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법
이혼한 주말, 여러 해 전부터 내 베개만큼이나 나의 슬픔을 잘 아는 친구를 만났다. 날붙이가 날아오기 전에도 나를 위로했던 친구에게 어머님과의 마지막 통화 얘기를 했다.
“정말 고장난 녹음기처럼 전에도 하셨던 말씀을 계속 하시더라구, 애들 아빠가 바람이 났냐, 도박을 했냐, 술 담배를 하길 하냐, 그런데 너는 이혼을 하자고 한다, 걔는 우리가 물어봐도 계속 다 자기 잘못이라고만 하고 끝까지 너를 감싸더라, 하면서.”
"그걸 계속 듣고 있었어요, 언니?"
친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응, 두 시간 동안 듣고 있었지. 어머님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듣고. 그냥, 아들 엄마니까, 어머님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싶어서. 남편이 그렇게 한 것도 다 이해하고 살았는데, 어머님이 그런 말씀 하시는 걸 이해 못할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이제 통화할 일 없을 테니까 그냥 들었어. 나중에는 나 나가야 한다고 끊었고. 내가 가는 데가 법원인 줄은 모르셨지만."
“언니, 그런 말 귀담아듣지 마요, 좋을 거 없어."
걱정하는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알아, 나도 일부러 귀담아듣는 거 아냐. 나는 그냥 뭘 들으면 머리에, 마음에 잘 남는 사람이야.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도 글로 옮기잖아. 나중에 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더라구."
"언니가 그런 사람인 줄은 알지. 그래도 상처된 말들, 그런 건 그냥 듣고 흘리도록 해요."
"응, 안 그래도 어머님 말씀이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 내가 그걸 못 참아서, 내가 그걸 조금 더 참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나 하고. 근데 냄비에서 익은 개구리가 될 순 없잖아. 지금은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신경 쓸 수 있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자 언니는 남을 너무 이해한다면서 운을 뗀 친구가 어딘가 결연한 목소리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언니, 이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썼던 에너지를 언니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쓰세요.
그 말에 순간 이마 가득 주름이 잡혔다. 나를 이해하라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친구 얼굴을 한참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나-를 이해하라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잘 모르겠어."
말을 마치자마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친구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바보가 된 내게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카페 출입구를 마주하고 앉은 내가 문을 등지게 하려는 배려였다. 친구는 보는 이가 한 사람뿐이라고 해서 눈물을 맘껏 흘리지는 않는 내 손에 휴지를 쥐어 주며 내가 꼭 들어야 했던 말을 해 줬다.
"언니는 항상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잖아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지, 이런 상황이니까 이렇게 행동할 수 있지 하고요."
"응, 나는 그런 프로그램이 깔려 있어. 자동이야."
"어, 그러니까, 이제 그걸 언니 자신에게 하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언니가 다른 사람을 이해했던 것처럼, 그런 노력을 언니 자신에게 해 보라구요. 언니의 말, 언니의 행동, 언니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 봐요."
눈시울이 계속 뜨거웠다.
"나, 나는 글을 쓰면서 그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애. 왜 아이들을 힘들게 하면서까지 이런 결정을 했는지, 내 발칙한 이혼 일지를 쓰면서, 나는 이혼을 결정한 나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애. 그동안 남편을 나쁜 사람 만드는 글을 쓰면서까지 내 이혼을 정당화하려는 거 같아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거든. 그런 불편과 긴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계속 쓰는 내가 너무 이상했는데, 니 말 들으니까 나는 여태 그 작업을 하고 있었나 봐."
눈에 덮은 휴지를 떼지 못하는 나를 친구는 따뜻한 말로 다독였다.
"그래요, 언니는 이미 잘하고 있어요. 살면서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언니가 남편분과의 관계를 떠나서,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혼을 해야 했던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제라도 언니 삶에 꼭 일어나야 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그랬다. 괴로워 흔들리는 마음을 설득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이제서야 나는 내 마음을 알고 나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나와 화해하고 나를 위하는 법을 배웠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혼을 하면서야 말이다.
긴 슬픔을 지나고서 나는 전보다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이 마음이 금방 괜찮아지진 않는다. 이혼이라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상처이며, 상처 입은 사람이 우리 네 식구뿐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갓 이혼을 마쳤을 뿐인 지금, 나는 분명히 안다. 이 발칙한 이혼이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나를 살리고, 나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내가 꼭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다고.
발칙한 이혼 일지의 첫 글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아시나요> 끄트머리에서 “그러니 즐겁게 읽어 주시라. 빅재미를 보장할 순 없지만,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는 보실 수 있다."며 드린 약속을 잘 지켰는지 모르겠다. 빅재미는 없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서커스단의 코끼리 같았던, 성냥팔이 소녀를 부러워했던 도비가 알은 잘 깨고 나오지 않았나 싶다.
도비의 발칙한 이혼 일지는 이렇게 끝이 난다. 지난했던 슬픔을 통과하는 여정에 함께해 주신 분들께, 라이킷을 눌러 주시고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짐작하실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힘이 되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표현했는데 도비의 진심이 잘 전해졌기를 바란다.
읽으신 분들 중 부디 나처럼 슬픈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 모쪼록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사랑하며 한 지붕 아래 함께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시길, 서로의 존재를 늘 고마워할 수 있으시길, 무엇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을 돌아보고 돌볼 수 있는 마음만은 잃지 않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