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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Jul 06. 2020

[Book Re:view]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당신은 리터러시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나요?

서울대학교 응용언어학자인 김성우 님의 전작 <단단한 영어공부>은 기억하고 싶은 문장도, 기억해야 할 문장도 많았던 책이었는데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영어>로 울고 웃었던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본다면 단순히 '영어공부를 해야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성찰적 태도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운영하시는 <삶을 위한 영어공부>에 올리시는 글을 읽으면 저의 짧은 문장력으로 이분의 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깊은 사고와 성찰을 보여줍니다. 저자의 단단한 내공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이번에 김성우 님과 문화연구자 엄기호 님이 대담 형식을 통해 함께 쓰신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를 우연히도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기대보다 더욱 좋아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30대인 저는 문자 텍스트와 영상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제가 대학교를 다녔던 시기는 스티브잡스의 시대라고 통칭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때 처음 카카오톡이 등장하기도 했네요. 그리고 2005년 처음 탄생한 유튜브는 2008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급속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는 특히나 그 변화를 매일 실감합니다. 정보를 찾을 때 ‘텍스트 기반’이 먼저 떠오르고 편했던 저였지만 지금의 10대 아이들은 유튜브의 영상을 통해 정보를 찾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했고 대학생 때 아이폰을 처음 사용한 저는 글을 쓸 때는 키보드가 훨씬 편합니다. 하지만 제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문서를 편집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게 더 편하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변화된 시대에서 교사라는 위치에 있으며 다음과 같은 고민이 들었습니다.


(1) 정보를 습득하는 통로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데 아니, 이미 변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의 시점에서  문자 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강조하고 사용해야 할까?

(2) 나 역시도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며 음악, 뉴스, 강연 등 여러 정보를 유튜브를 통해 이미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새로운 매체를 어떻게 아이들이 사용하도록 해야 할까?  


저는 삶의 방향성에 어느 정도 가치관이 형성된 이후의 유튜브를 접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극적 영상은 피하고 제가 필요한 영상을 찾아 활용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유튜브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 영상들을 쉽게 검색하고 볼 수 있으며 텍스트와는 다르게 하루 종일 추천 영상들만 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매체의 속성상 책의 한 챕터가 끝날 때라든지 내가 원할 때 비교적 쉽게 끝낼 수 있는 ‘텍스트’ 와는 다른 속성을 지녔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는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역량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디어 리터러시’를 알아야 하겠죠.

이런 고민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리터러시’라는 용어가 낯설지는 않지만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라는 어려움 또한 느끼고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라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제 기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책이었습니다. 단순히 ‘문자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정보제공’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성찰적 삶의 자세’를 기반으로 리터러시를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 또한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이기에 한국 상황을 기반으로 한 폭넓으면서도 깊은 이해에서 나오는 두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들립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 밑줄을 치고 index를 달았습니다. 첫 번째 완독은 하였지만 re-read가 특히나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특히나 literacy를 가까이 하는 교사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리터러시를 사용하는 세대가 함께 있는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 것인가, 또한 리터러시는 말, 글에만 연관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토대가 되는 만큼 중요하죠.


 인상적이었던 몇몇 문구의 소개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리터러시를 판단할 때, 이 사람이 어떤 텍스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느냐를 봐요. 그런데 이 텍스트를 해석하는 권위는 자기한테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면 잘하는 거죠.
여태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대부분이 텍스트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싹 무시하고 영상을 만든다는 건 만용이에요
읽기의 사유역량을 특권화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읽기의 진입장벽이 무엇인지를 첫 번째로 봐야 해요. 두 번째는 그 진입장벽을 낮추거나 뛰어넘으려는 교육을 해왔느냐. 이것이 성찰의 지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꾸준히 글을 읽고 써내는 일은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고 삶을 지어가는 방식으로 볼 수 있는 거죠.
학생들이 영어시간에 배워야 될 것은 평가에 최적화된 기술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라는 것, 적절하게 소통의 능력은 선다형 문제로 측정할 수 없다는 걸 교사나 평가학자나 다 알아요. 그래도 못하는 거잖아요.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있지 않았고, 특히 한국사회는 경쟁의 규칙에 과도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교사들의 자질이나 교육과정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쟁의 규칙을 정하는 제도와 철학, 공정함에 대한 감각, 또 교사나 공교육에 대한 신뢰, 이런 게 더 근본적인 문제예요 안다.  
텍스트와 영상이  사유를 촉진하는 방식이 다른데, 결국 몸의 변화를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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