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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upreneur 크리스티나 Oct 29. 2020

Let it go

당신의 과거가 현재의 당신을 가두지 않도록.


과거는 과거일 뿐, 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에는 현재의 나의 삶과 감정에 그 과거가 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과거가 현재가 아니듯, ‘과거가 현재의 당신을 모두 대변하지는 않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그 과거가 현재 당신 존재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떻게 현재의 당신이 그 과거로부터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답은 없다. 당신이 쥐고 있는 수많은 열쇠 중 딱 맞는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누군가 대신 열어주는 문은 당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갈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문에 맞는 열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모든 ‘열쇠’를 문에 넣고 돌려봐야 알 수 있다. 열쇠 모양과 문의 모양을 유심히 살펴본 후 어느 정도 예측을 통해 가늠해 볼 수도 있겠다. '유심히 살펴봄'은 숙고와 성찰을 의미한다.


나의 10대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공포와 불안이 많은 부분 나를 옭아매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나의 하루하루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던 그 아이는 더. 이. 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행동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의식하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물론,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 조건과 제약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는 외부적 환경 요건으로 우리의 삶에 ‘주어졌다’. 내가 이 바이러스를 당장 없앨 수도, 내 의지대로 나만 여기에서 홀가분해질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개인 방역이다. 그 외부적 요인은 나의 통제 밖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이 있다.

태어날 때의 부모나 가정환경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니 여기에 '왜'를 물을 수도, 물을 필요도 없다. 그 환경이 주어진 것은 당신의 잘못도, 당신의 어떠한 노력의 기여도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나의 책임은 1g도 들어가지 않았다.


또 하나 우리가 알고 있지만, 자주 잊는 것.

세상과 삶은 불공평하다.


완벽한 공평은 이 세상, 이 지구, 이 우주 어디에도 성립되지 않는다. 당신이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우주라는 공간에서 지구란 곳에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는 것. 당신의 의지가 반영된 의사결정이 아니다. 하나의 삶과 생명이 탄생한 것뿐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작은 점에 불과해 보인다. “저 작은 곳에서 그리 아등바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존재하고' 생명을 이어간다.


다시 코로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코로나 19의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라며 자포자기하지 않고 최대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개인위생,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코로나 19를 과거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상상해보자. 당신이 초래했던 일이든 외부적으로 주어졌던 일이든, (우리에게)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한 ‘과거’는 이미 당신의 통제 밖에 있다. '나에게 희망이 없어' ‘그 과거가 나를 망쳤어’라는 생각은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망쳤어. 우리에겐 희망이 없어’라며 두 손 놓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신의 삶의 일부분 또한 통제할  있다. 물론 상황에 압도되었을 경우에는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음에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 부분에는 자신의 ‘선택’이란 책임이 있다. 자유와 책임이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대학교 시절 사랑, 결혼, 양육 등에 관한 꽤 인기 있던 교양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수업시간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 마음에 훅 들어왔다.


“과거의 내가 받은 양육방식이 나의 사랑이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20살이 지난 성인이라면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하죠.”


그렇다. 당신에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의 자신을 먼저 믿어야 한다. 이때, 그저 “오늘부터 난 나를 믿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것은, “오늘부터 난 예뻐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르지 않다. ‘마법의 주문’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한두 개씩 스스로 뭔가를 해내는 경험의 축적. 크든 작든 상관없다. 작은 경험은 큰 경험을 불러내고 또 큰 경험은 다른 경험의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시작도 하기 전 '난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은, 서커스단 말뚝에 묶였던 아기코끼리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기 시절의 자신의 힘의 범위만 생각하며 아예 ‘말뚝을 뽑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힘. 누가 대신해주는 일이 아니다. 대신해 줄 수 없다.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강연을 앉아서 듣는다고 없던 믿음의 근육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렛대, 디딤돌’의 역할은 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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