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남이 될 수 없는 사이
별거가 시작된 후에도 격주로 남편을 만났다. 정확히는,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그의 얼굴을 봤다. 어째서인지 그는 바꾼 적 없는 비밀번호 대신 초인종을 눌렀고, 좀처럼 현관에서 신을 벗고 들어오는 일도 없었지만. 어쩌다 집에 들를 일이 생기면 그는 아이들과 먹으라며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가기도 했고 잘 챙겨 먹으라며 영양제를 식탁에 놓고 가기도 했다. 꼭 어머님이 챙겨 주신 것 같은 포장이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실제로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앞으로도 공주 엄마를 식구처럼 생각할 거야. 너는 애들 엄마잖아. 나는 전에도 공주 엄마를 남으로 생각한 적 없이 우리 식구처럼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건 똑같을 거야."
부디 남처럼 생각해 주시라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르신들의 생각을 바꾸려 드는 것처럼 무모한 도전이 없다는 걸 잘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아이들은 아빠와 1박을 할 때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놀다 온다. 어머님은 여전히 이따금 아이들이 잘 먹어서라며 음식을 싸 주시고, 아버님도 아이의 주식 통장을 여전히 직접 관리하신다. 누구보다 공주, 왕자의 행복을 바라시는 하나뿐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가. 어떤 일들은 애써 바꾸려 하지 않는 게 더 편하니 나는 그저 물 흐르듯 살아간다.
아이 없는 부부는 이혼 후 남남이 될 수 있다. 위자료 지급확인서에 마지막 서명을 하고 나면 연락처를 지울 수도, 차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상대 배우자에게 아주 심각한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그와 나는 1-2주마다 연락을 주고받는다. 몇 시에 갈게요, 몇 시에 와요.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 동안 찍은 사진을 서로 보내기도 한다. 좋아 보이네요, 예쁘네요, 사진 고마워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빠를 만나고 돌아왔던, 어쩌다 스파게티를 너무 많이 만든 어느 날은 그도 들어와 함께 식사를 하고 갔고, 칼퇴가 힘들어 급히 연락했던, 하필이면 아이가 열이 났던 어느 날은 그가 아이들을 챙겨 준 뒤 물수건을 놓고 가기도 했다. 아이가 갑자기 아빠를 너무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그에게 전했던 어떤 날은 면접교섭일도 아닌데 아이들을 데려가 1박을 하고 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서 아빠를 뺏고 싶지 않고, 그에게서 아이들을 뺏고 싶지도 않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우리의 이혼 후를 만들어 갔다.
정식으로 이혼을 진행하며 화가 치밀어 올랐던 순간이, 한숨을 땅이 꺼지도록 쉬었던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혼하면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진흙탕 싸움을 하게 된대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했고, 실제로 욕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 막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혼은 욕을 쏙 빼더라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아이들은 이미 교통사고처럼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보지 않아도 될 광경과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많이 보고 들었다. 엄마 아빠가 한자리에 있을 때마다 굳은 얼굴을 또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양육비 지급 다짐을 답지 않게 야무지게 받으려다 현실에 치여 아주 속상했던 때가 있었다. 장문의 카톡을 보내며 구질구질하다는 말을 썼고, 그는 말을 조심해서 하라고 했다. 이혼하며 나는 아마 그때 가장 마구 말했던 것 같다. 첫 면접교섭일이 되었을 때 그도 심한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십 년 넘게 부부로 지내며 어떤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그에게 신뢰가 있었고, 홧김에 한 말임을 잘 알았기에 상처는 생각보다 금방 아물었다.
결혼처럼 이혼에도 공식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그렇듯 이혼도 얼마든지 DIY가 가능하다. 이혼의 과정도, 특히 자녀가 있다면 이혼 후의 생활도 각자 만들어가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이혼의 정석이 무엇이든 아빠와 엄마가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같을 수 있다면, 서로가 최선을 다해 이혼 후의 나날들도 잘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순해도 핵불닭맛인 이혼에는 정말 큰 슬픔과 아픔이 따르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망각의 동물이니 그도 나도, 그리고 아이들도 차차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러고 싶다.
이런 이혼을 가능하게 해 준 그에게 고맙다. 그리고 그에게도 말했듯, 나는 그가 누구보다도 잘 되기를 바란다. 어머님 말씀마따나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이혼을 후회할 만큼, 그가 잘 되고 또 잘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