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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Sep 06. 2020

손미나의 아버지

어떤 교육이 우리 사회에 필요할까?

손미나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KBS 아나운서

여행작가

인생학교 교장

등등


여행책들 외에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라는 에세이집이 있는데요.

가볍지 만은 않은 인생의 긍정적 모델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많아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그중 (교육에 종사하다 보니) 손미나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어요. 일반 부모와는 다른 방법의 교육 모습이 귀감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개의 사례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남들보다 멀리, 남들과는 다르게>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부모님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전공으로 택하라는 딱 한 가지 당부만 강조하셨다.
"열정을 품게 하는 것이어야 평생 배울 수 있고, 인생에 진정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때 손미나 작가는 '러시아어'를 전공하려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명작들을 원어로 읽을 수도 있고 또 당시 국제 정세의 급변으로 러시아어가 핫한 언어로 떠오르고 있었다고 해요.


그때 손미나 작가의 아버지는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야, 아빠 같으면 스페인어를 배워볼 것 같아."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곧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세상은 좁아질 거고 아직 개발이 더딘 중남미와 한국과의 교류 가능성과 잠재력, 여러 나라에서 쓰이는 언어, 역사와 문화가 풍요로운 곳이며, 무엇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수요는 늘고 공급이 부족하니 중간 이상만 노력해도 힘들지 않게 먹고살 수 있지 않겠니?


그리고 스페인어학과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금 손미나 작가와 스페인은 떼어놓고 떨어지기 어려울 정도죠.


스페인어학과 진학 후 사람들이 종종 "미나가 성적이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영문과는 떨어졌나 보죠?"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말이 흔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추세에 맞게, 내 성적에 맞게' 미래를 보지 않고 '미래를 위한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죠. 또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하고요. 개인의 선택의 기준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고3이야말로 쉬어야 한단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를 불어 앉히시더니 말씀하셨다.

"고3이니 좀 쉬어야 하지 않겠니?"
"시간에 쫓기는 일일수록 한 템포 쉬면서 숨을 골라야 승산이 높아지는 법이다. 아빠랑 같이 바람 좀 쐬고 오자!"


그리고 한 달간 당신 교수로 재직했던 청주대학교로 함께 가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지치고 자신감도 뚝 떨어져 있었다. 반면, 나는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했고 그 어느 때보다 긍정적이었으며, 무엇보다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 상태였다.
(중략)
나 역시 워낙 공부에 지쳐있던 터라 아버지의 제안이 달콤했지만 내신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무모하리만치 용감했던 그 선택은, 고3 시절을 무사히 완주하는 큰 힘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쉼표'를 찍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과주의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페이스북,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속에 둘러싸여 있어 더욱 남들과의 비교가 쉬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비교가 '동기부여'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의 템포를 무시한 '전진'은 어느 순간의 '쓰러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손미나 작가의 경우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수는 없습니다. 교수였던 아버지가 제공하는 '경제적, 문화적 자본'이 당연히 풍부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러나 교수인 모두가 저런 교육방법을 하지는 않죠. 더 해야 함을 강요할 수도, '1등'이란 점수만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란 자본 풍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마웠어요, 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면

아버지는 자식사랑도 유별났는데, 무엇보다 편지를 많이 쓰셨다.
(중략)
무엇보다 아버지의 존재가 특별했던 이유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품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일이지만,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중략)
또 아버지는 무척 자상하셨다. 아나운서 시절, 방송을 마치고 늦게 귀갈할 때면 어김없이 주차장에서 서성이며 나를 맞아주셨고, 종종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해주셨다.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랑. 사실 안타깝게도 모두가 이런 부모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사례를 많이 찾고, 기록하려 합니다.  

부모분들이 읽으신다면 자식 교육에 있어, 교육자분들이 읽으신다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한 insight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삶의 방향과 목적을 가져야 할까? 현재 한국 사회에는 이러한 교육이 부족해 보입니다.


더 많은, 더 다양한 교육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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