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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Apr 30. 2023

함께 한 결혼, 혼자 한 이혼

23. 끝까지 이혼을 원치 않은 그 사람

관할기관에 이혼신고서를 써서 판결문과 같이 제출해야 이혼이 완성된다는 판사의 말에 그는 서류를 들고 나서며 오늘 바로 가자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래, 부부가 같이 작성해야 한다는 그 서류 때문에 또 날을 잡고 만나려면 번거로우니까.


각자 차를 타고 출발했고, 먼저 도착한 그가 이혼신고서를 나에게 내밀었다. 남편 칸은 이미 기입이 되어 있었다. 비어 있는 아내용 작성란에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옆 칸의 남편과 똑같은 주소를 채워 넣었다. 곧바로 공주, 왕자의 칸도 다 채운 뒤 신고인 출석 여부에 남편이 체크한 걸 보고 아내의 출석 여부에도 체크 표시를 했다. 제출인 성명을 쓰는 일만 남겨 둔 채 남편에게 말했다.


"다 된 것 같아요."


그러자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이제 제출만 하면 되니까, 당신이 생각해 보고 제출하면 돼요.
 

??? 생각을 해 보고 제출을 하라고?


그의 말에 뇌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이미 많이 생각하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니었나?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질문을 했나 보다. 그는 시간이 3개월 있으니 생각해 보고 제출하라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제출하면 자신에게 알려 달란다. 순간 가뜩이나 불편하던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아이들의 이름, 주민등록번호와 친권자를 기입하며 미안한 마음이 나를 몰아세웠으니까.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근데 여기 이 아래 칸은 뭘 쓰는 건지 그에게 물었고, 그는 모른다고 답했다. 번호표를 뽑고 창구의 직원에게 물었더니 아무것도 안 써도 된다고, 지금 제출하실 거냐고 했다. 3개월 안에 혼자 와서 내도 되는지를 묻자 가지고 계시다가 혼자 와서 제출해도 되는 거랜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알겠다고 지금은 안 내겠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다가가 조금 전 들은 얘기를 전하는 순간에도 이게 정말 내 결혼의 끝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손에 서류를 들고서 며칠 만이라도 더 고민해 볼까 생각했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신중해 볼까 싶었다. 제출하고 나면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니까.


돌발 숙제를 남긴 그가 이제 가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 이 순간을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남편을 쳐다보며 그동안 고마운 것도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랑 사느라 당신도 참고 지낸 부분이 많았다는 걸 잘 안다고, 나를 참아 줘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이 반쯤 입 밖으로 나오던 순간, 그도 입을 열었다.


나는 제출 못 하니까 여보가 알아서 해요. 나는 갈게요.

빨리감기라도 한 것처럼,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가 떠났다. 그런 그의 등에다 대고 고맙다는 말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내리고 보란 듯 자기 손을 씻었던 빌라도의 모습이 그의 뒷모습을 닮았을까.


멍하니 서 있다 다시 번호표를 뽑았다. 이번에는 모르는 게 있어서 뽑은 번호표가 아니었다. 불과 몇 분 지났을 뿐인데 나는 지금은 안 내겠다고 말한 그 창구 앞에 다시 앉았다. 웃으며 그냥 오늘 내려구요, 하고 말했다. 직원분도 웃으며 서류를 받아들었다. 옆 창구에서 어떤 커플이 혼인신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고 이 일이 속히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그는 정말 이 이혼을 끝까지 원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원했기 때문에, 내가 살고 싶다 애원했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라면 나는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울었기 때문에, 이혼해야 아이들과도 웃으며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하고 싶지 않은 이혼에 동참했다. 그러니 내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차마 자신의 손으로 이 이혼을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떠났을 것이다.


이제 다 되었다는 말에 직원분께 눈인사를 했다. 서류가 완전히 처리되면 문자 연락을 받을 수 있다기에 그렇게 해 달라고 감사하다고 했다. 이혼신고서를 제출하면 알려달라던 그에게는 따로 제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떠난 그에게 그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함께 했던 결혼이었는데, 결국 혼자서 이혼을 끝냈다. 함께해도 쓸쓸했을 이혼 서류 제출을 혼자 하고 나오니 기운이 없었다. 오전에 아버님, 어머님과 두 시간 넘게 통화하느라 채 다 마시지도 못한 커피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고 갔던 법원에서부터, 혼자 서류를 내고 걸어 나와 차에 올라탄 이런 처지라니.  


날씨가 너무 좋아 오랜만에 선글라스 찾아 쓰고 운전한, 내가 이혼한 날. 운전대에 걸친 떨리는 손으로 눈물 닦으며 가다 보니 더 운전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차를 두고 나와 지하철에 몸에 실었다. 니가 그걸 힘들었다고 하니,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니가 그렇게나 많이 힘들었다고 하니 안타깝다는 어머님 말이 귀에서 메아리쳤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자책하는 마음도 애써 지웠다.


힘든 건 잘못이 아니다. 아픈 것도 잘못이 아니다.

남들이 내 이혼을 이해 못 해도 괜찮다.

뜨거워지는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개구리를 그만둔 내가 나는 기특하다.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언니를 만나 순대국밥을 먹고, 배는 부르지만 기운 없는 나를 데리러 온 친구 차를 타고 친구들을 만나 양꼬치를 먹고, 언니집에 가서 함께 자고, 함께 카페에 가고, 또 친구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라이브카페에 갔고, 언니집에서 잤고, 다른 친구를 만나 위로받았다. 숨은 듯 숨죽여 지낸 지난 일 년 치 약속보다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난 사흘이었다.


그리고 딸이 이혼하는 동안 딸의 아들과 딸을 데려가 잘 보살펴 준 우리 엄마. 감사하다고 글을 쓸 일이 있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 엄마에게 책을 만들어 건넸지만, 다시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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