 문화 속에서 하나의 기회, 언어로 기능할 때 꽃은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꽃 대신에 꽃말과 관습적 예의들이 들어선다. 축하, 애도, 사랑... 그리고 침묵과 죽음. 인간에게 있어 꽃은 자연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약호이다. 그 약호는 이른바 재현적 약호로서 텍스트를 구성한다. 물론 그 의미는 꽃과는 무관하고 비논리적이며 자의적이다. 이 자의성은 꽃들을 하나의 상징적 기호로 만든다. 모든 상징이 그렇듯이 붉은 장미는 사랑과 무관하며 흰 국화는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상징의 배경에는 꽃말, 전설 등의 신화가 있다.
책은 시작부터 날카로운 시각을 던집니다.
작가의 통쾌한 관찰력과 일상의 것들을 기존의 생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
엄청난 공감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꽃에게 이입한 공감이라니!
꽃이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작가의 글처럼 생각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우리가 인간 외 생물. 무생물 모든 것을 ‘인간화’하여 바라보았나,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내 작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작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분께는 죄송하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책.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을 때 밀려오는 뭔지 모를 뿌듯함... 괜스레 입고리가 올라갑니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무기를 발견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p. 17
도시의 거리에 놓이는 가로수, 꽃들 역시 이러한 발상의 연장이다. 비록 그 규모는 작고 초라할지라도 도시에 인위적인 자연을 들여옴으로써 도시의 추악함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은폐는 비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로수나 꽃조차 없다면 도시는 더욱 견딜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의 기호들로 은폐되는 것은 도시의 추악함만이 아니다. 그 기호들은 도시가 노동의 장소, 지배적 계급이 노동을 착취하고 부를 이룬 원천이라는 것을 은폐하는 시각적 기술이 된다. 그래서 고층 빌딩들과 백화점 앞의 공간은 나무와 꽃과 벤치와 분수가 놓인 소규모 정원처럼 꾸며진다.
P. 21
무심히 보면 그냥 예쁜 덕수궁 대한문 앞의 꽃밭도 정치적인 동기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2013년 4월에 느닷없이 만들어진 이 꽃밭 자리는 원래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뒤 세상을 버린 노동자들의 분향소와 농성장이었다. 그걸 강제 철거하면서 다시 농성장으로 쓰지 못하게 중구청에서 꽃밭을 조성했고 지금도 남아 있다. 관광객들은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고 지나가는 꽃밭도 꽃과는 무관한 인간의 교활함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 방식이 다양한 일상의 무심코 스쳐지나가는 사물들을 주제로 삼아 날카롭고 적나라하게 드러랍니다.
순진 혹은 순수한 무지, 근사한 투머치 긍정주의, 회의에 회의를 더하는 회의주의 등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우리는 ‘합리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제목은 정확히 [시시한 것들의 아름다움-20년 후] 입니다.
작가는 20년 전, 1997년 <꽃>, <쓰레기>, <아파트> 등을 소재로 로 글을 썼었고 2018년 같은 주제에 대해 다시 지금의 생각을 덧붙 두 개의 글을 묶어 출간한 책입니다.
20년의 세월 속에 겉모습은 변했지만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문화, 기호, 욕망 등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책에 재미는 물론 독자를 향해 '생각할 거리'를 던집니다.
이런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맞고 틀리고의 이분법 적 생각보다는' 생각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인식의 전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는 책입니다.
특히 다음의 분들에게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조금 삐뚤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시시하다고 쉽게 치부해 버리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 그것도 아름답게.
-크리스티나의 지극히 주관적 Book Re:view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