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서촌에 있는 책방[서촌, 그 책방]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작년부터 참여중입니다. 서점 주인이자 독서모임장의 추천작으로 매달 한권 씩 읽게 되는데요. 주로 한글작가 책으로 진행을 하세요. 이 책 역시 독서모임 선정책이었습니다. 직업 특성 상 교육관련된 책들을 자주 읽게 되는 저로서는 제가 잘 접하지 않을만한 책들을 읽게 되고 선정 책들을 항상 재밌게 읽고 있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독서모임 입니다.
이번 책은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일기' 였습니다. 2020년 1월 선정책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 안되었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처음 책을 들고 살펴 본 작가분 이름은 '역시나' 낯설었습니다. 한글작가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편이기도 했지만 다행히도(?)죄송한 마음이 조금은 옅어질 수 있도록 작가 스스로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한국작가는 아니다. '라고 책에 쓰신 내용에 마음의 짐을 조금 덜 수 있었습니다.
책 소개를 하자면, 책의 제목처럼 최민석 작가가 베를린에 90일간 머무르는 하루하루를 손으로 쓴 일기를 그대로 출간한 책인데요. 술에 취해 써진 오타도 모두 그대로 실었다는 점이 '일기'라는 소재의 친근감을 더해줍니다.
위트있는 작가란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에피소드도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유쾌하고 또 그만의 통찰력으로 상황을 비틀어 묘사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이중적 모습이 있습니다. 편하게 후루룩 읽혀지는 동시에 생각할 '거리'역시 던져주는 작가의 관점이 좋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중 일부를 발췌했는데요,
p. 84-85
수많은 관광객이 걸인들을 일상적으로 외면하고 기쁨에 젖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20대 초중반에 줄곧 강남에서 살았는데, 당시 압구정동의 한 대형 교회 정문 앞에 엎드린 걸인을 와면한 채 예배드리러 가는 무수한 성도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예수를 만나러 가면서 예수가 말한 “가장 낮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라는 말을 잊은 것일까. 그 말이 나를 괴롭혀 주머니안의 모든 돈을 길 위의 예수들에게 드리고 왔다.
위 구절을 읽고서는 저도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행동과 생각의 불일치 라고 할까요. 신을 믿는 신도는 아니지만 저 역시 어느 여행지에서는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흔히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저런 모습에서 작가의 비판적 통찰력이 꽤나 좋았습니다.
p. 142
길어서 생략.
요약하자면, 혼밥이 주제인 글을 청탁받았는데 ‘왜 내게?’라고 생각해보니 계속 혼밥을 했다고 한다.
혼자밥을 먹은 국가만 해도 38개국에 달하는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만약 보드리야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내가 그의 학과장이었다면, 석사학위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학부모 낙제시켰을 것이다. 단,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
만약 내가 스웨덴 한림원장이었다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을 것이다.
위 글은 읽을 때는 '와 위트보소' 라고 생각하며 기록을 해놨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다시 보니, 맥락 없이 저 부분만 보니 '왜 위트가 있다는 거지?' 갸우뚱 거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역시 글은 문맥이 중요합니다.
그런만큼 직접 베를린 일기를 '직접' 읽어보시다면 제가 그랬듯 긴 겨울밤, 책을 읽으면서 '아 나만 외롭지 않구나' 하는 위안을 얻게 될거라 생각합니다. 시린 겨울과 시린 세상에서 잠시나마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를린의 삭막한 감성을 촉촉히 느끼기에 겨울밤만큼 또 좋은 시간도 없으니깐요.
최민석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졌습니다. 사놓고 못 읽고 있는 책들도 이미 많아 많아 가까운 시일내에는 새책을 다시 않겠다고 다짐을 한 터이기에 빠른 시일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2020년이 가기 전 한권은 꼭 읽으려 합니다. 유쾌하지만 또 풍자적 톤이 매력인 최민석 작가가 쓴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사뭇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