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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May 14. 2023

직원 모두가 내 이혼 사실을 아는 카페

세상에 이런 카페가 다 있다

늘 식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타닥이지만, 사방에 널린 게 카페지만, 굳이 기름 써 가며 멀리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갈 때가 있다. 가오픈 한 지 일주일 되었을 때 친구에게 말도 없이 카페를 찾아갔다. 외국 나가기 전 같이 밥 먹은 친구가 몇 안 되는데, 많이 자란 아이들을 보고 친구가 반가워했다. 아이들은 기억에 없는 엄마 친구보다는 처음 보는 예쁜 카페가 더 마음에 들었는지 곧장 제일 경치 좋은 곳으로 달려가 한량 행세를 했다. 공주는 이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꺼내 펼쳤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초봄 풍경. 지금은 잔디가 초록초록하다


평소에 비눗방울을 잘 들고 다니는데 비눗방울 불면 너무 좋을 것 같은 그곳에 비눗방울을 깜빡하고 갔다. 아이들이 조카와 월령이 비슷한 옆옆 테이블 아기와 놀아주는 사이, 아기의 이모에게 잠시 애들을 부탁하고는 근처 다이소에서 비눗방울을 몇 개 사 왔다. 귀엽던 아기에게도 비눗방울을 선물했다. 여기 버블이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다음에 방문하니 카페에서 진짜로 비눗방울을 팔고 있었다. 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뻥이 아니라 주력 메뉴인 네모난 빵이 아주 맛있었다. 아이들은 헬가 스텐첼 사진전에서처럼 빵을 뜯어먹으며 만들기를 했다. 나는 그게 또 귀여웠다. 비록 왕자가 그날 카페 오픈 이래 최초로 유리컵을 깬 인물이 되고 말았지만, 미안해서 다시는 카페에 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그 카페가 좋았고, 네모빵은 여전히 내 원픽이었다. 그래서 몇 주 후 또 기름 써서 그 카페에 갔다. (알고 보니 글 말고 기름 쓰는 것도 좋아한 나란 여자…)


애들 없이 다시 찾은 카페의 제일 맛있는 네모난 빵 이름은 네모빵이 되어 있었다.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네모빵, 네모빵, 하고 불렀던 걸 기억하고는 네모빵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그러더니 발칙한 이혼 일지를 쓰려고 노트북을 꺼내는 나에게 친구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실장님이 니가 비눗방울 아이디어도 주고 빵 이름도 네모빵이 되어서 네모빵 하나랑 새로 나온 말차케이크하나 주라시네."


들어오며 주문한 네모빵을 벌써 다 흡입했던 참이었다. 집에 가서 애들이랑 같이 먹기로 하고는 꼭 넘어야 할 산 같은 글을 쓰려고 막 파일을 열었는데 실장님이 보였다. 빵 감사하다 인사하고 안부를 나누던 찰나, 노트북 화면 가득 <도비의 발칙한 이혼 일지>가 떠 있는 게 눈에 들어와 화들짝 놀랐다. 실장님도 동시에 그걸 보고 장난스레 물으셨다.


“도비요?"

"아, 제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다가 혹시나 싶어 쟤가 저의 상황을 얘기하던가요 물었더니 알고 있다고 했다. 네??? 처음 아이들과 갔던 날 말하더라고, 내가 이런 걸 쓰고 있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모두가 내 이혼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카페의 모-든 직원이.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싶던 내 속마음. 짐 캐리.


마침 지나가던 친구한테 야! 진짜 주책이다! 그러고선 실실 웃고 말았다. 눈을 부라렸던 외침 한 번에 순간의 아찔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무렇지 않았다. 너무 잘 놀던 왕자가 갑자기 아빠 보고 싶대서 예정에 없던 면접교섭일을 가졌던, 셋이 왔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간 카페도 거기였으니까. 허그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냐며 안아 준 친구가 바로 그 주책바가지였으니까.


스토커도 아닌데, 갈 때마다 몇 시간씩 머물면서 나 혼자 직원들과 일종의 라포 같은 거라도 형성했나 보다. 알고 보니 직원 모두가 내 비밀을 알고 있었던 하늘 아래 하나뿐인 요상한 카페에서, 나는 헤픈 내 등짝이 주책바가지를 향하게 앉은 동안 남편과 나란히 앉아 법원의 상담사님을 마주 봤던 그날로 돌아갔다. 조금 쓰다 차마 쓸 수 없어 몇 달간 고이 묻어 두었던 그 어느 가을날로.


개발 중이라는 신메뉴를 조금 뜯어먹고 새로 받은 말차케이크도 먹으며 나는 틈틈이 그날의 기억을 꺼내어 붓으로 흙 살살 털어내듯 글로 옮겼다. 언제 다시 떠올려 완성할지 알 수 없었던 내 발칙한 이혼 일지 2부의 8화와 9화를 그렇게 써냈다.


그날 이후로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처럼 저녁 먹은 후 앉은자리에서 글을 한 편씩 썼고, 발칙한 이혼 일지를 마무리했다. 시킨 사람 없는 숙제를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카페에 갔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영 못 넘을 것도 같았던 언덕을, 그 카페에서라 잘 오를 수 있었다.



언제나 내돈내산 1인 1빵 1음료를 한 도비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가면 내 슬픔을 아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는 곳, 자기가 아는 사람 중 내가 제일 푼순이라고 말하는 뭐 이런 주책바가지가 있고, 먹으면 하트가 자동으로 뿅뿅 발사되는 맛있는 크림빵과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있는 곳. 멀쩡한 줄 알고 뽑아놨더니 아니었다는 내 친구 채용 후기를 굳이 들려 주신 실장님이 있는 곳. 나도 안 멀쩡한 게 들통났지만 파워 당당하게 주접을 떨며 있을 수 있는 곳.

  

나이프는 안 쓰고 김장김치처럼 찢어 먹고 갈비처럼 뜯어먹는다. 이 빵 이름이 어떻게 네모빵이 아닐 수 있을까.



번외편_꼬마들의 취향


슈머시기 개를 닮은 개를 만든 공주와 애정하는 테레비를 만든 왕자. 뒤에 보이는 것은 왕자가 떨어트렸던 유리컵의 생전 마지막 모습.




주말에 아빠집으로 떠나며 크림 안 들어간 네모빵 사 달라던 공주 빵 셔틀을 왔는데 카페 안팎으로 사람이 아주 많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앉을 자리라고는 없죠? 여기에 이제 나를 위한 자리가 없어요?"

"니 자리 없어 야."


그러고서 창 아래 자리에 가방을 올려놨더니 실장님이 오셔서 웃으며 저기 걸레질 좀 해 달라고 하셨다. 밖에 가면 제가 조금 비싸기도 한 여자입니다만 이따 샷 하나만 추가해 주시면 얼마든지 라며 친구가 봤으면 또 진저리 쳤을 주접에 드릉드릉 시동을 걸었다.


행여 네모빵 카페가 어디인지는 찾아보지 마시고 찾아가지도 마시라. 대기업의 맛처럼 인류 보편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깔끔하고 감성 돋는 인테리어에다 아이들 놀기도 너무 좋고 맛탱구리 빵과 음료도 파는 카페지만 빈자리가 없어져서 도비가 찐으로 조금 슬프다. 카페가 흥하고 나는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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