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케이블을 중심으로 단순히 보고 즐기는 버라이어티쇼, 먹방 등의 TV 프로 외에도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재미를 주는 Edutainment(educational and entertainment) 프로그램들이 적잖이 생기고 있다.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으면서 지식도 쌓을 수 있는 1석 2조의 목적이 아닌가 싶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모르고 있던 분야의 정보를 알게 된다.
그런데, 사실 보는 순간에는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지식들이 내 것이 된 것 같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방금 본 내용을 설명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거의 대부분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보는 순간에는 알게 된 것 같지만, 실은 알게 된 것이 아니다.
의미적으로는 이해한 것 같지만 정확히 내 것으로 만드는 지식의 내면화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강의를 듣는 맥락과 같다. 교수자의 강의를 들을 때는 이해한 것 같고 안거 같지만 뒤돌아 서면 사실 대부분의 정보와 기억들이 사라진다.
(에빙하우스의 지식의 망각 그래프를 생각하면 쉽다.)
강의란 그렇다.
들을 때 내가 다 이해한 것 같지만, 그 정보는 내 지식이 아니라 ‘설명자의 지식’이다. 내가 그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나 스스로에게 설명’ 해보는 지식의 내면화 과정이 필요하다.
강의가 그렇게도 효과가 없나?라고 반문한다면, 서울대 이혜정 교수의『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책에 소개된 실험 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첫 번째로 TV를 볼 때와 강의를 들을 때 모두 교감신경계가 불활성화 된다고 한다. 즉, 아무런 각성이 없는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상태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흔히 유창한 강의를 들을 때 내용을 더 잘 이해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유창한 강의를 들은 학생들과 어수룩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학습내용을 측정한 테스트 결과 기억의 결과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한다.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 강의라도 곧바로 학습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조: http://news.joins.com/article/18702722
이처럼 좋고 안 좋은 강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쨌든 ‘강의’를 한번 본 것으로는 지식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지 않는다.
'강의를 보는’ 행위는 'TV를 보는' 행위와 같다.
아무리 좋은 다큐멘터리와 교양프로라 해도 당신의 지적 수준이 바로 상승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감상(感想)만 했기 때문이다.
"재밌었어. 유익했어. 지루했어. 좋았어" 등은
'감상(感想)'일 뿐 그것을 내가 평가하는 영역까지 끌어올리지 않는다.
여기에서 감상(感想)이란 느낄 감(感), 생각상(想)으로 말 그대로 '느끼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영어로 thoughts, feelings, impressions 정도로 옮겨질 수 있다.
사람 혹은 사물에 대한 '감상, 인상'은 보거나 들은 후 그것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 것)
반면, 우리가 어떤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이해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감상(鑑賞)'의 영역까지 도달해야 한다.
여기에서의 감상(鑑賞)이란 거울 감(鑑) 상줄상(賞)으로 어떠한 작품이나 내용을 이해하고 평가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어떠한 것을 질적으로 평가하고 적절한 가치를 메기는 행위’인 “appreciation”.
평가는 단순한 감정과 생각 차원이 아닌 고차원적 수준이 요구된다.
블룸의 인지적 학습단계(Bloom's revised taxonomy)를 보면 평가(evaluation)는 인지적 수준에서 상위 차원에 속한다.
학습자 혹은 평가자는 이미 알고 있거나 배운 내용을 모두 끌어들여 합리적이고 사리 분별한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여러 교양 혹은 Edutainment 프로그램을 보지만, 그 프로그램의 지식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적 수준이 상승되지 않는 이유는
감상(感想)은 하지만 감상(鑑賞)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TV 프로그램이더라도 내 것이 되는 작업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저 교감신경계는 활성화되지 않고 그저 보고 즐긴 것에서 끝나게 된다.
특히나 너무나 많은 영상들이 추천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영상들을 정주행 하고 있는 요즘,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